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책은 장난감

[서평] 장난감 컬렉터 김혁의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등록 2007.10.10 08:44수정 2007.10.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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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터미네이터3> DVD에 부록(?)으로 딸려왔던 미국 맥팔렌사의 T-X 피규어를 책상위에 올려두고 촬영한 것(왼쪽). 이런 재미로 피규어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선 모델 출신인 크리스티나 로컨이 T-X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그녀의 본 모습이 바로 왼쪽 사진의 'T-X 스켈레톤' 버전이다.

<터미네이터3> DVD에 부록(?)으로 딸려왔던 미국 맥팔렌사의 T-X 피규어를 책상위에 올려두고 촬영한 것(왼쪽). 이런 재미로 피규어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선 모델 출신인 크리스티나 로컨이 T-X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그녀의 본 모습이 바로 왼쪽 사진의 'T-X 스켈레톤' 버전이다. ⓒ 조경국


"1만1900원에 T-X 스켈레톤을 부록으로 주다니 요거 진짜 땡기네. 질러 말어."

T-X가 무엇? 바로 <터미네이터3>에서 모델 출신이었던 크리스티나 로컨이 역할을 맡아 섹시함을 뽐냈던 바로 그 악당 로봇이다. 섹시함이 묻어나는 '터미네트릭스' 버전은 아니지만 T-X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는 스켈레톤 버전 피규어를 <터미네이터3>의 부록으로 준다니 혹~ 할 수밖에. 여기까진 <터미네이터3> DVD를 지를까 말까 할 때의 상황을 재연출한 것이다.


애가 둘이나 있는 30대 중반의 어른이 그깟 장난감 때문에 지름신이 내리니다니 끌끌 혀를 찰 노릇이라고 한다면 '반사~ 즐~'이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마니아들은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뿐더러 내공 또한 만만치 않다. 단순한 수집의 수준을 넘어서서 제작은 예사며, 책을 내고 아예 장난감 박물관까지 차린 이도 있다. 장난감 수집을 단지 철없는 어른의 놀이로 본다면 이 '세계'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동네 문방구를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나온 우리나라 장난감을 수집해 보존하며 연구(?)한다는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의 저자 현태준씨도 있고, 20년 동안 국내외에서 수집한 장난감 3만여 점으로 '토이키노' 박물관을 차린 손원경씨도 있다.

혹시 독일제 조립완구 플레이모빌에 관심있다면 '천소네' 사이트 (http://www.virushead.com/~gachel)를 돌아보는 것은 필수코스고 <마린블루스>로 유명한 인기 만화가 성게군(본명 정철연)은 장난감 마니아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내 최대 피규어 동호회인 아이피규어(ifigure.co.kr)의 회원은 1만5천명이나 된다. 어른들의 장난감 세계에 대해 소개하려면 끝도 없다.

장난감을 아이들만 가지고 논다고? 천만의 말씀

a  김혁의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왼쪽)와 현태준의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 두 권 모두 흥미진진한 장난감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김혁의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왼쪽)와 현태준의 <아저씨의 장난감 일기>. 두 권 모두 흥미진진한 장난감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김혁씨는 1964년생이다. 나이로 친다면 나보다 딱 열 살이 많다. 장난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이인데도 그는 오랜 시간 장남감에 '탐닉'하다 결국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는 책을 냈다. 그는 철인28호 양철완구로 유명한 일본 오사카 틴토이사의 쿠마가이 노부아 대표가 인정한 세계적으로 이름난 컬렉터다. 책을 펴내기 이전에 벌써 여러차례 장난감 전시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에서 저자가 소개한 컬렉션은 정말 '헉' 소리가 날 정도다. 1930~1940년대 최고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소장했던 1920년대 독일 슈타이프사의 사자와 코끼리 봉제 장난감, 250년 전 사용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모양을 한 볼링세트,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초반 '전쟁 중 어린이들에게 큰 위로를 준' 공로로 훈장을 받은 테디 베어 등 저자의 컬렉터는 끝이 없다. 굳이 헤아린다면 1만5천 점 정도 된단다.

a  일본 하우스텐보스에 전시되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테디 베어.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장난감 중 하나지만, 장난감 컬렉터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내용 중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훈장을 받은 테디 베어도 있고, 1억 원이 넘는 황금실이 들어간 테디 베어도 있다고.

