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이 언제 이렇게 넘어가 부렀당가요?"

할머니들이 악보를 거꾸로 본들, 노래를 뽕짝 풍으로 부른들 어떠랴?

등록 2007.08.25 14:24수정 2007.08.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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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교회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찬양을 부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분도 있고, 검게 염색한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이 나서서 찬양을 하면 물론 박자와 음정이 비슷하다. 바로 뽕짝풍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서로들 이해하고 받아주니 얼마나 좋으랴.

교회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찬양을 부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분도 있고, 검게 염색한 분들도 있다. 이 분들이 나서서 찬양을 하면 물론 박자와 음정이 비슷하다. 바로 뽕짝풍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넓은 마음으로 서로들 이해하고 받아주니 얼마나 좋으랴. ⓒ 권성권

가끔씩 할머니뻘 되는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집으로 찾아갈 때가 있다. 구역 심방이나 예배 차 찾아뵙곤 한다. 희로애락 인생을 살아온 분들이라 옷맵시를 비롯해 머릿결까지도 각양각색이다. 검붉은 빛깔로 염색을 하거나 백발의 자태를 고스란히 뽐내는 분들도 있다. 개성이 넘쳐나 모두들 보기에 참 좋다.


"와따매. 오늘은 무진장 색시하구만요."
"그라제. 내가 쪼까 꾸몄응께요."
"저 양반은 머릿물까지 들였당께요."
"정말 그렇네요. 어쩜 그렇게 멋져분대요."
"돈을 발랐응께 그라제. 안 이쁘먼 쓰겠소."

그 분들은 옷고름과 머릿결은 제법 다르지만 그래도 돋보기 하나씩은 비슷한 걸로 갖춰 놓고 사신다. 나이가 들어갈 무렵엔 그나마 안경도 당신 맘대로 바꿨다지만 노년엔 눈 하나 편한 돋보기면 그저 족하게 여기신다. 그 돋보기로 나름대로 빼곡히 적힌 전화번호를 찾기도 하고 꽉꽉 도장을 눌러 찍기도 한다. 물론 예배를 드릴 때에도 돋보기를 쳐들며 찬송가를 활짝 펼친다.

그런데 아뿔싸. 자랑스레 찬송가를 펴긴 했으나 그것이 거꾸로 펼친 것일 줄이야. 당신 자신은 잘 펼친다고 펼쳤는데 콩나물 대가리가 완전 거꾸로 서 있을 줄이야. 이런 난감할 때가 또 있나. 그럴 때면 옆에 계신 할머니가 적잖은 핀잔을 해 가며 바르게 세워주기도 한다. 그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못내 어색한 분위기를 연출한 그 할머니는 구렁이 담장 넘어가듯 너스레를 놓기도 한다.

"아니 그것이 아니지라이."
"한 바쿠 돌려야 쓰겄소."
"와따매. 이거이 언제 이러코롬 넘어가 부렀당가요이?"
"자기가 고로코롬 펴 놓고선 뭔 놈의 말이 많다요."
"그나저나 아까 몇 장이라 했지라이. 빨리 부릅시다이."

그 정도면 됐을까? 콩나물 대가리 하나하나에 눈동자가 하나씩 하나씩 따라갈 수 있을까? 노랫말 가사 한 꼭지 꼭지마다 돋보기의 초점이 한 점 한 점 따라 잡을 수 있을까? 돋보기를 눌러 썼을망정 노랫말과 박자까지는 버거울 것이다. 그나마 나름대로 터득한 뽕짝 풍으로 모든 곡들을 소화하고 있었으니 어찌 다행스런 일이지 않겠는가.


"아니 이 노래는 언제 배웠다요."
"한 번 불러봉께 금방 따라 부르겄소 안."
"실력들이 무쟈게 좋네요 이."
"그라제요. 시방이라도 노래방가믄 한 가락들 다 한당께요."

나이 많은 할머니들에게 박자가 뽕짝 풍이면 어떻고 또 지루박 풍이면 어떠랴. 높낮이 없이 음정도 한 결 같으면 또 어떠랴. 콩나물 대가리를 거꾸로 본다 한들 또 어떠랴. 백발이 성할수록 이해하는 폭이 그렇게 넓어질 텐데 젊은 내 나이 때에 더욱 그러면 얼마나 좋으랴.
#뽕짝 #할머니들 #대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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