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정 언니 만나서 반가워~

[캐릭터 열전 ⑤] 현실과 판타지를 적절히 조합한 캐릭터 오수정

등록 2007.08.17 11:06수정 2007.08.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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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젊은 시절 잘 나간 수정 언니. 덕분에 30대에 인생이 초라해져도 도도하려 애쓴다.

젊은 시절 잘 나간 수정 언니. 덕분에 30대에 인생이 초라해져도 도도하려 애쓴다. ⓒ SBS

어쩜 하나같이 우리의 노처녀 언니들은 연애에 시쳇말로 '허당'일까. 늘 실속 없는 연애를 하는 그녀들의 속사정. 그런데 또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연애 결말이 무척 좋은 그녀들. 삼순이 언니도 사랑에 채이고, 선을 보며 전전긍긍했지만 재벌 2세 삼식이 연하남과 잠자리 동침에 성공했고, 우리 달자 언니도(<달자의 봄>-오달자(채림)) 재벌 2세, 알고 보니 변호사였던 연하남과 사랑에 골인했다. 드라마 <9회말2아웃>의 난희 언니도 30년 우정지기 형태와 사랑을 시작할 테고,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 언니만 연애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그 이름도 찬란하여라! 드라마 <칼잡이 오수정>의 오수정(엄정화)! 이 언니 나이 좀 많다. 이제껏 나온 언니들보다 무려 네 살이 많은 서른 넷. 직업 멋지다. 쥬얼리샵 점장인데, 알고 보면 회사를 살리고자 동분서주하지만 실속 없는 회사일 뿐이다. 거기에 착하지만 무능한 아버지(김갑수)와 돈 필요하면 찾아오는 어머니 거기에 어머니가 밖에서 낳아 데려다 놓은 남동생까지. 그래서 일찍이 계산에 밝고 현실에 눈 뜬 언니다.

잘나가던 수정 언니, 나는 너희들과 달라!

사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최고의 퀸카로 날리며, '사랑은 창 밖의 빗물같아요'를 부르면 뭇 남성들이 쓰러졌고, 모든 남성들에게 "서울대 법대 붙으면 사귀어주겠다!"고 단서를 붙였는데, 뚱뚱하고 폭탄인 고만수(오지호)가 그것을 달성하고 말았다. 대학교 시절에는 여전히 잘 나갔다. 고만수에게 다시 한 번 "사시에 붙으면 결혼해 주겠다"고 이야기해 고수는 스물 여섯에 그것을 달성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결혼을 하려하지만 3차에 떨어졌음을 알고 당당히 문을 박차 나간다. 울며 불며 매달리는 고수에게 남긴 한 마디는 "그럼 죽어!"였다. 그래서 벌을 받는 것일까? 30대 접어들며 수정 언니 인생이 하락하고 있다.

다 쓰러져 가는 회사 부여잡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 이해타산적인 면모를 보여줄까 궁금하기 그지없다. 생김새는 여우인데 알고 보면 곰이다. 연봉이 3천이 안되는 상황에 월급이 몇 달째 밀려도 그저 하는 수 없이 다니는 그런 수정 언니다.

a 현실에 일찍 눈을 뜬 나머지 전설의 속물이 된 수정 언니지만 그 계산이 사실 알차지 못하다.

현실에 일찍 눈을 뜬 나머지 전설의 속물이 된 수정 언니지만 그 계산이 사실 알차지 못하다. ⓒ SBS

그래도 한 때 잘 나간 경력이 있어 다른 노처녀 언니들과는 다르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잘 나간 덕분에 인생의 꽃이 지는 30대인데도 여전히 콧대를 추켜세우고 호기롭게 당당한 워킹을 뽐낸다. 적어도 삼순이 언니와 다르다는 난희 언니도 일과 사랑에서 순조롭지 못하다. 잘 나가던 시절 하나 없어 자신감이 부족하다. 다만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아직도 꿈을 꾸는 언니다. 삼순 언니도 그랬다. 단 한 번도 날씬한 적 없었던 언니다.


사랑도 머리를 써야해!

수정 언니는 다른 언니들처럼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 사랑에 뛰어 들지 않는다. 맞선에 나가 "고령 임신은 위험해서 싫다!"는 말을 들어도 일단 도도함을 유지하는 수정 언니. 그래서 복대를 차면서까지 몸매를 유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적금 4천만 원을 내밀지만 무능한 아버지가 폭발사고를 내면서 날아가 사실 무일푼이다. 그래서 결혼정보회사에서 받은 점수도 62점. 도도함을 유지하는 수정 언니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에는 계산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계산기를 이리저리 두드려 댄다.

매몰차게 대했던 만수가 자산 6백만불과 PGA 우승에 빛나는 골프선수 '칼 고'가 되어 돌아오자 다시금 그에 매달린다. 게다가 만수가 복수하고자 무일푼 사기꾼 정우탁(강성진)을 5백억대 부자로 속여 놓은 덫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그 뿐인가. 정우탁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만수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할 정도로 속물이다. 그래서 수정 언니가 두드리는 계산기는 사실 고장 난 듯싶다.

a 학창시절 자신의 밥이었던 만수에게 매달리는 수정 언니는 그래서 현실감이 있다.

학창시절 자신의 밥이었던 만수에게 매달리는 수정 언니는 그래서 현실감이 있다. ⓒ SBS

이 부분에서 일단 수정 언니는 현실적인 캐릭터로 둔갑한다. 비록 그것이 판타지적인 요소와 결합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가 되기도 하지만 수정 언니 속에 나이가 먹을수록 눈이 높아져 더욱 시집을 못 가는 현실 속 언니들이 담겨져 있다. 이기적이고 얄미울 수 있는 이 언니가 애처로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도도한 척하지만 젊어 보이고 싶은 수정 언니

그러면서도 이 언니 무능한데 착한 척 하는 인간이 제일 싫다고 소리치고, 짜증이 나면 직원들에게 대청소를 시키는 아주 악랄한 위인이지만 마음만은 청춘이고 싶어 하는 여느 노처녀 언니와 다르지 않다. 미용실 가서 문근영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무작정 우기고, 다리 털 밀면서 남자랑 통화할 땐 디자인 책을 읽고 있는 수정 언니로 변모한다.

복대에 관장약을 먹고 과도한 다이어트로 병원에까지 실려 간 수정 언니. 수정언니는 스칼렛 오하라가 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삼순이 언니와 이복 자매로 남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제 아무리 도도해보이려 짙은 화장과 높은 구두를 신지만 그녀 마음은 늘 부족하다. 모두 꼬여버린 30대 인생 탓이다.

사실 이 드라마도 결말은 만수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진심임을 깨닫고 자신도 만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둘이 해피엔딩으로 끝이 날 게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수정 언니가 삼순 언니나, 영애 언니만큼 귀엽고 매력적인 이유는 여우짓은 혼자 다 하지만 역시 곰의 탈을 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영악하게 머리를 굴려도 번번이 연애에 죽을 쑤고, 보상이 적은데도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다녀야 하는 30대 여성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기 때문이다. 즉, 적절한 현실과 판타지를 조합한 수정 언니인 것이다.

그래서 만수와 엮어 가는 사랑이야기보다 수정언니의 일상이 더 큰 재미를 주는 <칼잡이 오수정>이다. 어디까지 그녀가 무너지고, 떨어지는지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 노처녀 언니들에 동병상련을 느끼며, 대리만족할지 기대해 본다.
#칼잡이 오수정 #노처녀 #엄정화 #오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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