일본 하우스텐보스에 전시되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테디 베어.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장난감 중 하나지만, 장난감 컬렉터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내용 중엔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훈장을 받은 테디 베어도 있고, 1억 원이 넘는 황금실이 들어간 테디 베어도 있다고. ⓒ 조경국


책에 소개된 멋지고 훌륭한 그의 컬렉션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나무로 깎아만든 '그레이 하운드' 오토마타. 오토마타는 손으로 돌리면 움직이는 장난감이다. 그레이 하운드 오토마타는 바로 그의 아버지가 세계적인 목각 오토마타 작가이자 아리마 장난감 박물관 관장인 니시다 아키오씨에게 하룻동안 가르침을 받고 도면을 참고해 만든 작품. 책에 나온 사진으로만 봐서는 아마추어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경력 2년차 오토마타 신인작가인 내 아버지는 중학교 교무주임 선생님으로, 울산제일중학교 기술 선생님으로, 늑막염을 앓던 전시연합대학 학생으로, 묵묵히 아버지의 뒤를 따르던 1951년 겨울의 소년으로, 드디어 그 그리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 나무를 깎으며 돌아간다. 이내 내 아버지 주위로 몰려드는 여덟명의 동생들…나무를 자르며 대패를 켜 올리며 내 늙은 아버지는 그렇게, 그렇게 그리움을 삭여내고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장난감은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나야 최고다. 물론 이 책에 소개된 것은 취미로 오토마타를 만들기 시작한 북에 고향을 두고 온 노년의 아버지가 중년이 된 아들에게 건넨 것이지만 나이와는 상관없이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아들에게 건넸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답다(아쉽게도 이 작품은 장난감 전시회 기간 중에 팔렸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처음 장난감 박물관을 꿈꾸었다는 저자는 방송국 작가로 일하며 겪는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풀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낡은 장난감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고백을 보자면 벌써 관심을 두기 이전부터 컬렉터의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아래는 끊임없이 장난감을 사들였다는 저자의 고백 가운데 일부.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해소책은 갓 태어난 아이와 장난감들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길거리를 가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내 아이의 옹알이 소리와 그 조그만 입으로 내뱉는 젖 냄새가 간절히 생각나 실없이 웃었으며 그 아이를 핑계로 장난감을 끊임없이 사들였다. 아이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퍼 나르기' 시작했다. 돌도 지니지 않은 아이에게 줄 거라며 '6세 이상 이용 요망' 스티커가 붙은 일본제 고지라 피규어를 사들고 온 나를 보며 아내는 아마도 우리 결혼생활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장난감 1만5천점 모은 김혁씨 "끊임없이 사들였다"

a  일본의 한 장난감 가게 앞에 세운 사람 키보다 큰 철인 28호. 어떤 사람들에게 장난감은 아이들의 놀잇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본의 한 장난감 가게 앞에 세운 사람 키보다 큰 철인 28호. 어떤 사람들에게 장난감은 아이들의 놀잇감 이상의 의미가 있다. ⓒ 조경국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에는 단지 저자의 수집벽과 컬렉션만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난감 회사의 역사, 장난감과 관련한 영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장난감을 만드는 사람들, 장난감 컬렉션의 세계, 장난감과 관련한 소품 등이 꼼꼼하게 소개되어 있다. 탐닉하지 않고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내용들이다.

2001년 12월 9일, 소더비 경매장에서 일어난 일화 한 토막.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작품은 1950년대 중반 일본 마쓰야마사가 양철로 만든 '파이브 갱 로봇'. 시작가는 4만 달러였지만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10만 달러, 20만 달러로 호가가 올라갔다고 한다. 여기서 저자의 표현이 중요하다.

장난감이 예술품, 골동품 경매의 상징적 이름 소더비 경매장에서 독립적인 경매 행사를 갖는 것도 신기한데 장난감 하나가 우리 돈 1억 원이 넘는다고?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곳을 찾은 세계 각국의 장난감 컬렉터들은 그럴 수도 있다는 눈으로 다음 경매를 맞았다. - 본문 중에서

어느 한 분야에 대해 취미 이상으로 파고 들다보면 아주 사소한 것(예를 들면 장난감 같은 것)이라도 경계가 무한히 넓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경계에서 멈추느냐 마느냐가 바로 탐닉의 수준을 결정하는 척도.

경계를 넘어서면 주위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통장의 잔고도 자연스럽게 무시할 수 있다. 이 정도 되면 '지름신'도 확실한 것에만 내린다. 오직 탐닉의 대상만 눈 앞에 아른거릴 뿐이다. 탐닉이 나쁜 것인가. 아니다. 미쳐야 미친다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수준에만 이르면 아주 사소했던 것도 크게 쓰일 때가 꼭 오는 법이다.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를 보면 독자들도 그 뜻을 이해하실 듯.

사족이다. 지난해 6월 내가 구입한 'T-X 피규어'가 포함된 <터미네이터3> DVD 한정판 가격은 현재 얼마일까. 현재 이 제품을 판매하는 모 사이트의 가격을 보니 8900원이다. 1년사이 3천원이 더 떨어졌다. 한정판이라는데 이렇게 값어치가 없어서야. 역시 눈썰미가 부족한 탓이다. 그런데 요거 한 60년쯤 소장하고 있으면 소더비 경매에 올려 10만 달러쯤 받지 않을까. 하하~ 웃자고 드린 이야기다.

나는 장난감에 탐닉한다

김혁 지음,
갤리온, 2007


#장난감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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