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시드니 공연 '절반의 성공'?

[해외리포트] 시드니는 '한국 빅 싱어'들의 무덤인가

등록 2007.10.28 17:17수정 2007.10.31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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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7일 밤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콘서트에서 조용필이 관객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지난 27일 밤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콘서트에서 조용필이 관객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윤여문

지난 27일 밤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콘서트에서 조용필이 관객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윤여문

 

[기사 대체 : 29일 오전 11시 18분]

 

노래인생 40년, 한 생(生)을 두고 끝까지 정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10월 27일, 바다를 가슴에 끌어안은 도시 시드니에서 노래를 부른 조용필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문득 그의 인생이 강과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8년 '음악에 인생을 건 열아홉 청년'이 기타 하나 들고 샛강을 떠났던 길고긴 항해가 마침내 바다에 이른 듯한 느낌.

 

그 후 39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그가 노래 부른 곳은 이름조차 '연인의 항구'인 달링하버(1830년대 달링 총독의 이름)였다. 음악을 연인으로 여기는 '우리시대의 가객(歌客)' 조용필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면서 노래 부르기에 더없이 좋은 콘서트장소였다.

 

조용필과 올리비아 뉴튼-존

 

a  2005년에 실종된 한국계 남편 패트릭 최와 함께한 올리비아 뉴튼-존.

2005년에 실종된 한국계 남편 패트릭 최와 함께한 올리비아 뉴튼-존. ⓒ 채널9 화면 갈무리

2005년에 실종된 한국계 남편 패트릭 최와 함께한 올리비아 뉴튼-존. ⓒ 채널9 화면 갈무리

정확하게 달링하버에 위치한 엔터테인먼트 센터가 조용필 시드니 라이브 콘서트 장소다. 그런데 그곳은 올리비아 뉴튼-존이 데뷔 30년 기념공연을 했던 곳이다. 그 공연에 '호주의 조용필과 조영남' 격인 존 화넘과 앤토니 워로우(오페라의 유령 초대 주인공)가 함께 출연했다.
 
지난 10월 27일엔 우연히 한국과 호주를 대표하는 가수 두 사람의 기사를 썼다. 조용필과 올리비아 뉴튼-존(Olivia Newton-john). 두 사람은 1950년과 1948년 출생으로 나이도 비슷하지만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또 한 가지 슬픈 공통점이 있는데 2003년과 2005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이다. 올리비아 뉴튼-존의 남편 패트릭 최(한국계 미국인)는 2005년 7월 1일 낚시 도중에 실종되었다. 아직 생존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올리비아는 그 사건 이후 지금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올리비아 뉴트-존은 인터뷰 답변을 통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더 확실해지는 게 있는데 성공이 나의 밤을 포근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As I get older, I realise more and more that success doesn't keep me warm at night)"라고 말해 패트릭 최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2003년에 아내 안진현씨를 잃은 조용필의 슬픔도 올리비아 못지않으리라. 조용필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그는 가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서 스포츠카를 몰고 아내의 무덤으로 간다는 대목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을 하나만 더 든다면 2007년 연말에 신곡 앨범을 낸다는 것. 조용필은 19번째 앨범을 10월 중에, 올리비아 뉴튼-존은 '크리스마스 소망(Christmas Wish)'이라는 타이틀의 새 앨범을 11월에 내놓는다.

 

a  무대위에서 열창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관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무대위에서 열창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관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 윤여문

무대위에서 열창하는 조용필의 노래를 관객들이 경청하고 있다. ⓒ 윤여문

깊은 강이 먼 바다에 이른다

 

노래인생 40년을 맞는 2008년에 미국 4개 도시 투어를 앞두고 있는 조용필이 시험항해를 하듯이 일단 시드니항에 닻을 내렸다. 여기 시드니에서, 또 다른 항해기록인 '호주이민 50주년'을 맞는 한인동포들과 함께 한바탕 축제를 벌인 것.

 

그런데 '호주이민 50년'을 빗대어 조용필이 무대에서 우스개를 던졌다. 일단 호주이민 50년을 맞은 동포들에게 축하의 뜻을 전한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50년 전에 한국인 딱 한 명이 호주에 온 것을 기준으로 50년이라고 한다면서요?"(웃음)

 

조용필의 말이 맞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게 1960년대 후반이기 때문에 그동안 '호주이민 40년'으로 했다가, 그래도 최초의 한국인 정착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뜻에서 최근에 '호주이민 50년'으로 수정했다.

 

조용필이 한인동포들의 '호주이민 40년'과 자신의 '노래인생 40년'을 인연의 고리로 삼고 싶어서 우스개에 빗대어 은근한 프러포즈를 한 것. 물론 한인동포들도 큰 박수로 그의 프러포즈에 기꺼이 화답했다.

