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전사'로... 역전의 꿈은 물거품으로

결과 승복한 박근혜, 마지막 모습까지 아름다울까

등록 2007.08.20 18:46수정 2007.08.20 18:46
0
원고료로 응원
a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른 뒤 당원들 앞에서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른 뒤 당원들 앞에서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여전사 박근혜'가 바랐던 대역전 드라마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는 20일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졌지만, 그간의 경선은 '공주 박근혜'가 '여전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주에서 전사로... 독해지고 강해진 박근혜

박 후보에게 늘 따라다니던 별명은 '공주'였다. 유신의 후광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입문했다는 야유와 함께 '유신공주', 늘 메모(수첩)에 적힌 얘기만 반복하니 대화가 안 통한다는 비아냥이 담긴 '수첩공주'가 그 예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 동안 공주라는 꼬리표는 쏙 들어갔다. 연설회를 거듭할수록 그도 '전사'로 다시 태어났다.

박 후보는 연설이나 강연 때면 늘 주머니에서 메모부터 꺼내 연단에 올려놨다. 그는 메모와 청중을 번갈아 봐가며 조곤조곤 말했다. 이를 두고 캠프에선 '영락없는 모범생 스타일'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대중연설에서도 이래선 곤란했다. 그의 측근들은 "2등은 원래 내질러야 한다. 좀 내지르시라"고 부추겼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과연 바뀔 수 있을까', 또 걱정했다.


그런데, 그는 진짜 변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13번 전국 순회 연설회를 끝낸 뒤 그는 공주가 아닌 전사가 됐다.

a 10일 오후 한나라당 대선 후보선출 전북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린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박근혜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10일 오후 한나라당 대선 후보선출 전북지역 합동연설회가 열린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박근혜 후보가 연설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야성적으로 바뀐 몸짓, 공격적인 연설


항상 연단에 올려놨던 손은 하늘로 향했다. 박 후보는 연설에서 주먹을 쥔 채 팔을 높이 치켜들거나 경우에 따라 양 손을 번쩍 들었다.

이 후보를 공격하는 대목에선 손을 편 채 연속해서 칼을 치는 듯한 포즈로 단호한 이미지를 심었다.

연설 내용도 '어록'이란 표현이 나올 만큼 상대 후보의 허를 날카롭게 찔렀다. 이 후보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일라치면, 다음번 연설회에서 어김없이 공격했다. 새롭게 터진 의혹이 있으면 반드시 연설에서 언급했다.

a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득표 2위를 차지한 박근혜 후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제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가 득표 2위를 차지한 박근혜 후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연설문은 유승민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이 도맡아 썼다. 청주(충북) 연설회를 빼고 12번의 연설문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정책메시지팀이 초안을 내면 그가 직접 뜯어 고쳐 박 후보 손에 쥐어진다. 때로 박 후보가 부분적으로 수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대로 청중에게 전달됐다.

연설 내용을 두고 캠프 내에선 "명문이다"란 평가와 "이 후보를 너무 공격하면 역풍이 분다"는 우려가 함께 나왔다. 하지만 연설회를 지켜본 지지자들은 "속이 시원하다"며 열광했다.

유승민 단장은 "캠프 내에선 이 후보를 너무 공격하면 안 된다고 말리기도 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유 단장은 "후보가 할 말 못해서 억울하지는 않도록 연설문을 썼다"며 "그에 대한 심판은 선거인단이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따로 연설 선생을 두진 않았다고 캠프 측은 귀띔했다. 유 단장은 "기대 이상으로 선수가 잘 뛰어줬다"며 "그 모습이 호소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선 결과 승복하겠다"... 깨끗이 패배 인정, 그러나

전쟁을 끝낸 전사는 "패배를 인정한다. 결과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승자 이명박 후보에게는 "축하한다. 10년 염원을 성취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자신은 "당원의 본분으로 돌아가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하더라도 고사하겠단 뜻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 마지막날 기자회견에서도 "질 경우 이 후보가 선대위원장직을 제의한다면 맡을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하나가 돼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나간다는 건 지상 명령"이라고만 말했을 뿐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백의종군하는 박근혜, 그의 뒷모습이 끝까지 아름다울지 지켜볼 일이다.
#박근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5. 5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윤석열 정부에 저항하는 공직자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