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하얀 구름을 내 가슴에 담고

경남 마산시 적석산 산행을 다녀와서

등록 2007.09.13 21:29수정 2007.09.1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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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적석산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 한동안 내린 비로 구름이 새하얗다.

적석산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 한동안 내린 비로 구름이 새하얗다. ⓒ 김연옥

▲ 적석산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 한동안 내린 비로 구름이 새하얗다. ⓒ 김연옥

요즘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가을 하늘이 참 예쁘다. 한동안 내린 비로 구름이 새하얗고 햇빛도 더욱 깨끗하다. 내 마음의 창으로도 어느새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밀려들어 찌뿌드드한 내 일상에 유쾌함을 덧칠해 준다.

 

창문에 걸린 하늘
하늘에 뜬 구름
구름을 밀어가는 바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나뭇잎에 구르는 이슬
이슬에 감긴 그리움
그리움에 빛나는 별
별을 감싸는 우주
우주가 숨쉬는 가슴
가슴에 달린 창문

- 최종진의 '나의 재산'

 

일상에 부대끼다 보면 산은 늘 달콤한 유혹이 되어 내게 다가와 초록빛 그리움으로 머문다. 개인적인 일로 두 달 동안 산행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 지난 9일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인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과 같이 적석산(497m, 경남 마산시 진전면 일암리)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벌초로 인해 차가 밀려 여느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오랜만의 산행이라 마음이 설렜다. 오전 9시 40분께 우리 일행은 낙남정맥(洛南正脈) 고개인 발산재에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두 달이란 공백기 때문인지 산길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따금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이 너무 눈부셨다.

 

a 깃대봉 정상.  

깃대봉 정상.   ⓒ 김연옥

▲ 깃대봉 정상.   ⓒ 김연옥

그렇게 1시간 남짓 걸었을까. 나는 깃대봉(520.6m) 정상에 이르렀다. 옥빛 하늘 아래 세워져 있는 표지석이 앙증맞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크기이다. 햇빛도 그곳으로 내려앉아 잠시 졸다 갈 것만 같은 한가로운 풍경이다.

 

나는 계속 적석산을 향해서 걸어갔다. 적석산은 멀리서 보면 돌을 쌓아 올린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치 시루떡을 겹겹이 포개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a 적석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아 산행의 재미가 있다.  

적석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아 산행의 재미가 있다.   ⓒ 김연옥

▲ 적석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아 산행의 재미가 있다.   ⓒ 김연옥

적석산에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아 산행의 재미가 있다. 특히 조그만 철제 사다리를 품고 있는 구멍바위는 내 맘에 꼭 들었다. 그 바위 안으로 들어가면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술래가 눈을 가리고 돌아서 있는 동안 후닥닥 뛰어가 숨을 곳을 찾던 친구들의 장난기 서린 얼굴들도 문득 그리워진다. 그 꼬마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a 적석산 구멍바위 앞에서.  

적석산 구멍바위 앞에서.   ⓒ 김연옥

▲ 적석산 구멍바위 앞에서.   ⓒ 김연옥

 

a 구멍바위 안으로 들어가면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구멍바위 안으로 들어가면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 김연옥

▲ 구멍바위 안으로 들어가면 숨바꼭질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 김연옥

얼마 전 이해인의 <사랑은 외로운 투쟁>이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었다. 아주 가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미루고 숨바꼭질하는 마음으로 '내가 나와 사귀는 시간,' '내가 나와 놀아 주는 여유'를 가지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그 시인은 말했다. 선물이라고 해서 남에게만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나에게 선물을 준다는 표현이 참 멋지다.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남들 또한 소중히 여길 것 같다.

 

a 적석산의 현수교.  

적석산의 현수교.   ⓒ 김연옥

▲ 적석산의 현수교.   ⓒ 김연옥

적석산 정상에는 두 봉우리를 잇는 현수교가 놓여 있다. 지난 2005년 12월에 세워진 다리로 길이가 52.5m, 너비가 1.2m이다. 산뜻하고 예뻐서 이제 적석산의 명물이 되었다. 걸을 때 조금씩 출렁대는 느낌도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즐겁고 신이 난다.

 

이쪽과 저쪽을 이어 주는 다리를 건너가면 왠지 멀어져 있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끼리 그동안의 서먹서먹함은 그저 힘든 삶 탓이었다며 말없이 등만 토닥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a 다리를 건너면 왠지 멀어져 있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하다.  

다리를 건너면 왠지 멀어져 있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하다.   ⓒ 김연옥

▲ 다리를 건너면 왠지 멀어져 있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하다.   ⓒ 김연옥
 

적석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10분께. 모두 사진 찍는다고 환히 웃고 있다. 산악회라는 동호회가 있다는 것도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 이상스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첫 인연이 소중한 것 같다.

 

a 적석산 정상에 오른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이다.  

적석산 정상에 오른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이다.   ⓒ 김연옥

▲ 적석산 정상에 오른 경남 산사랑회 사람들. 나와 첫 인연을 맺은 산악회이다.   ⓒ 김연옥

 

a 적석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사람들.  

적석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사람들.   ⓒ 김연옥

▲ 적석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사람들.   ⓒ 김연옥

하산길에 우연히 마주친 부부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탓도 상처도 밟아 가는 양 날개/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는 오창렬의 시구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부부만큼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 가는 관계가 또 있을까. 입으로는 밉다, 밉다 해도 여전히 애틋함이 남아 있는 사이가 부부이다.

 

적석산은 산행을 마치고 인근 양촌마을에 들러 온천을 즐길 수도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날은 하산하여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머나먼 길이었다. 벌초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오전보다 차가 더 많이 밀렸다. 그래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가슴에 가득 담고 돌아갈 수 있어 기뻤다.

 

a 그들의 모습에서 오창렬의 시, '부부'를 보는 듯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오창렬의 시, '부부'를 보는 듯했다.   ⓒ 김연옥

▲ 그들의 모습에서 오창렬의 시, '부부'를 보는 듯했다.   ⓒ 김연옥
2007.09.13 21:29ⓒ 2007 OhmyNews
#적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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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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