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253회

등록 2007.08.17 09:27수정 2007.08.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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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곡은 회운사태와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운중보 내의 인물들 동향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 두 가지 모두 일지도 몰랐다. 회운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화산에서 사태께 손을 썼을 것이란 말씀인가요?”


우슬이 물으며 미세하나마 초조한 빛을 띠었다. 설중행의 얼굴에도 노기가 떠올랐다. 자신과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직접적으로 무엇을 해준 바는 없었지만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따스한 애정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베푼 푸근한 정이 있었다.

“가능성이 높소. 곽대협께서 말씀하지 않았소? 삼합회마저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했다고. 무엇보다 지금 좌총관께서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걱정이오.”

걱정스런 얼굴이었지만 우슬은 갑자기 엷은 미소를 떠올렸다.

“말투를 보니 함곡선생께서는 이미 대책을 세워두셨군요.”

그 말에 함곡이 의외라는 듯 우슬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에는 의혹과 감탄의 빛이 복잡하게 섞여있었다. 우슬과 대화를 하다보면 확실히 다른 사람과 달랐다. 뭔가 알지 못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안배를 하기는 했지만 미흡하오. 아니 아까도 말했듯이 안배한 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 사람이 다칠까 걱정이오. 저들의 전력과 거의 엇비슷해 그것 때문에 지금 고민 중이오.”

“그렇다면 함곡선생의 계획대로 사람을 보내야 하겠군요. 상대의 전력에 비해 월등할 정도로 우리 측 사람을 투입해야 피해가 적을 테니까요. 특히….”


우슬은 설중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태는 당신과 관계있는 분이예요. 당신이 움직여야 할 것 같군요.”

“회운사태께서 나와 무슨 관계가….”

설중행이 반사적으로 묻자 우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을 묻기보다는 빨리 움직이는 것이 나을 거예요. 그 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당신과 나는 천추의 한을 남기게 되죠.”

우슬에게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었다. 여자임에도 입을 열면 남들을 아우르고 설득하는 위엄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함부로 범접하지 못할 기품이 있었다.

“소저의 말씀이 맞소. 설소협이 능대협과 움직여 주셨으면 좋겠소. 단.....”

함곡의 얼굴이 굳어들었다.

“손을 쓰지 않고 사람을 빼내올 수 있다면 모르지만 손을 쓰게 되면 자하진인은 반드시 죽이시오.”

그 말에 좌중은 정말 놀랐다. 함곡은 점점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는 몰라도 좌중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독한 결정이었다. 아무리 쇠락해 명색뿐인 육파일방이라 하더라도 그 수장(首將)을 죽인다는 것은 육파일방과 영원히 등을 돌린다는 의미다. 육파일방을 적으로 돌린다면 무림에서 자유로워질 인물이나 문파는 없다. 도대체 함곡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이런 극단적인 결정을 하는 것일까?

“자네답지 않군. 아예 무림 전체와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인가?”

풍철한이 분위기 상 심하게는 못하고 투덜거리자 함곡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새 판을 짜야할 시점이네. 지금 우리의 적은 육파일방 정도가 아니네. 우리는 지금 이 나라의 실권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는 자와 국운(國運)을 걸고 싸우는 것이란 말이네.”

함곡의 말은 단호했다. 그는 대의명분이 있었고, 반드시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함곡은 신중한 사람이다.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며 마침내 했던 결정은 그가 죽지 않는 한 번복되거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거창하군.”

풍철한이 또 다시 투덜거렸다. 자신은 국운이니 뭐 나라를 구하는 일이니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 일은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일이었고, 그저 지금 사람과 부대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자신 같은 사람들하고는 별 관계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보다는 오늘도 어떤 재미난 일이 있을까 이리저리 떠돌며 사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걸세. 우리는 지금도 부족한 인원인데 두 사람을 보내면 어찌할 셈인가?”

풍철한이 판단하기에 능효봉과 설중행은 그 수위를 측정할 수 없는 대단한 고수들이다. 이런 시기에 인원을 분산하는 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다.

“모험이지만 해야 할 일이네. 또한 내 계산대로라면 저들이 우리가 있는 이곳까지 당도하려면 한 시진 반 정도는 걸릴 걸세.”

“..........?”

“나는 용추를 잘 알고 있네. 그는 진식에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고, 그가 만약 진을 파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온다면 반 시진 정도면 이곳에 도착하겠지. 허나 그는 매우 신중해서 진을 하나하나 파훼하면서 들어올 것이네. 내가 무슨 장난을 칠 것이라 예상하고, 아예 진을 이루고 있는 주요 방위의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올 것이란 말이네.”

이것은 두뇌싸움이었다. 상대를 안다는 것은 승리를 하는데 있어 첫 번째 조건이다. 함곡은 고개를 돌려 설중행과 능효봉을 보았다.

“따라서 두 분은 한 시진 내에 모든 것을 끝낸다는 생각으로 움직여 주셔야 하오. 좌총관을 반드시 모시고 오도록 하되, 삼합회의 인물들과도 접촉해서 우리와 합류시킬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소.”

“삼합회가 가능하겠소?”

능효봉이 묻자 함곡은 슬쩍 설중행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상만천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감지덕지 할 것이오. 더구나 설소협이라면.....”

헌데 말을 하다말고 우슬의 눈치는 왜 보는 것인지.....? 아마 알만한 사람들의 뇌리에는 설중행과 궁수유의 관계가 떠올랐을 것이다.

“나도 같이 가면 좋지 않겠소?”

백도가 나섰다. 동생처럼 생각하고 잇던 홍교와 당화의 죽음이 침착하고 냉정했던 그를 이곳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드잡이 질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함곡은 잠시 백도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어쩌면 오히려 더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또한 백도라면 자신이 안배한 인물을 알 수 있으니 쓸데없는 충돌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시오. 다만 되도록 빠르게 움직여 주시면 좋겠소.”

백도가 능효봉과 설중행을 바라보았다. 더 할 말이 없으면 가자는 의미다. 세 사람은 일제히 좌중에 포권을 가볍게 취하고는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자네는 끝까지 나를 방패막이로 삼는구먼.....”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또 다시 풍철한의 볼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애매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웅래 #추리무협소설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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