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성터, 천 년의 나무

옛 수영성의 푸조나무-천연기념물 311호

등록 2007.08.10 14:10수정 2007.08.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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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옛 수영성의 송씨 할머니나무, 푸조나무 오백 년을 사는 동안, 노 부부 나무의 푸조나무

옛 수영성의 송씨 할머니나무, 푸조나무 오백 년을 사는 동안, 노 부부 나무의 푸조나무 ⓒ 송유미

천 년의 사랑, 그 연리지의 고통

두 그루 나무가 한그루 연리지가 되었다. 일명 '노부부 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의 나이는 오백 년이 넘었다. 결혼식을 올리고 불과 몇 시간 후 신혼여행지에서 이혼을 하는, 요즘 결혼 세태에서 '노부부 나무'의 천 년의 해로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은 아무리 뿌리가 깊은 가문에 태어나도 이 나무의 깊이에 이를 수가 없다. 이런 천 년의 나무에 비하면 인간의 목숨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천 년의 비바람을 견디고 왔을 당산나무, 천 년의 이 푸조나무를 찾아오는 발길은 끊임이 없고,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손을 모아 합장케 한다.

나무에 깃든 인간의 혼들

한 때 흥행한 영화 <편지>의 주인공 박신양은 죽어서 한 그루 나무가 된다. 또 실제 얼마 전 돌아가신 오규원 시인도 시인의 유언에 의해 수목장이 치러졌다. 사람은 이렇듯 대부분 죽어서 한그루 나무가 되고 싶거나 새가 되어 창공을 날아가고 싶어하는, 지극히 자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신목의 나무 속에는 숱한 민담과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수, 생명의 나무, 축으로서의 나무, 죽음과 재생의 나무, 모성적 속성과 남성적 생산성을 갖춘 나무, 지혜의 나무, 희생의 나무,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나무의 관념은, 전 세계적으로 신화와 민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아버지 환인(하느님)의 도움으로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에서 먼저 신성한 나무의 예를 볼 수 있다. 환웅은 무리 300명을 거느리고 이 나무에 내려와 거기를 신시라고 일렀다.


신목의 숭배와 인간과 나무의 접목

a 그 천년의 해로, 영원한 일심동체

그 천년의 해로, 영원한 일심동체 ⓒ 송유미

천 년의 나무의 신성함과 풍요와 생산 능력에 대해 묘사한 것이 많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권선징악의 구조를 취한다. 나쁜 사람은 벌을 많고 선한 사람에게 보답을 꼭 한다.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271번지의 옛 수영성 안에 자리하고 있는 이 당산나무, 푸조나무는 할머니나무로 불리기도 하고, 부부의 연리지나무, 천 년의 나무, 신목, 당신나무 등 나무에 붙은 이름이 많다.

이 나무에는 송씨 할머니의 혼이 깃들고 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할아버지 나무와 뿌리가 하나로 만나 몸도 이제 하나가 된 이 푸조나무, 나무의 몸에는 굵은 혹이 여기저기 불끈불끈 솟아있다. 오백 년을 사는 동안, 아무리 일심동체라도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다투거나 싸우면서 얻어맞아서 생긴 혹 같이.

깊고 넓은 나무 그늘이 사람을 품는다

이 푸조나무에 깃든 송씨 할머니의 혼을 모신 제당이 수영성 안에 있다. 이곳에는 촛불과 향불이 꺼지지 않는다. 나무 앞에서 아이를 못 가진 아낙과 재수하는 아들의 입학과 또 취업의 기도를 드리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무더위 탓일까. 공원은 조용하고 실직자 아저씨들과 노인들이 신선놀음의 장기판과 바둑판에 빠져 있다.

이 나무의 그늘은 해마다 그늘의 넓이가 자꾸 넓어진다. 동서로 23미터, 남북으로 19미터.

사람의 거목의 그늘에 인심이 모여들듯이 이 푸조나무 그늘 아래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개 실직자와 노 신사와 손자를 등에 업은 할머니들이다. 이 넓은 그늘을 가진 수많은 나뭇가지의 휘청거리는 무게를 바쳐주기 위해 사방으로 지렛대가 세워져 있다.

새삼 사람의 거목의 그늘이 그립다. 이 땡볕 같은 세상 속에 넓고 깊은 나무의 그늘을 가진 사람이 저 오솔길에서 손짓하며 걸어오고 있다.

a 넓고 깊은 나무 그늘 아래로

넓고 깊은 나무 그늘 아래로 ⓒ 송유미

절 한 채를 품은
노부부 나무는 이제
자식 같은 그늘을 키우며 산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허전한 마음 속에 그리움의 절 한 채를 짓고 산다.
한 몸으로 살아도 어쩔 수 없이
외로운 나무의 거리처럼
뿌리로 엉금엉금 닿아가서
은하수의 변하지 않는 불멸의 사랑을 약속한다.
사랑의 고통과 나무의 길을
너무나 잘 아는 연리지 나무는
이제야 고요한 절 한 채가 되었다.
서로의 증오를 삭히며
서로의 몸 속에 불을 태우고
고요한 절 한 채가 된
노부부 나무 그늘 깊은 품속으로
크고 작은 황금 물고기들이
파득파득 나뭇잎 사이로 헤엄친다.

- 자작시 '부부 나무 그늘 아래서'

덧붙이는 글 | 나무와 인간

덧붙이는 글 나무와 인간
#수영성 #부산 #송씨 할머니나무 #푸조나무 #일심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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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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