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사태, 도덕이냐 현실이냐

등록 2007.09.28 14:12수정 2007.09.28 14:13
0
원고료로 응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독일이 승리하기를 희망했다. 협상국 진영이나 동맹국 진영이나 어차피 다 제국주의세력들이고 그들에 의해 아시아 제민족이 식민지로 전락한 점을 생각하면, 한국인들이 독일의 승리를 희망한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에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독일의 반대편에 일본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도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그 독일이 승리하면 한국이 해방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인간의 국제사회에서는 도덕과 현실이 명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보편적 도덕규범을 공정하게 집행할 만한 통일적 세계권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는 보편적 도덕규범이 작동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현실 속에는 주권국가나 민족의 이해관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대 인류의 자화상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얀마 사태의 경우도 바로 그러하다.

 

미얀마 정부는 분명 군사정권이고 독재정권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에 미얀마 정부와 대결하는 미얀마 민중을 응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얀마 시위대를 지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볼 때에 분명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얀마 정부를 무조건 비판만 할 수도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왜냐하면, 미얀마에서 반미정권이 쫓겨나면 친미정권이 그 자리를 채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도 새로운 친중국 정권의 후보를 물색하겠지만 그것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동북아와 중동 그리고 남미 등지에서 미국의 패권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는 마당에 동남아에서 생뚱맞게 새로운 친미정권이 들어서면, 팍스 아메리카나를 반대하는 흐름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에 오키나와(1879년)·베트남(1885년)·미얀마(1885년)·대만(1895년)이 영국·프랑스·일본 등 서양세력에게 연달아 넘어가는 도미노 현상의 영향으로 조선마저 일본에게 강점(1910년)당하고 청나라도 멸망(1912년)하고 말았다는 역사적 사실은, 미얀마 사태 앞에서 지구인이기보다는 한국인이도록 강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얀마-베트남-대만-오키나와-한반도라는 동아시아 반달 라인이 서양세력에게 넘어가는 것은 동아시아 제민족의 자주·독립이라는 관점에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별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일 같지만, 미얀마 사태는 위와 같이 한반도와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미얀마가 미국에 넘어가면 미얀마-대만-오키나와-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미국 대 중국의 대립축이 미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측면을 놓고 보면, 미얀마 현 정권의 존립이 한국의 민족적 이익에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힘이 좀 더 약화되어야만 한민족이 그만큼 자유롭게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사태를 그런 현실적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아무리 반미적일지라도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는 미얀마 정권을 지지하기에는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걸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덕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적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도 없다는 점에서, 미얀마 사태는 도덕과 현실 속에서의 갈등을 파생하는 난처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무엇일까? 그것은 문제로부터 한 발 물러서서 객관자의 입장을 취하는 일일 것이다. 도덕과 현실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상태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타협책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에는 한 가지 중대한 전제가 있다. 그것은 올바른 정보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서방세계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만을 갖고는 이 사태를 올바로 관찰할 수 없을 것이다.

 

서방세계로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만을 근거로 한국인들이 단순한 관찰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가치판단까지 하는 경향이 있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미얀마 정부가 군사정권이고 독재정권이라는 점만 부각될 뿐, 미국이 왜 그토록 미얀마 정권을 전복시키려 하는지 또 미얀마 반미정권의 붕괴 후에 어떤 상황이 초래될지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서방 언론에서는 전 세계 정부나 주요 국제기구가 미얀마 정권의 전복을 향해 일심단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중국이나 말레이시아처럼 미얀마 편에 서 있는 나라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소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미얀마 사태에 대한 객관적 입장을 갖기 위해서는 서방 언론뿐만 아니라 동남아나 중국의 언론까지도 골고루 수용하는 태도를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한국의 언론매체들에게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미얀마 사태에는 도덕적 측면뿐만 아니라 현실적 측면도 담겨 있다. 그러므로 미얀마 정부를 비판할 때 비판하더라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는 도덕적·현실적 측면을 골고루 검토하는 것이 균형 잡힌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미얀마 정권의 전복을 희망하고 또 거기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면, 현 정권 전복 뒤에 친미정권이 들어서서 미얀마인들의 자주성을 오히려 더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노력도 함께 전개하는 것이 진정으로 책임 있는 태도일 것이다. 

 

이와 같이 균형 잡히고 책임 있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지나치게 도덕론에도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게 현실론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해법을 도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07.09.28 14:12ⓒ 2007 OhmyNews
#미얀마 사태 #중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추석 앞두고 날아드는 문자, 서글픕니다
  2. 2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5번이나 울었다... 학생들의 생명을 구하는 영화"
  3. 3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에어컨이나 난방기 없이도 잘 사는 나라?
  4. 4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새벽 3시 편의점, 두 남자가 멱살을 잡고 들이닥쳤다
  5. 5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독도 조형물 철거한 윤석열 정부, 이유는 '이것' 때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