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보, 당신을 미워합니다

<가시고기> 작가 조창인의 신작장편소설 <아내>

등록 2007.08.22 10:37수정 2007.08.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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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 밝은세상

<가시고기>를 읽으며 가슴 찡한 감동을 받은 바 있었던 터라 <가시고기>의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내>를 펼쳐들었다.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손에 들었던 <아내>를 보고 곁에 있던 친구는 ‘뻔한 책’을 본다며 웃었다. 친구는 <아내>의 내용을 두고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아내의 불치병에 마음을 되돌릴 것이라 했다. 친구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며 맞장구를 쳤지만 드라마에서 종종 쓰인 소재의 재탕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책 한 권을 먹어치우듯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은 뒤 지금 드는 생각은 친구의 추리는 겨우 소재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의 구조는 단순하다. 남편 찬우와 아내 상희, 이들 부부에게 힘이 되는 친구 민기와 이들 부부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미나가 주요인물이다. 친구가 짐작했던 것처럼 소설 속에서 아내는 병을 앓고 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만나기 전에 사랑했던 미나를 보고 흔들린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법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아내 상희가 존재하는 한 남편 찬우의 행동은 불륜으로 판단될 만하다. 찬우는 아내 상희와 같이 있는 것이 지겹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아내보다 미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좋아진 것일 뿐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종종 등장하는 불륜의 질펀한 사랑놀음과 다르다. 미나를 대하는 찬우는 지난날의 기억 속에 머물러있을 뿐 재회한 미나의 달라진 모습에 미나가 자신을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때문이다.

찬우의 모습은 결혼을 하고서도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을 비춰준다. 한 번의 연애 없이 결혼한 이들이 적기에 누구나 한번쯤은 ‘옛사랑과 결혼했다?’이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으며 지나간 사랑의 추억에 젖을 수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과 다른 면이 있다면 지독하리만큼 아픈 사랑이었던 미나가 찬우의 눈앞에서 손짓한다는 점이다.

찬우와 상희 부부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민기는 언제나 이들 부부에게 현명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더불어 이들 부부가 서로 느끼지 못하는 사랑을 서로에게 들려준다. 아울러 소설 밖의 독자들에게 이들 부부의 심리를 전달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부부의 심리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작가는 ‘결혼은 남자의 결정대로 이뤄지기 일쑤지만 이혼은 여자의 결정이 없으면 성립되기 힘들다’는 일상의 지혜를 통해 부부의 질긴 인연을 말한다. 더불어 헌신과 인내로 점철된 상희의 사랑이 고지식하다기보다 그녀의 아픈 삶이 빚어낸 사랑의 방식이라고 수긍하게 한다. 난소암이라는 병을 겨우 이겨냈지만 병마는 상희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치명적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다. 여자로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결점을 보듬어준 찬우의 사랑에 상희는 헌신과 인내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부의 인연을 맺기까지 찬우도 상희를 운명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미나의 간교함으로 인해 미나의 남자친구 대신 옥살이를 하게 된 찬우의 엉킨 인생을 풀어준 것이 상희였기 때문이다. 재기의 불씨를 던져준 상희를 향해 찬우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찬우와 상희의 관계맺음을 통해 부부가 서로 다른 모습이기에 서로를 보듬을 수 있으며 동시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음을 확인한다. 아울러 <아내>라는 제목에서 주목할 수 있듯 절절한 상희의 사랑은 인스턴트 사랑으로 목말랐던 우리의 삶을 촉촉하게 한다.


찬우가 이혼증서를 내미는 것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로 막을 내린다. 서로가 등을 돌려야할 때 상희가 남긴 ‘사랑하는 여보, 당신을 미워합니다’라는 쪽지의 내용은 ‘미워해야만 하는 여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찬우와 상희가 어떻게 서로에게 다가서는지는 소설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란다. 단순한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들 부부의 사연이 너무나 애틋하다.

아내

조창인 지음,
밝은세상, 2007


#가시고기 #조창인 #아내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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