 

그 다음부터는 2시간 동안 노래로 사랑하는 일만 남았다. 10월 27일 밤, 조용필과 한인동포들은 '이윽고 먼 바다에 이른 깊은 강처럼' 오랫동안 속 깊은 사랑의 노래를 함께 불렀다. 노래 부르면서 수줍은 몸짓으로 춤을 추기도 했다.

 

수줍음 타는 한인동포들

 

'한국 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조용필은 템포가 빠른 곡들로 시드니공연의 무대를 열었다. 그런 다음, 그날의 청중 중에 40대 이상의 장년층과 노년층이 다수라는 점을 감안해서 '허공', '그 겨울의 찻집' 등의 히트넘버들을 그들과 함께 불렀다.

 

그러나 청중의 일부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손뼉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었을 뿐이다(한 청중은 그걸 '북한 박수'라고 했다). 더욱이 한국에서 유행하는 일명 '스탠딩 콘서트'는 무대 바로 앞에 포진한 청중들과 2층 뒤쪽의 일부만 호응하는 정도였다.

 

한국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호주동포들이 스탠딩 차지를 수줍어한 것. 게다가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이기보다는 '작가주의'에 가까운 공연태도를 보이는 조용필의 고집스런 무대매너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조용필의 평소 지론이 "가수가 노래로 청중에게 감동을 주면 되지, 굳이 콘셉트에 맞춰서 의미를 부여하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은 음악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어서 40년 동안 굳을 대로 굳은 호주동포들의 몸을 풀어주지 못했다.

 

더구나 근년에 들어서 TV출연을 일체 하지 않는 조용필이 어떤 스타일로 라이브 콘서트를 하는지 알 길이 없는 호주동포들이 그냥 앉아서 박수치는 정도로 공연을 관람한 것. 게다가 공연 중에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조용필의 스타일에 호주동포들도 음악에만 집중했다.

 

이에 대해서 공연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던 조용필이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공연소감을 묻는 호주공연기획자에게 "오늘 즐겁게 노래했다. 시드니 교민들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어서 만족스럽다"면서 "라이브 콘서트에 익숙하지 않은 동포들에게 한국에서와 같은 열띤 호응을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답변한 것.

 

a  조용필의 공연을 보기위해 찾아든 호주 교민들. 조용필 팬클럽이 내건 플래카드도 보인다.

조용필의 공연을 보기위해 찾아든 호주 교민들. 조용필 팬클럽이 내건 플래카드도 보인다. ⓒ 윤여문

조용필의 공연을 보기위해 찾아든 호주 교민들. 조용필 팬클럽이 내건 플래카드도 보인다. ⓒ 윤여문

절반의 성공? 아니면 절반의 실패?

 

청중의 반응이 열띠지 않았던 것은 오직 노래에 몰입하는 조용필의 공연스타일과 라이브 콘서트에 익숙하지 않은 호주동포들의 관람태도 때문이었다. 그러나 1만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공연장에 6~7천 명의 청중이 입장한 것(호주기획사 관계자는 10월 28일 밤에 그 숫자보다 적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은 시드니교민 숫자에서 오는 한계 때문으로 분석된다.

 

거기에다 지난 6월에 열린 '비' 시드니 콘서트 실패 후폭풍을 맞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엄청난 물량작전과 홍보전에도 불구하고 높은 티켓가격과 공연장소 변경 등의 이유로 크게 실패한 '비' 콘서트 당시 막판에 공짜표를 돌린 것이 이번 조용필 공연에 큰 영향을 준 것.

 

그런 연유로 JK엔터테인먼트 기획사는 마지막까지 "공연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는 무료티켓을 절대로 발행하지 않는다"는 광고를 내보내는 촌극을 벌었다.

 

객석의 빈자리가 많았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기자가 "이러다가는 시드니가 빅 싱어들의 무덤이 되겠다"는 우려의 말을 건넸다. 그러자 윤여송씨(기획연출가․31)는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면서 "그건 외형적인 것만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윤여송씨와 나눈 일문일답.

 

콘셉트가 없는 건 조용필의 스타일

 

- 오늘 같이 좋은 공연에 빈자리가 많아서 아쉬웠다. 조용필씨도 섭섭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시드니에 사는 이민자의 숫자(약 5만 명)를 감안하면 이런 숫자도 크게 성공한 셈이다. 아홉 명에 한 명꼴인데 조용필씨를 잘 모르는 10대와 20대를 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조용필씨도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왔다."

 

- 시드니 이외의 지역에서도 왔다고 하던데.
"물론이다. 멜버른 브리스베인 등 10시간 이상 자동차를 몰고 온 열성 팬들도 많다. 그리고 뉴질랜드에서 약 50명 정도가 비행기를 타고 왔다. 특히 한국에서 300명의 팬들이 조용필 시드니 라이브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서 '3일 투어' 형식으로 왔다."

