"이게 차야! 리어카야!", 찜통 차의 추억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차 안에서 겪은 7시간의 파란만장 스토리

등록 2007.07.12 15:28수정 2007.08.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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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장마철이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였습니다. 당시 저희는 주행거리만도 20만km가 넘는데다 방향지시등이며 의자, 브레이크 등 어디 한군데 성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중고차를 구입해서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입할 때는 어떻게든 두 달만 버텨줘도 다행이다 싶었는데 저의 예상을 뒤엎고 여섯 달을 잔고장 없이 버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차를 믿고 휴가를 가는 날 저희는 직격탄을 맞아버렸습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휴가냐"며 굳이 싫다는 저를 꼬드긴 건 강태공이 꿈인 남편이었습니다.

그것도 시간을 두고 설명을 하면 또 "안 된다"고 할까봐 일하고 들어오자마자, "짐 챙겨! 다 같이 떠나는데 살면 얼마나 산다고 휴가도 못 갔다 오냐?"고 목소리를 높이며, '장거리 운행전 차량점검은 필수'라고 목청 높여 외치던 연사는 간 데 없고 곧바로 출발하는 겁니다.

물론 걱정을 하는 내게 남편은 "미리미리 다 점검해 놨으니까 걱정 말아!" 하며 안심을 시켜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창 힘을 내 달려야 할 고속도로에서 남편의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가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고속도로의 차들은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푹푹 찐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이나 더운 날씨였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저의 친정. 출발을 한 뒤에야 엄마에게 "휴가 가고 있다"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예상치 못한 방문이 귀찮기는커녕 마냥 반갑기만 하신 엄마는 "애기들 데리고 올려믄 고생인데 김서방이 같이 에어컨 나오는 차로 온다헌께 내 맘이 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보 더워! 에어컨 좀 켜자"하고 에어컨 버튼을 누르는 순간 전 '오늘 하루가, 아니 앞으로 최하 십년은 평탄하지 못한 가정생활이 되겠구나'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에어컨이 안 나오는 겁니다. 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성질 급한 남편이 "에어컨 틀었으니까 빨리 창문 닫아"라고 고함을 지른 지 5분이 지나도록 기계는 돌아가는데 바람이 안 나오는 겁니다.

"여보! 에어컨 언제 나와?"
"어엉! 쫌만 기다려봐 금방 나올 거야."
"집에서는 틀자마자 나오던데…. 차는 집하고 다른가봐?"
"다르지. 차는 기계를 따로 돌려서 바람이 나오게 하는 거잖아. 한 십분 걸려!!!"
"십 분이나?"
"그 정도는 기본이야."


그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십분 후에도 바람은 나오지 않았고, 에어컨 나온다고 닫아놓은 창문에는 아이들의 더운 입김만이 뽀얗게 서렸습니다.

"아빠! 창문 열어도 돼요?"
"조금만 있으면 에어컨 나온다니까! 5분만 더 참아봐!"

남편의 그 말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길 기다린 지가 벌써 삼십분인데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못 참아! 그냥 창문 열자!"

그제서 남편도 한풀 꺾이며, "그럼 잠깐만 창문 열었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에어컨 틀어보자. 아직 기계가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의 더운 열기가 그토록 시원한 바람인 줄 몰랐습니다.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네, 그냥 창문 열고 가지 뭐. 에어컨 틀어봤자 연료비만 더 들고 기계에도 무리가 간대."

그런데 창문을 열고 달리는 것도 일이십 분이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맞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태풍 사라보다 쓰나미보다 더한 위력으로 우리 네 식구의 양쪽 뺨을 후려 갈겼습니다. 게다가 찢어질 것 같은 뺨과는 달리 등과 다리와 겨드랑이와 목에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뺨은 찢어질 것 같고 귀만 먹먹하지 하나도 안 시원하네. 다시 에어컨 좀 틀어 봐요!"

참다못한 저는 급기야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물론, 10분 동안 창문을 닫은 채로 시원한 바람 한줄기를 기대하며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지요. 역시 바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되는 거 맞아?"
"글쎄…."
"뭐야? 한 번도 안 틀어봤어?"
"그게… 바빠서…."
"그럼 가스도 주입 안했겠네?"
"그렇지…."
"그런데 왜 에어컨 된다고 큰소리쳤어?"
"에어컨 안 들어오는 차가 요즘 어디 있냐? 당연히 들어오지…."
"우리 차는 안 들어오잖아! 다시 창문 열어!"

