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땡! 추억의 수업종이 울렸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도 추억은 유년으로 남아

등록 2007.08.20 13:49수정 2007.08.20 14: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뛰는 줄넘기가 재미있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뛰는 줄넘기가 재미있기만 합니다 ⓒ 김영래

세상에서 가장 젊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아닐까. 강보에 싸인 시간들은 우리의 기억 저편에 있을 테고, 모든 이들에게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기억 속에서 곱씹히며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삶일 것이리라.


"자, 동문 여러분 단상 앞으로 모여 주세요." 사실 이 말은 30~40년 전 "어린이 여러분 조회대 앞으로 모여 주세요"라는 선생님 목소리 변성이리라.

올망졸망한 키, 대충 집에서 엄마가 가위로 자른 머리, 형이나 누나로부터 물려받은 헐렁하거나 깡똥한 옷을 입어, 손으로 짜면 땟국물이 줄줄 흐를 것 같은 아이들이 지금은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중년의 나이답게 뒷짐지고 어슬렁거리며 하나둘 모여들었다.

마당은 온통 잡초밭으로 변해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 주었다.

학교는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에 신입생이 없어 10여년 전에 폐교가 되었고, 지금은 지적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집안으로 말하자면 대가 끊긴 것이어서 교정은 누구 하나 풀 한 포기 뽑지 않았으니 겨우 사람 다니는 발길 정도가 길 모양을 하고 있었다.

a 조회대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올해는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인해 많은 동문들이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조회대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올해는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인해 많은 동문들이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 김영래

푹푹 찌는 듯한 폭염 속에서도 추억을 찾아온 동문들로 운동장엔 만국기가 걸리고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그늘 아래 천막을 치고 또래 친구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이미 도회 물을 먹고, 멀리 남도지방에 사는 친구들의 입에 밴 사투리도 어느새 어릴 적 말투로 다 돌아와 있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 이미 추억 속의 삶으로 끌려와 있었다.

가난한 어릴 적 추억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운동회와 소풍인데 그것은 아마도 김밥이나 사이다 같은 사치품(?)을 먹어 볼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리라.

"너 좋아했는데..." 스스럼 없는 유년의 고백


그런 어린이들이 지금 운동회를 시작했다. 편을 나눠 족구시합을 했다. 몸 바짝 옆으로 지나가는 공에 발을 뻗어 보지만 이미 지나쳐 가고 없다. 예전 같으면 잽싸게 걷어 넘겼을 것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몸은 이미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못하냐고 핀잔을 들어도 허허 웃고 만다.

한번쯤 맘 속에 연정을 품었을 여자친구들과도 스스럼 없이 악수를 하고 '내가 그때 너 좋아했는데'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고, 손잡고 뛸 수 있는 것은 같이 한 유년의 꿈 때문이리라.

a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시절 연정을 갖었을 여자친구들과도 어깨동무하고 달리기를 하며 웃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시절 연정을 갖었을 여자친구들과도 어깨동무하고 달리기를 하며 웃었습니다. ⓒ 김영래


점심을 먹고 좀 여유가 생겨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운동장 한 귀퉁이 조그만 연못에도 잡초가 무성하게 덮였다.

a 붕어가 꽤 많이 살아서, 짖꿎게 그곳에 나무를 꺾어 낚시를 하다 선생님한테 들켜 혼났던 친구가 생각나던 연못.

붕어가 꽤 많이 살아서, 짖꿎게 그곳에 나무를 꺾어 낚시를 하다 선생님한테 들켜 혼났던 친구가 생각나던 연못. ⓒ 김영래

수 없이 오르내렸을 계단은 밟아 주는 이 없어 여기저기가 부서져 버렸고,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하고, 쉬는 시간 친구들과 조잘대던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오던 교사(校舍) 앞도 고요하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불끈 쥔 주먹은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으며, 추위 속에서 아버지를 온몸으로 데운 효행소년 정재수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a 세월의 무심함에 가슴이 쓸쓸해 지는 계산을 천천히 밟아 보았습니다. 그 때의 추억이 발밑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세월의 무심함에 가슴이 쓸쓸해 지는 계산을 천천히 밟아 보았습니다. 그 때의 추억이 발밑에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듯 했습니다. ⓒ 김영래


a 무성영화 같은 풍경속을 걸었습니다.

무성영화 같은 풍경속을 걸었습니다. ⓒ 김영래


a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그 주먹이 삭아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욕심많던 어른들의 꿈이 지금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그 주먹이 삭아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욕심많던 어른들의 꿈이 지금은... ⓒ 김영래


a 정말로 가난했던 시절 부모님들은 우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지금은 또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정말로 가난했던 시절 부모님들은 우리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지금은 또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 김영래


이름도 가물거리는 친구의 소식을 찾느라 천막 안은 시끌벅적하다. 친구와 심하게 싸우고 엎드려 뻗치기 벌을 섰는데 선생님이 깜빡 잊어서 그만 경련을 일으켰던 사건, 두서너 평 문방구 처음 생기는 날 단체로 들어가는 바람에 계산이 안 돼(?) 주인 아주머니가 선생님께 항의를 해와 바짝 긴장했는데 담임 선생님이 두 말 않고 그걸 다 물어주고 끝난 사건. 내년 스승의 날엔 시간 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번 찾아 뵙자고. 어디에나 있을 고무줄 끊기 등등….

a 천막 안은 후끈한 열기만큼이나 추억의 만담으로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천막 안은 후끈한 열기만큼이나 추억의 만담으로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 김영래


세 시쯤 되면서 동문회 체육대회가 끝이 났다. 서둘러 제자리로 가야 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추억을 담듯 쓰레기를 담을 때, 아쉬움에 교정을 휘둘러보니 또 허허롭기만해지는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만국기가 걷히고 몇몇 신발에 밟힌 잡초들의 굽은 허리는 며칠 내로 다시 되살아 우리들의 기억을 지워내겠지.

하지만 모두가 돌아가고 폐허처럼 잡초가 무성해질지라도 사이사이에 녹아 있는 추억의 조각들은 내년에 피기 위하여 잠시 잠들어 있겠지.

친구들, 선배님, 후배님 모두들 잘들 돌아가셨는지요?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위치한 양화초등학교(현재 지적박물관) 총동문회입니다.

덧붙이는 글 충북 제천시 금성면에 위치한 양화초등학교(현재 지적박물관) 총동문회입니다.
#동문체육대회 #초등학교 #운동회 #소풍 #양화초등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북 제천의 소소한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2. 2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3. 3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휴대폰 대신 유선전화 쓰는 딸,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