 

- 객석의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그건 라이브 콘서트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오늘 무대 앞쪽에서 2시간 동안 스탠딩으로 즐긴 청중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온 팬들이다. 그리고 호주동포들도 몸짓이 크지 않아서 그렇지 충분하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 세계 톱클래스 가수들의 무대에 비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운드가 좋았다. 무슨 비결이 있나?
"오디오 전문가로서 보면 엔터테인먼트 센터는 시드니에서 유일하게 오디오 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대형공연장이다. 에이서 아레나를 꼽는 사람들도 있는데 거기는 주로 운동경기를 하는 곳이다. 거기에다 오디오 세트 업을 더 잘 하기 위해서 공연장을 하루 더 빌렸다. 전례가 드문 일이다. 그래서였는지 조용필씨와 연주자들 모두 흡족하게 생각했다."

 

- 호주음악인들이 조용필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Mark's band'의 멤버 두 사람을 초청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감동적이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더 많았다기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호평일색이었다."

 

조용필 평가에 인색한 호주음악인

 

그러나 한 가지 사안을 놓고 다르게 평가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기자가 만난 한인동포들의 공연감상평도 각양각색이었다. 3대1 정도의 비율로 평가가 엇갈렸다. "120달러 내고 가서 240어치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년 전의 조용필 TV쇼를 다시 보는 것 같아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 호평보다는 악평이 더 적나라한 법. 일부 비판적인 사람들은 극단적인 비판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조용필 '왕팬'이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중의 일부를 열거해본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힘들었는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것 같았다. 조용필 특유의 영혼이 노래에 실리지 않아 그저 아름다운 멜로디를 듣는 기분이었다. 감동이 없었다는 얘기다."

 

"빠른 곡들을 연주할 때 비트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사운드 하나만은 일품이었다. 그런데 조용필의 주옥같은 슬로우 템포의 노래는 영 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그런 노래는 차라리 작은 무대에서 숨소리까지 느끼면서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단조롭고 지루해서 힘들었지만 기왕에 왔으니 몰입하자는 생각으로 듣다보니 흥이 살아났다. 조용필씨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

 

"아무리 조용필씨가 음악 위주로 라이브 콘서트를 한다고 하지만 호주동포들을 위해서 찾아왔다면 팬서비스 차원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무성의한 것은 아니지만 오만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그렇게 할 바에는 호주동포 운운하는 겉치레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호주의 전통음악(colonial music)을 하는 'Mark's band'의 멤버들도 평가에 인색한 건 마찬가지였다. 콘서트를 관람한 멤버 두 사람은 "한국 팝뮤직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대단한 줄은 몰랐다"라는 찬사를 보낸 뒤 다음과 같은 쓴 소리를 덧붙였다.

 

"엔터테인먼트 센터의 천정 높이만큼이나 (규모가) 대단한 공연이었다. 그러나 두 시간이 길다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노래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음악 자체가 전해주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가슴에 꽂히지 않았다. 무대가 너무 화려해서 그랬을까…."

 

'노래인생 40년' 기념 미국 4개 도시 순회공연

 

a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이 제작해서 호주동포들에게 배포한 팸플릿 표지.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이 제작해서 호주동포들에게 배포한 팸플릿 표지. ⓒ 윤여문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이 제작해서 호주동포들에게 배포한 팸플릿 표지. ⓒ 윤여문

미국이나 영국의 대형가수들이 월드투어를 시작하면서 시드니공연을 개막공연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마이클 잭슨, 엘튼 존, 마돈나, 이글스 등이 그랬고 '쓰리 테너'의 2차 월드투어도 시드니가 출발도시였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호주청중들이 대체로 무던해서 월드투어에 대한 긴장감을 덜 느낄 수 있고, 같은 맥락으로 비평의 강도가 높지 않아 최종 리허설 하는 기분으로 시드니공연을 한다는 것.

 

게다가 "시드니공연이 성공하면 월드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는 징크스까지 생겨나서 최근에는 브리트니나 비욘세 등이 월드투어를 시드니에서 출범(launch)시켰다. 조용필 또한 그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월드투어도 시드니에서 시작됐다.

 

그래서였을까. 10월 27일 밤, 2시간 남짓의 열띤 공연을 마친 조용필에게 '호주이민 40년'과 '노래인생 40년'으로 인연을 맺은 호주동포들이 그의 미국행 항해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설령 조용필 시드니 라이브 콘서트가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2008년에 열릴 미국 4대 도시 순회공연을 위해서 더 유익한 토대가 될 수 있다. 천천히 걷는 낙타가 사막을 건너가고, 깊은 강이 먼 바다에 이른다고 하지 않던가.

#조용필 #시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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