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환경정비사업, 억울한 세입자 양산

서울시 중구 '회현 2-1구역' 안마시술소 15억 날릴 판

등록 2007.08.28 17:26수정 2007.08.2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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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지 30여년이 되도록 이렇다할 사업진행이 없었던 구역이 아무런 예고 없이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서울시 중구는 지난 20일 '회현구역 제2-1지구 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을 위한 공람공고를 냈다. 공고안에 따르면 '회현동 2가 6-11 일원 4693㎡(1420평)에 지하 6층 지상 24층의 주상복합상가를 짓는다. 이 지역은 당초 1979년11월22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그동안 사업진척이 전혀 없던 곳이다. 하지만 올 3월부터 한 법인이 이 지역의 땅을 사들이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11월24일 자본금 5천만원으로 등기된 K법인은 올 3월15일 10-32번지 172㎡를 15억6천만원에 매입한 것을 필두로 지난 7월19일 현재 정비구역 변경신청 기준인 24필지를 매입해 한국자산신탁(대표 남영규)에 신탁의뢰한 상태다. 이사업에는 S건설이 사실상의 시공자로 알려지고 있으며 PF(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우리·한국외환·광주은행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갑작스런 사업소식이 알려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세입자들이다. 상업지역인 이곳에는 40여곳의 소규모 점포가 밀집해 있다. 이들 대부분은 건물주와 계약 당시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사실을 몰랐거나 건물주로부터 "재개발사업은 지정만 되어있을 뿐 언제 될지 모르니 안심하라"는 말을 듣고 장사를 시작했다.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마시술소를 하고 있는 세입자 A씨는 "2004년8월 건물주로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임대차 계약을 했다"며 "낡은 건물을 고치기 위해 15억원정도의 공사비가 들어갔지만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날 판이다"고 분개했다. A씨는 또 "계약 당시 여관이던 곳을 안마시술소로 중구청에 용도변경 신청을 하여 허가를 받았으나 도심재개발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B씨도 "건물주가 아무런 말도 없이 건물을 팔아 길거리에 나 앉게 됐다"고 호소했다.

이같이 피해자가 속출하는 이유는 행정의 예측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전문가는 "도시재생사업 등에서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도시환경정비구역 등의 구역으로 지정되면 빠른 시일내 사업을 진행시키거나, 최소한 사업을 진행하기 3~4년 전에 이같은 사실을 알려 피해자가 없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는 법적으로 아무런 구제장치가 없어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 지역과 달리 회현 2-1구역이 세입자들 몰래 재빨리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조합이 아닌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시행자로 나선 까닭이다. 그것도 다수의 토지등소유자가 아닌 법인인 주식회사가 시행자이기 때문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에 따라 도시환경정비사업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시행자 되면 추진위원회나 조합설립 등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또한 조합을 설립하는 것과 다르게 시공사를 선정하는 시기의 제한을 받지 않고 사업초기인 추진위원회 이전 단계에서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추진위원회승인․조합설립인가 등의 절차 생략으로 5년 이상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사업초기에 시공사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조합이 사업시행자가 되는 경우 사업기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후 시공사를 선정해야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뒤따르게 된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많은 추진위원회와 조합들이 형평성을 들어 법 개정을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경우 법의 공정성 논란과 함께 부실한 '관리처분계획'과 '청산' 등 제도의 문제점과 낮은 재정착률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합이 사업시행자인 경우에는 관리처분계획시 조합원분을 분양하고 남은 부분을 일반분양하게 되지만, 소수의 토지등소유자가 시행자일 경우에는 나머지 모두를 일반분양할 수 있어서 주민 재정착률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시공자를 선정하거나 업무처리를 하면서 관계자들로부터 돈을 받아도 조합과는 달리 공무원의제규정을 받지 않아 송방망이 처벌로 그친다. 조합이 아닌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시행자인 경우를 이렇게 특혜를 줄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서 전문가들은 중대한 입법적 미비라고 지적한다. 위와 같이 규모가 작은 개인이나 법인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등의 편중으로 부의 분배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원과 회현 2-1 구역 세입자 등 50여명은 지난 24일 오후 2시 한국자산신탁이 세들어 있는 스타타워빌딩(강남구 역삼동) 앞에서 시위를 갖고 빌딩 진입을 시도하다 전경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시각장애인협회 이병돈 서울지부장은 "이 사업으로 인해 시각장애인 30여명이 일자리를 잃고 그동안 모아둔 전 재산을 잃게 됐다"며 "건물주와 사업시행자·한국자산신탁은 이들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도시개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도시개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심재개발 #세입자 #도시환경정비사업 #재건축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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