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운전하는 이들이여, 인샬라!

[이집트 여행①] 카이로 그 혼돈의 도시에 들어서다

등록 2007.10.02 13:30수정 2007.10.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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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카이로의 오래된 건물들 카이로는 대부부분 이렇게 오래된 건물로 가득차있다.

카이로의 오래된 건물들 카이로는 대부부분 이렇게 오래된 건물로 가득차있다. ⓒ 김동희

▲ 카이로의 오래된 건물들 카이로는 대부부분 이렇게 오래된 건물로 가득차있다. ⓒ 김동희

 

“현재 카이로의 시간은 밤 11시이며, 온도는 31도입니다.”

 

밤 늦게 도착하는 비행기에서 나오는 방송에 귀가 쫑긋해진다. 이 늦은 시간에 31도라니. 듣던 대로 이집트의 더위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덥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었다. 사람들이 덥다고 너무 덥다고 그 더운 곳을 왜 가냐고 해대니 오기가 생겼고 더 기대가 되었다.

 

‘그래? 얼마나 더운지 느껴보고 싶은걸!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인데 죽기야 하겠어?’

 

공항 문을 나가자마자 느껴지는 텁텁한 공기를 마시며 택시를 집어 탔다. 에어컨은 작동되지 않는다. 아니 계기판이며 라디오며 에어컨 컨트롤러며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다. 달려있었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휑하니 비어있다. 앞뒤로 열려있는 창문으로 세찬 바람이 들어온다. 시내로 들어가자마자 열려있는 창문을 닫고 싶었다.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드는 매연과 경적 소리가 코와 귀를 괴롭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오밤중에 교통체증이라니!

 

“지금 한 밤중인데 매일 이렇게 길이 막히나요? 이 시간에?”
“네… 매일 막혀요. 여긴 카이로. 사람들은 밤새 잠을 자지 않죠. 어디든 가보세요. 밤새 음식점은 열려있고 그곳엔 사람들도 북적일걸요.”

 

역시 소문으로 들어서 기대는 했지만 도로는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이렇게 큰 도로에 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곳을 차들은 미친 듯이 달린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모두들 목숨은 몇 개 정도 되는 양 운전을 해댄다. 순간 옆을 보면 차와 차 사이는 주먹 하나의 거리다. 그 거리를 두고 모두 앞을 향해 달린다.

 

또 순간 옆을 보면 그 좁은 차와 차 사이에 사람이 끼여있다. 도로를 건너는 사람이다. 그 좁은 사이에 끼여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자기 갈 길을 간다. 이런 매 순간 마다 모든 차에서는 경적을 울려댄다.  “빵~~빵빵빵” 갑자기 궁금해진다. 우리가 평생 울릴 경적의 수가 이들이 하루에 두들겨대는 경적의 수와 비슷하지는 않을까?

 

이런 어마어마한 도로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나가는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보인다. 여기는 한 나라의 수도. 거기다 수많은 차들로 북적북적한 이 도로에 저 시골 어귀에서 다닐법한  당나귀와 채찍을 들고 그 위에 앉아있는 주인 그리고 그 수레 위에 올려진 풀들을 보고 있자니 재미있다. 카이로이기에 가능한, 카이로이기에 있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순간 옆에서 사고가 났다. 뒤에 있던 고물차가 뽑은 지 며칠 안돼 보이는 차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고물차의 보닛 뚜껑은 활짝 열려버렸다. 고물차 주인은 아무렇지 않게 나와서 열려진 뚜껑을 닫고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끝이다. 어떤 말다툼도 없고, 어떤 사고 수습도 없다. 그냥 자기 갈 길을 갈 뿐이다.

 

“아무도 안 다쳤잖아요. 그럼 상관없어요. 여기는 카이로. 이집트 사람들 운전할 때 너무 과격하죠. 정신이 없죠. 인샬라.”

 

우리 같았으면 차에서 카메라 꺼내서 사진 찍고, 위치 표시하고, 보험사에 전화해서 사고 수습을 기다리겠지. 게다가 새 차를 뽑아서 저런 일을 당했다면 잠도 못자고 속상해 할 텐데 말이다. 참 이해가 안되지만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난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 이 단어가 이 혼돈 속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나일강의 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그만 줄기가 보이더니 카이로를 가로지르는 본 줄기가 나타난다. 드디어 이집트에 온 느낌이다. 지금껏 봐온 다른 강들과 다를 것이 없어보이지만 그래도 왠지 다르게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책에서 TV에서 듣고 보았던 말이 생각난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

 

이 깜깜한 밤에도 강 줄기를 따라 늘어진 가게에서는 형형색색의 불빛을 뿜어내고 있고 사람들도 바글거린다. 늦은 밤에도 계속되는 음악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나일강의 선물 중 하나인 시원한 강바람을 즐기고 있을 게다. 이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한줄기 시원한 강바람을 위해 모인 그들은 도대체 언제 잠을 청할까. 12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꼭 금방 전에 도착한 사람들 같다. 나는 이렇게 지쳐 쓰러지기 일보직전인데…….

 

차에서 내려 숙소를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 눈이 갔다. 가게 옆에는 단물을 쪽 빼고 버려진 사탕수수 줄기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고 그 중 어떤 사람은 큰 물통을 들고 있는 것을 봐서는 사탕수수 즙은 이곳에서 중요한 음료임에 틀림없다. 가게 안에서 기계는 계속해서 즙을 짜고 있고 다른 사람이 먹었던 컵은 물로 한 번 헹궈지고 다시 사탕수수 즙이 담아지고 나서 나에게 왔다. 한 컵 들이키고 나니 배가 불렀다.

 

내 뒤엔 아직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컵은 다시 대충 헹궈지고 이 작업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까? 진짜 이들은 잠을 자지 않는 것일까? 지금은 새벽 한 시다. 나는 이제 자러 들어간다.

 

‘혼돈의 카이로여 자든 안자든 내일 보자꾸나. 인샬라!’

 

덧붙이는 글 | 지난 8월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2007.10.02 13:30ⓒ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난 8월 다녀온 이집트 여행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집트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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