다시 창문은 내려가고, 10분간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고마움에 온몸을 맡겼습니다.

"아~ 시원해!"

그때 저는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십 분에 한 번씩 창문을 닫았다 열어주면 바람의 고마움도 배우고 저의 정성에도 탄복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그 짓도 한두 번이고, 한두 시간이지, 운전하는 남편 물 먹이랴, 간식 먹이랴, 흘러내리는 땀 닦으랴, 거기다 창문까지 열었다 닫았다 하려니 화가 나는 겁니다.

"에어컨이 안 되면 안 된다고 말을 하지. 그럼 기차 타고 편하게 갈 거 아냐. 이게 뭐야? 애들이 완전 밤고구마가 돼 버렸네. 고속도로에서 창문 열고 7시간 달리는 차는 우리 차뿐일 것이다. 이것도 차냐? 리어카지?"
"조용히 안 해! 그래도 너는 다리도 올리고, 땀도 닦지만 나는 꼼짝 못하고 운전만 하는데 진짜 열 받게 할래?"
"그러게 누가 휴가간대! 왜 가자고 해서는 이 고생을 시켜!"

지나는 차들도 창문을 열어놓고 싸우면서 달리는 우리차를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 화가 난 남편이 가속페달을 밟으며 속도를 높였습니다.

시속 100, 110, 120, 130, 140km….

그런데 평소 같으면 에너지절약 운운하며 시속 100km도 못 달리게 하던 저였건만 더위 때문에 지치다보니 속도계의 움직임에도 태연해지더라고요. 그러다 시속 140km를 넘길 무렵 뒤에 앉은 아이들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죽자! 다 같이 죽자! 쪄 죽으나, 달리다 죽으나. 인생 뭐 있어! 에어컨도 안 나오는 차에서 쪄 죽는 것보다는 과속으로 죽는 것이 더 폼은 나네!"

저의 그 말에 남편도 기가 막힌지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군요.

"내가 집에만 가봐! 에어컨 바람으로 날마다 에어목욕하고 살 테니까! 오늘의 이 한을 꼭 풀고 말테다. 오메 더운 거~"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더니 제가 딱 그 짝이 난 것입니다. 그때 하늘도 제 모양이 가여웠나 봅니다. 고속도로 안내 전광판에 '빗길 안전 운전'이라는 문구가 뜨는 것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여보! 조금만 더 가면 비 오나봐! 우리 드디어 살았어!"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위를 식혀줄 한줄기 빗물을 말이지요. 비를 맞기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런데 순천 톨게이트를 지날 때까지 비는 오지 않고, 전광판의 화려한 글씨만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비록 비는 못 만났지만 천국의 문이 이토록 반가울까요?

'이제 한 시간만 더 달리면 드디어 바다다! 내 고향이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마라톤 피니쉬 라인을 끊는 듯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친정에 도착하고서도 7시간의 바람은 많은 후유증을 남겼습니다. 볼거리에라도 걸린 듯 퉁퉁 부은 얼굴은 기본이고, 죄 없는 차는 하루에도 열두 번이나 남편의 입에 의해 헐값 처분 되었습니다.

"저 놈의 똥차를 확 엿을 바꿔버려? 아니면 팔아버려?"

땀띠 난 궁둥짝을 시퍼런 바닷물에 담근 채, 올라갈 일을 걱정해야 했던 작년 휴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올해도 저희들은 장마 끝나기가 무섭게 친정으로의 휴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어컨도 이미 고쳐놨고, 가스도 충전해뒀습니다.

다만 여전히 작년의 그 차라는 것이 살짝 두렵습니다. 두 달만 버텨줘도 고마울 그 차가 아직도 우리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 가고 있답니다.

출발 전에 꼭 안전점검 잘 해서 올해는 시원하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휴가를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응모합니다

덧붙이는 글 '나의 여름휴가 실패기'응모합니다
#에어컨 #실패기 #휴가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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