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미인보다 아름답다

김재문의 작품에 나타난 '삶의 미학'

등록 2007.07.24 19:59수정 2007.07.24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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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로지 자신의 이상을 저버릴 때
늙게 됩니다. 세월은 우리의 얼굴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그보다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상실할 때 영혼이 주름지게 됩니다.

<디. 맥아더>



a 티밥 튀기는 풍경 일하는 노인은 삶보다 아름답다

티밥 튀기는 풍경 일하는 노인은 삶보다 아름답다 ⓒ 김재문

사진 속에 미인은 누구일까

우리의 삶은 사진이 되면 대개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아무리 예쁜 미인 역시 사진 속에 담기면 사진일 뿐이지만, 노인이 사진 속에 들어오면 미인보다 아름답다.

한 장의 사진이 시가 되는 이 사진 속으로 걸어가면, 감꽃이 흐드러진 옛 골목길이 나올 것 같다. 우물가에는 아기 업은 아낙들이 쌀을 씻고, 아이들이 나풀나풀 고무줄을 뛰는 푸른 강둑길에는 초록의 포플라나뭇잎들이 탬버린을 칠 것이다.

하얀 티밥을 튀기는 냄새는 감꽃 냄새가 묻어 있다. 감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면 유달리 티밥 기계를 리어카에 끌고 오는 티밥장수 아저씨가 많았다. 70년대, 아니 80년대만해도 강냉이 튀기는 요란한 소리는 사람이 사는 동네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다.

a 노인과 삶

노인과 삶 ⓒ 김재문

영원의 삶 속으로


삶이 사진이 되는 순간은 많지만, 사진이 삶이 되는 순간은 많지 않다. 관광지에서나 아름다운 배경으로 한데 어울려 가족이나 연인이나 친지와 얼굴을 찍는 순간은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지만, 사진이 삶이 되는 순간은 아닐 것이다. 이 경계선에 작가의 사진과 우리가 찍는 사진의 경계선이 드러난다 하겠다.

한적한 도로를 이용해서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가는 풍경은 사실 우리의 잡다한 삶보다 아름다운 풍경의 매력이 된다. 사진은 확실히 삶보다 아름답다. 노인들이 일을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철학이 되고 시보다 아름다운 삶의 풍경이 된다.


카메라의 십계 중 "렌즈의 먼지를 털기에 앞서 눈의 먼지를 털어라"는 조항처럼 카메라의 눈은 마음의 눈이고, 이 눈은 삶의 관점이자 작가의 세계관이 된다면, 김 작가의 세계관은 별다른 해석 없이 사진 한 장에서 다 읽게 된다.

그건 손바닥만큼 큰 사진이었다. 오래 오래 지니고
다닌던 것인 듯 거미줄 모양 이리저리 갈라져서
금이 무수히 난 사진이었다.
시골 초가집 마루에 창호지가 찢어진 문을
배경으로 하고 찍은 한 육십이 되어 보이는
노파의 사진......

- 이범선 '동 트는 하늘 밑에서' 중에서


a 시선이 닿는 곳

시선이 닿는 곳 ⓒ 김재문

내 삶이 사진이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찰나와 대결한다, 고 말한다. 삶 역시 찰나와의 대결이다. 찰나는 불교에서 수 억겁을 이른다. 우리의 인생 또한 찰나에 지나간다는 표현이 있듯이, 내 삶 역시 한 장의 영정사진 한 장 속으로 언제인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래에 다가올 죽음이나 늙음에 대해 마치 먼 세계의 일처럼 생각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처럼 죽음이란 어쩜 삶 속에 내재할 때 그 삶은 한순간이나마 삶에 더욱 열정적이 될 것이다. 노인이 되어가는 모습은 누구나의 미래의 시간이며 지금의 내 시간의 남은 한 부분일 것이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어느 미인보다 아름다운 노인의 모습, 그 모습에서 삶은 살아 있기에 귀하고 유한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미인보다 아름다운 노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잡은 작가의 눈에 의해, 우리의 삶 속에 숨은 비의를 새로운 미학으로 관찰케 된다.

덧붙이는 글 | 작품 속에 나타난 삶의 미학

덧붙이는 글 작품 속에 나타난 삶의 미학
#김재문 #사진 #노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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