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명서가 '검역명령서'인가?

정부의 미국 쇠고기 검역재개 결정에 '검역주권' 포기 논란

등록 2007.08.24 14:05수정 2007.08.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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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1일 오후 경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에 보관중인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31일 오후 경기도 용인 유상냉장 냉동창고에 보관중인 뼈를 발라내지 않은 채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 오마이뉴스 권우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골뼈(척추)가 나와 지난 1일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검역이 다시 시작된다.

정부는 24일 쇠고기 등골뼈 반입에 대한 미국쪽 해명서를 검토한 결과, 이를 받아들여 검역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의 일방적인 해명에 대한 충분한 검증 작업 없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국가의 검역 주권마저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법적 권한인 쇠고기 수입중단이 아닌 '검역중단'이라는 변칙을 써온데다, 미국 현지 실사 등 제대로 된 검증 작업도 거치지 않아 쇠고기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민 건강권 보호 등의 이유로 미 쇠고기 수입에 반대입장을 보여온 시민사회단체들도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 미국쪽 '단순실수' 해명 받아들여... 검역 재개

농림부는 이날 오전 정부 과천청사에서 지난 1일 중단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재개 이유는 미국쪽에서 지난 16일 보내온 해명 내용과 보완대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농림부쪽에서 공개한 미국쪽 해명은 한마디로 "단순 실수"라는 것이다.

내용물의 표시·무게에 따라 미국내 수출과 내수용을 구분하는 구역에서 포장기계가 고장났고, 이 과정에서 상자 일부가 파손됐는 것. 이후 이들 상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교육받지 못한 종업원들이 부주의로 수출용 상자에 T본 스테이크용 쇠고기를 잘못 담았다는 것이 미국쪽 해명이다.


미국쪽은 지난 5월과 6월에 발견됐던 갈비통뼈에 대해서도, 검역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의 단순 실수'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미국쪽은 향후 재발 방지 대책으로 ▲ 상자 포장전 내용물 육안으로 검사하는 인력 배치 ▲ 컴퓨터의 박스 무게 허용범위를 축소해 뼈 포함 여부 식별 강화 ▲ 육안 검사 통관 전까지 한국 수출용 라벨 부착 금지 등을 제시했다.

농림부는 대신 등뼈 검출 작업장에 대해서는 수출 작업장 승인을 취소했다. 이어 갈비뼈가 검출돼 선적중단 조치된 4개 작업장에 대해서도 새 수입위생 조건이 발효될 때까지 수출선적 중단조치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은 그동안 중단조치 해제를 요구했었다.

수입중단도 없고, 현장 실사도 없이 한달 만에 '뚝딱' 검역재개

농림부의 이번 검역재개 결정으로 수입중단 위기까지 몰렸던 미국 축산업계는 일단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반대로 정부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 등을 앞두고 미국 눈치보기에만 급급해 '검역 주권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됐다.

정부는 이미 지난 1일 현행 수입위생조건상 '수입중단' 이유가 되는 광우병위험물질(SRM)을 확인하고도 '검역중단'이라는 변칙을 쓴 것이나, 미국에 보름 이상의 해명 기회를 준 것을 두고 '봐주기' 논란이 일었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당시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수입중단해야할 사안을 검역중단이라는 편법을 쓰고, 다른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사후 해명 보장으로 미국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정부의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는 이번에도 마찬가지. 중대한 수입 위생조건 위반 사안에 대해 검역당국은 미국쪽에 단 한번의 현장 실사도 나가지 않았다. 미국의 일방적 주장만 담겨있는 문서 만으로 '검역중단 조치'를 풀어준 것이다.

a 한미 FTA저지 범국본,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국민감시단은 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철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위험물질(SRM)이 발견됨에 따라 수입전면중단을 촉구했다.

한미 FTA저지 범국본,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국민감시단은 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철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위험물질(SRM)이 발견됨에 따라 수입전면중단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같은 사례 일본은 곧바로 수입중단... 6개월동안 정밀 점검

이같은 정부 태도는 일본과도 완전히 다르다. 작년 1월 미국산 쇠고기에서 척추뼈가 발견되자, 일본 정부는 곧바로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 이후 6개월에 걸쳐 일본은 미국의 수출 과정에 대한 점검작업을 거쳤고 미국도 적극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제시했다.

이후 미국은 일본 수출용 쇠고기에 대해선 철저한 수출증명(EV) 프로그램을 적용해 생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해당 쇠고기의 사육장부터 도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또 작년 10월 미 쇠고기 수입재개이후 뼛조각이 검출되는 등 수입위생조건을 위반한 사례가 무려 163건에 달했다. 하지만 검역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아, 사안을 축소하는데만 급급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작년말 이후 미 쇠고기에서 등골뼈나 갈비통뼈 등 중대한 수입위생조건 위반 사안이 나온 후에도, '수입중단'이나 현지실사 등의 후속 조치를 내리는 데도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농림부 수입재개 발표 직후 별도로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검역 중단 해제 결정은 전날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라며 "이는 한미FTA를 고려해 국민의 건강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 검역주권 포기 반발

축산업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남호경 한우협회 회장은 "현행 규정대로라면 수입 중단 조처를 내려야 하지만 검역 중단을 내리고, 미국 현지 점검도 하지 않고 검역을 재개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작정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다만 축산 농가들은 현재 있는 규정만이라도 정부가 제대로 적용해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우병위험미국산쇠고기국민감시단도 이날 오후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미FTA를 위해 검역원칙을 포기하는 주권포기 행위"라며 "국민건강을 팔아먹는 매국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쇠고기 #광우병 #검역주권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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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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