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39회

등록 2007.07.20 08:57수정 2007.07.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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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는 우연히 시선을 돌리다가 벽 귀퉁이 아래가 살짝 돌출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버릇처럼 가끔 확인을 하는 곳이었는데 그것은 전갈이 왔다는 의미였다.

"……!"


그는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과 다리를 느릿하게 펴기 시작했다. 굳은 몸을 푸는 듯 그는 천천히 근육을 늘리는 동작을 조금씩 반복했는데 몸 전체에 상쾌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의 긴장을 푼 그는 이쪽저쪽으로 걷기도 하다가 귀퉁이로 다가가 살짝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약간 틈이 생긴 구멍에 장심을 대고 공력을 운용하자 손에 작은 종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역시 전갈이 온 것이다. 그는 습관대로 주위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돌돌 말린 쪽지를 풀었다.

내용은 다른 사람이 읽으면 전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읽는 백도의 얼굴은 약간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쪽지를 입에 넣고는 씹었다.

"그런 인물도 실수를 하는군…사태가 다급해 진 것인가?”

종이를 씹으며 중얼거렸기 때문에 발음은 정확치 않았지만 표정으로 보아 내심 긴장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읍… 귀찮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하고자 했던 것이니….”

그는 씹고 있던 종이를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끄떡였다. 상대가 이쪽을 파악했다면 귀찮기는 할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귀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이쪽만큼이나 상대들도 대단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금방 입증이 되었다. 그가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발밑 바닥에서 칼날이 솟구쳐 올랐다.


파팍----!

솟구쳐 오른 두 자루의 칼날은 그의 양 발목을 노렸는데 백도마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이었다. 백도는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오를 겨를도 없어서인지 앞으로 넘어지는 듯 하면서 두 손을 바닥에 대고 한바퀴 앞으로 회전했다.

퍼퍽--- 파지직---

그와 동시에 귀퉁이 바닥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두 명의 인물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흑영과 백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편한 무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흑의와 백의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상만천의 흑백쌍용이었다.

---------

통로는 매우 잘 만들어졌지만 몸을 굽혀야만 다닐 수 있는 것이었다. 몸집이 작은 사람은 쉽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몸집이 큰 사람으로서는 거의 허리까지 굽히거나 차라리 손을 짚고 기어야 했다. 그래도 설계를 잘해서인지 낮에는 희미한 빛이 들어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는 시각이라 그런지 매우 어두웠다.

당화는 여자치고는 약간 몸집이 컸다. 그녀는 거의 주저앉다시피 하고 통로를 따라 움직였는데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쪽지 중 남은 하나는 운무소축에 전달하면 자신이 맡은 일이 끝나는 터였다.

조금 더 가면 통로는 끊어지고 밖으로 나서야 하겠지만 곧 운무소축으로 이어지는 통로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관은 없었다. 전각과 전각 사이를 모두 이어놓았으면 종았을 것이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하통로는 군데군데 끊어져 반드시 밖으로 나간 후에 다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

헌데 이상했다.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는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바로 일장도 못되는 거리에 시커먼 인영이 앉아있었다.

“헛…!”

그녀는 정말 놀랬다. 지금까지 통로에 누군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것은 매우 불길한 일이다. 아니 매우 위험스런 일이다.

“네년이 당화란 계집이겠지?”

그녀는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안력을 돋우며 전면에 앉아 있는 인물을 살폈다. 그는 편안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는데 아마 미소를 짓고 있는지 입가에 희끗한 선이 보였다.

‘지공(地公)이란 자다!’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자신의 전면을 가로막고 있는 인물은 바로 삼재 중 하나인 지공이다. 두려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도망갈 곳이 없다. 허나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쭈그렸던 다리를 앞 쪽으로 조금씩 옮기기 시작했다. 도망갈 곳은 오직 뒤뿐이다. 그러려면 다리가 뒤에 있는 상태에서는 몸을 돌리기도 어렵다.

“그 동안 쥐새끼처럼 땅속을 헤매며 잘도 돌아다녔겠다…?”

“어...어떻게... 알고.”

그녀는 두려움에 가득한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지 염두를 굴리며 몸을 최대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 노력했다.

“땅속은 누구보다 자신 있지. 그동안 어떻게 청룡각의 중요 내용이 빠져나갔는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듯 훌륭한 지하통로가 있는 줄은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누가 만들었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야.”

다시 한 번 당화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상대가 지하통로를 모두 파악한 것이다. 이제는 지하통로가 유리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상대가 지하통로를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다. 이것을 함곡선생께 알려주어야 한다.

그녀는 두 발을 앞으로 빼내어 몸의 중심이 뒤로 쏠리는 순간을 이용해 지면과 수평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몸을 결국 뒤로 날리지 못했고 뱀처럼 목에 감기는 채찍으로 인하여 오히려 지공에게 끌려갔다.

푸욱---

지공의 왼손이 빳빳하게 세워진 채로 그녀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허억---!”

그녀의 두 눈이 부릅떠지고 몸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이 이득해지며 두 눈은 뜨고 있는데도 앞이 짙은 어둠으로 변했다.

‘홍교언니는…?’

그녀가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아 자가 지하통로를 알았다면 언니도 당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이런 곳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 어리석은 계집이로군. 차라리 사정을 하면 몰라도….”

사정을 했더라도 죽였을 것이다. 오히려 고통만 가중되다가 죽었을 것이다. 지공은 그녀를 뉘어놓고 몸을 뒤지기 시작했다. 잡다한 물건들이 나왔지만 정작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찾지 못했다.

"어디다 감추었기… 분명 전달할 것이 있었을 텐데…."

그는 금방 찾을 수 없자 아예 당화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옷의 안쪽이나 소매 끝단까지 모두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났다. 직접 말로 전했던 것일까? 그는 당화의 옷을 모두 벗기고도 찾아내지 못하자 대충 겉옷만 입히고는 생각에 빠졌다.

이 시신을 그대로 두고 갈 것인지 아니면 흔적을 모두 없애고 가지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허나 그는 시신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상대의 누군가가 발견할 가능성은 많앗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당한 것인지는 모를 것이다. 물론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눈치 채겠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가 이 사실을 아는 순간 당황할 것이고 또한 그것으로 인해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었다.
#천지 #무협소설 #이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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