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레 할머니, 하루일당 2천원

[길거리 취재기-7] '보이지 않는 가난'과 '보이는 가난'에 대한 단상

등록 2007.09.10 21:37수정 2007.09.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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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불도 없는 횡단 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한,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그룹 천지인의 <청개천 8가>란 곡의 노랫말이다.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의 거리는 오늘도 생존을 위한 치열한 발걸음으로 분주한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거리엔 종이박스와 같은 폐지가 가득 담긴 손수레를 끌고 다니는 노인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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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이점순(가명 82) 할머니가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고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 ⓒ 이재환

지난 10일 오후 2시 30분. 광진구 구의동의 한 거리.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연로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도로 한가운데에서 힘겹게 손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묻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힘에 부치시는지 "저~어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할머니는 한사코 말리셨지만 기자는 할머니가 끄는 손수레를 대신 끌어 드리며 몇가지 질문을 해 보았다. (물론 평소엔 기자가 이렇게 착하지 않다.) 할머니는 힘드신 탓인지 뜻하지 않은 젊은이의 호의에 연신 "감사하다"며 응해 주셨다.

수레를 끌던 기자가 "할머니 이거 가져다 팔면 얼마나 받나요?"라고 묻자 이점순(가명, 82세) 할머니는 "한 2000원 정도 받아"라고 하셨다. 수레 한가득이 2000원이면 하루 온종일 일한 노동의 대가 치고는 너무 적어 보였다. 이점순 할머니는 "오늘은 새벽 5시에 나왔어. 조금 늦었지. 다른 사람들이 다 주워가서 한참 돌아 댕겼어"라고 말했다.

대화 중에도 할머니는 종종 주변을 둘러 보셨다. 열심히 질문 중인 기자에게 할머니가 "저기 저 것도"라며 가리키신 것은 다름 아닌 길가에 놓인 종이박스 무더기였다. 기자는 눈치껏 그것을 수레에 실어 드렸다. 그 다음 할머니가 가리키신 곳은 바로 고물상이었다.


고물상에 들어서자 주인인듯한 40세 초중반의 여자분이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 여자분에 따르면 할머니가 수거해온 종이박스들은 1킬로 그램당 70원이라고 한다. 이날 할머니가 수레에 담아온 박스는 대략 1900원으로 27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였다.

'보이지 않는 가난'이 어느순간 '보이는 가난'으로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지난 2002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평소 알고 지내던 사무엘 수녀님을 만나기 위해 정릉에 있는 소비녀 수녀회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이때 사무엘 수녀님의 소개로 만난 한 수녀님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선하다.

이 수녀님은  편부나 편모, 조손 가정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맡아 그룹과외를 지도하는 '소임'을 맡고 계셨다. 당시 수녀님은 기자에게 "저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을 보면 전혀 가난해 보이지 않죠?"라며 "겉보기엔 저래 보여도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상당히 가난한 아이들이죠"라고 말했다.

수녀님은 이어 "요즘은 눈에 보이는 가난보단 보이지 않는 가난이 더 무서울 수 있죠"라며 "저 아이들은 겉보기에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변(사회)에서 외면을 받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이때 기자의 가슴에 뭔가 '찡'하는 것이 스쳐 지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02년의 여름엔 '보이지 않는 가난'을 목격했다면 2007년의 초가을인 지금은 손수레 할머니와 같은 '보이는 가난'이 눈에 더 들어 올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바야흐로 2007년은 2002년과 마찬가지로 대선의 계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각종 정치기사들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다가올 대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통령은 '보이는 가난'과 '보이지 않는 가난'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가 있는 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 [길거리 취재기]는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생각해 볼만한 것이나 특이한 일, 알리고 싶은 일 등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은 사진과 함께 기사화해서 올리는 것이지요. 물론, 일이 바쁘면 [길거리 취재기]는 한동안 '잠수'를 타기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길거리 취재기]는 길거리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생각해 볼만한 것이나 특이한 일, 알리고 싶은 일 등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거리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디지털카메라에 담은 사진과 함께 기사화해서 올리는 것이지요. 물론, 일이 바쁘면 [길거리 취재기]는 한동안 '잠수'를 타기도합니다.
#손수레 #일당 #할머니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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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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