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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4일) 낮, 사진 찍는 전민조님이 제 일터인 '사진책 도서관 : 함께살기'에 찾아왔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인천에서 다니고 지금은 용인에서 사는 전민조님과 지난날 인천 모습을 돌아보고 사진으로 담으며 골목길 나들이를 함께 해 봅니다.
전민조님 당신이 인천에서 살던 때와 너무도 크게 달라져서, 예전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많이 바뀌었지요. 학교도 허물고 크고 작은 집도 허물고, 사람 사는 동네 한복판에 산업도로 놓는다며 법석을 부리기까지 하고요.
그래도, 골목골목 적잖은 집들이 예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에 많이 뜨이지 않는 집이지만,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 집이지만, 멋지거나 아름다운 집이라는 소리나 평가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하는 집이지만,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예순 해 일흔 해 …… 가난한 도시 사람들, 서민들과 함께 숨을 쉬며 이 땅에 뿌리박고 있는 집들이 있습니다.
골목길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면, ‘골목길이 사라지기 때문’에 찍지 않습니다. 돌아가신 김기찬님은, ‘사라지는 아쉬움 때문’에 골목길을 찍지 않았습니다. 골목길에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부지런히 찾아나섰고, 부지런히 사진기 단추를 눌렀으며, 부지런히 필름을 뽑아서 사진을 한 장 두 장 만들었습니다.
사람 냄새를 맡고, 사람 손자취를 느끼며, 사람 발자국을 함께 밟습니다. 이리하여 김기찬 님 사진 이야기 <골목 안 풍경>이 만들어졌고, 전민조님도 당신 나름대로 이 땅 사람들 발자취와 손자국을 굽어살피면서 <얼굴>이며 <한국인의 초상>이며 사진책 하나로 내놓습니다.
“전민조 선생님, 이 집 참 예술이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이 골목길을 보면서 낡았다고, 꾀죄죄하다고 하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이토록 재미나고 멋지게 꾸며 놓은 예술이 없다고 느껴요. 이곳에서 이분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가 예술이잖아요.”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흑백으로 찍어서는 안 되겠네. 색감이 좋아서 칼라로 찍어야겠네” 하고 이야기하며 필름을 갈아끼웁니다. 저는 진작부터 칼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김기찬님 골목길 사진 가운데 ‘빛깔 있는 사진’이 제법 많아요. 김기찬님 당신도 느꼈겠지요. 골목집 모습과 사람들 살림살이가 얼마나 곱고 예쁘장한지. 얼마나 앙증맞고 아기자기한지. 이 빛 느낌을 잘 살리는 사진을 찍자면 흑백으로는 참 아쉽다고.
문간에 내놓은 꽃 그릇을 봅니다. 이 작은 꽃 그릇을 굳이 이렇게 내놓을 까닭이 있었을까요. 한동안 이 문간 앞에 쪼그려앉아 꽃을 바라봅니다. “어쩌면, 이 골목집 분은, 이 꽃을 혼자만 보기 아까워서 여기에 내놓았는지 몰라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함께 예뻐해 주고 즐거워해 주기를 바라는지 몰라요.”
슬몃슬몃 걷다가, 골목길 한편에서 장대를 들고 있는 아저씨를 만납니다. 어? 장대를 들고 무얼 하고 계시지?
아! 감을 따네요! 골목집에서 알뜰하게 자라난 감나무에서 감을!
감 따는 아저씨 뒤에서 슬며시 두어 장 찍습니다. 살그머니 옆에 서서 두어 장 더 찍습니다. “감 따시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아서 사진 몇 장 찍었어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옆에 서서 아저씨가 따는 감을 바지런히 주워서 자루에 담는 아주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사진? 나는 안 찍었지? 나는 찍지 마.”
“네? 왜요? 아주머니 모습이 어때서요?”
“쭈그렁 늙은이는 찍어서 뭐해. 곱지도 않은데.”
“웬걸요.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보기 좋잖아요.”
“이 감나무가 이십칠 년 된 감나무여. 비료 안 주고 약 안 치고, 사람이 먹을 감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했지. 그런데 자리가 애매해서 거름도 못 주고 그러는데도 해마다 감이 잘 열려. 지난해하고 올해는 얼마 안 열렸지만, 예전에는 엄청 열렸다고.”
감나무는 둘레에 사람이 살면 열매가 넉넉하게 열립니다. 아무리 땅이 좋고 햇볕과 물이 좋아도, 둘레에 사는 사람이 없으면 열매가 거의 안 열립니다. 먹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열매도 안 맺을까요?
이 골목길에서 스물일곱 해나 자란 감나무는, 해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할아버지와 할머니인지 모릅니다) 두 분께서 즐겁게 따서 즐겁게 이웃과 나누어 먹기 때문에, 늘 푸지게 열매를 맺어 주는지 모릅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은 내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근차근 감을 땁니다. 지나가는 길손한테도 웃으면서 이야기를 걸고, “저기 잘 익은 홍시가 있으니 따서 먹으세요” 하고 알려주기도 합니다.
“더 먹고 싶으면 더 가져가요” 하고 당신 두 분이 애써 따 놓은 감 자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이고, 괜찮아요. 이렇게 주신 감 하나로도 좋은데요. 우리는 맛만 보면 돼요.”
달디단 감 잘 먹었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섭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 두 분은 줄곧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가득합니다. 올해로 스물일곱 해 먹은 감나무는 머잖아 서른 해도 먹고, 마흔 해와 쉰 해도 먹을 수 있을까요.
인천에서 아시아게임을 치른다는 2014년까지 이 골목길도 다 허물어서 아파트로 싹 바꿔치기하겠다고 하는데, 그때 이 감나무는 어떻게 될까요. 이 감나무를 심어서 가꾸어 온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어떻게 될까요.
당신들은 이 골목길에서 얼마나 살림을 더 꾸려나가면서 가을 감따기를 즐길 수 있을까요. 당신들이 골목길 한편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감나무를 심을 때에는, ‘이제 이곳이 우리 보금자리여’ 하는 마음이었을 텐데, 이 감나무가 싱그럽게 가지를 뻗고 달디단 열매를 선사하는 골목길을 떠나, 그 어디에서 푸근하고 홀가분한 살림터를 가꿀 수 있을까요.
한 계단 두 계단, 도원동 달동네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다봅니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골목집이 몰려 있는 동네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합니다. -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우면서.
2007.11.07 17:44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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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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