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메∼분한 거! 전사모 만나야 쓰겄는디"

[현장] 오월어머니회, 전사모 만나려고 상경했지만

등록 2007.08.09 15:33수정 2007.08.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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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월 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은 9일 오전 서울 단성사 앞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 관람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애초 이들은 전사모 회원들에게 영화를 공동 관람하고 토론을 제안했으나, 전사모쪽은 이를 거절했다.

'오월 어머니회' 회원 20여명은 9일 오전 서울 단성사 앞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 관람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애초 이들은 전사모 회원들에게 영화를 공동 관람하고 토론을 제안했으나, 전사모쪽은 이를 거절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a 기자회견 도중 전옥주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전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간첩으로 오인받아 1년여간 옥고를 치뤘다. 5·18 당시 핸드마이크를 들고 광주 시내 전역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도중 전옥주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전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간첩으로 오인받아 1년여간 옥고를 치뤘다. 5·18 당시 핸드마이크를 들고 광주 시내 전역에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새벽같이 오느라 잠도 못 자고 왔는디,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랑 털어놓고 이야기할라고. 근디 이 눔들, 나타나지도 안 하고. (전사모가 광주시민들을) '폭도다, 뭐다' 하니께, 우리를 보고 참말로 우리가 폭도인지 보라고."

9일 낮 12시께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 임근단(76·전남 광주)씨가 기다리던 그들은 오지 않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임씨는 "워매, 분한 거"를 연신 반복하며 입가에 맺히는 땀방울을 훔쳐냈다.

이날 새벽 광주에서 함께 출발한 '오월 어머니회(회장 안성례·이하 '어머니회')' 회원 16명도 영화 시간(오전 11시 20분)이 지났지만, 극장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합세한 회원을 포함한 20여명의 회원들이 기다린 이들은 바로 인터넷 카페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전사모) 소속원들.

전사모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해 "오락영화를 사실인 양 떠든다"며 관람 반대운동을 펼치자, 이에 반발한 어머니회는 지난 6일 "영화를 같이 보고, 토론을 벌이자"고 제안한 것.

전사모 위해 산 표는 영화홍보용으로

하지만 양측의 만남을 불발됐다. 애초부터 전사모쪽은 제안에 불응했고, 어머니회 회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경했다. 어머니회 회원들은 전사모 외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영화를 같이 보자"는 제안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냈다.


어머니회 회원들은 전사모와의 만남이 불발된 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안성례 회장은 "새벽부터 잠도 못 자고 밥도 굶고 전두환의 일당들이 나타나기를 바랬는데, 우리가 고생만 했다"며 허탈해했다.

실제로 어머니회 회원들은 이날 새벽 6시 모여 아침식사도 거른 채 고속버스로 상경했다. 오전 10시께 서울에 도착, 곧바로 지하철로 종로 3가로 이동, 단성사 앞에서 서울 회원들과 합세했다. 60세를 훌쩍 넘은 노모들에게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안 회장은 전사모를 가리켜 "한편으로 우리가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라며 "되레 (기자들이 취재차 전화를 하면) 자신들이 잘한 것인 줄 알고, 되레 더 선동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명자 사무국장은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 오지 않으니 서운하다"며 "대신 여기 온 기자들이 전사모쪽에 오지 않은 이유를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동행한 이영자(65)씨는 "전사모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대화를 한 번 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5·18 당시 간첩으로 오인받아 옥고를 치른 이씨는 '광주 시민들은 폭도'라는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a 오월 어머니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 팬 카페 '그날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 회원 10여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얼굴 가면을 쓰고 회견에 참석했다.

오월 어머니회가 주최한 기자회견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 팬 카페 '그날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 회원 10여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대신해 그의 얼굴 가면을 쓰고 회견에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영화 못 보겄어... 슬퍼 불잖아"

전사모에 제안한 만남의 시간(오전 11시)이 지나자 어머니회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사모를 향해 "5·18에 대한 왜곡과 영화 <화려한 휴가> 관람 반대운동을 즉각 중단하라"며 "1만명이 넘는다는 전사모 회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면, 떳떳하게 우리와 만나 영화에 대한 평가와 5·18에 대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 팬카페 '그날의 작전명 화려한 휴가' 회원 10여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 가면을 쓰고 참석했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셈. 이 외에도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관계자 10여명도 기자회견에 동참했다.

어머니회 회원들은 결국 이날 상경의 목적을 '전사모와의 토론'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 홍보'로 바꿨다. 전사모를 위해 여분으로 산 영화표 10여장을 즉석에서 서울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처음에는 "암표장사 같다"며 시민들에게 다가가기를 머쓱해 하던 이귀님(68·광주 용봉동)씨는 "<화려한 휴가> 안 보신 분들, 지금 단성사에서 하니까 꼭 보세요"라고 거리 홍보에 나섰다.

영화를 직접 볼 것을 권하자 이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미 봤다"며 "영화 못 보겄어, 슬퍼 불잖아"라고 손사래를 쳤다. 대부분 회원들은 이미 영화를 두 번 이상 봤다.

하지만 이추자(52)씨처럼 영화를 아예 못 본 이들도 있었다. 5·18 당시 전남도청 앞 금남로 인근에 살았던 이씨는 "그 때 이후로 총소리 나는 건 못 본다"고 말했다. 당시 이씨는 임신 3개월이었던 상태로, 집안으로 날아 들어온 총알에 맞아 오른쪽 귀를 다쳤다.

5·18 산 증인들이 본 영화 <화려한 휴가>
영화 속 '신애'의 실제인물 "영화는 일부에 불과"

9일 오전 서울 종로3가 단성사 앞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거리 품평회'가 열렸다.

이날 새벽 광주에서 상경한 '오월 어머니회'(관장 안성례)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영화 속 이야기와 자신들의 체험들을 비교했다. 5·18의 산 증인들이 영화 속 허구를 검증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광주를 기억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 준 데 대해 감사하다"면서도 "우리가 직접 겪은 것에 비하면, 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평했다.

전옥주씨는 "영화가 다룬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며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영화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이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용기있게 시작해줬다"고 평가했다.

전씨는 당시 5월 19일부터 핸드마이크를 들고 거리 방송을 했던 인물이다. 영화 속 신애(이요원 분)의 실제인물인 셈. 전씨는 "광주 시민 모두가 5·18과 관련돼 있다"며 "오직 자신과 이웃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정현애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 고문은 "당시 전남도청에 조기를 단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정 고문은 "21일 계엄군이 물러나서, 조기를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장롱 속 검은 천을 꺼내 태극기 위에 묶었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영화에 대해 "다 좋았지만, 영화 끝에 '아직까지 발포 명령자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자막을 넣었으면, 5·18에 대해 좀 더 알릴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화순(71)씨는 "1980년 5월 13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 있었다"며 "대학생들과 '아리랑' '선구자' 등을 부르며, 군인들과 맞섰을 때는 재미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17일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군들의 무자비함이 드러났다"며 "바로 눈앞에서 사람들이 곤봉으로 맞아 죽고, 팬티 바람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오월 어머니회 #화려한 휴가 #전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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