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도시 팜플로나 #2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7] 라라소냐에서 팜플로나까지 ②

등록 2007.11.16 09:29수정 2007.11.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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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무사히 보내고 동네를 둘러보고, 엽서를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C와 함께 다시 나왔다. 그녀는 이 도시가 '산 페르민(San Fermin)'이라는 세계적 축제로 유명하다고 소개해주었다. 순례 전에 한국에서 읽은 책에서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스페인 사람인 그녀에게 이 곳 팜플로나는 '산 페르민'의 도시였다.

매년 7월 초, 도시 전체가 붉은 상징을 두른 무모한 이들로 들끓는 곳. 성난 황소를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사람들은 소떼에게 들이받히지 않기 위해 죽어라 내달음치는 순간의 경주, 남자들에게는 이 날의 상처가 마치 훈장처럼 여겨지는 곳. 스페인만이 아닌 전 세계가 열광하는 축제까지는 아쉽게도 앞으로 2주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엔 시에로(En Cierro)'라고 불리는 황소들이 달리는 골목에는 나무로 된 판자가 높게 세워져 구경꾼과 황소들을 가르는 방어막 역할을 하고 있었고, 이 길은 원형경기장과 이어져 있었다.


a 엔 시에로(En Cierro)의 끝 매년 7월 초, 스페인을 붉게 물들이는 황소 달음질 축제가 열리는 길, 그 끝은 투우장과 이어져있다.

엔 시에로(En Cierro)의 끝 매년 7월 초, 스페인을 붉게 물들이는 황소 달음질 축제가 열리는 길, 그 끝은 투우장과 이어져있다. ⓒ JH


“이거구나~ 사진 찍어줘!”

하며 부산(?)을 떠는 C가 귀엽기도 하고, 마치 유명 관광지 나들이 온 관광객 같았다. 역할이 뒤바뀐 것은 아닌가?! 순간 헷갈렸다.

길을 걸으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니?”
“나? 글쎄-. 이 길이 순례라고 하지만 나는 가톨릭도 아니고 신을 믿지도 않아. 나에게 있어 카미노는 일종의 문화적,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야. 내가 사는 나라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 어릴 적부터 이 길을 걷고 싶었고, 지금 나에게 시간과 기회가 되어서 찾아왔어.”

(고난의) 순례, 보속, 죄 사함, 미래에 대한 해답, 나를 송두리째 바꿔줄 경험 따위로 이 길을 열심히 치장하는데 바빴던 나의 무거운 시야와는 사뭇 다른 대답이었다. 모두가 영적으로 충만해져서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 순례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다른 현실이었다.


순례를 하며 알게 된 S씨, Y언니, 그리고 스쳐갔던 사람들, C… 많은 사람들은 신앙인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 길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이제 겨우 믿음을 뿌리내린 나에게 있어서 이 길은 어떤 의미일까, 같고도 다른 순례의 경험들이 하나의 길 위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들을 끌어안는 길이… 다시금 신비롭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산 페르민 축제의 예습(?)을 마치고, 우리는 각자 헤어져 도시를 본 후 8시쯤 숙소에서 다시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는 처음 만난 스페인의 도시가 신기해 여기저기 쏘다녔고, 어느새 발걸음은 신도시 쪽으로 향해 동네의 백화점에 다다랐다. 그것은 후에 알게 된 ‘엘 꼬르테 잉글레스(El Corte Ingles)’라고 하는 스페인의 유일한 백화점 브랜드의 팜플로나 지점이었다. 백화점이 독점기업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백화점 안은 한국에서와 닮은 모습이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잘 진열된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의 상품들을 스쳐가며, 나는 일종의 익숙함, 편안함을 느꼈나보다. 가장 시간을 많이 쓴 곳은 지하의 식품매장이었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 양 편에 늘어진 통로를 이리저리 활보하며 별세계를 보는 것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 순간, 이런 일들은 한국에서 매일 하는 것들인데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런 곳에서 시간을 쓰고 있지? 시계는 C와 약속한 시간에 가까워졌고, 나는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이다 결국은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급히 발걸음을 돌려 숙소로 왔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C는 숙소에 없었다. 주변 순례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방금 숙소를 나갔다며 엔 시에로 길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저 다급해진 마음에 ‘그라시아스(Gracias; 고마워요)!’를 외치고 길로 향했다. 마을지도를 펼쳐들고 엔 시에로 길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하고 그녀와 함께였던 길을 더듬고,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 같은 모양이 되어서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녁거리라도 사 올걸 그랬나?’하고 생각했다.

오후 내내 한산했던 길은 어느새 넘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녀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마음을 다잡고 주변 상점에서 가벼운 먹을거리라도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자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 때, 기적(?)처럼 C와 마주쳤다. 그녀는 순례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 속에서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다 늦게 되었다고, 너를 찾아다녔다고 말하자 ‘이렇게 만났잖아?’하면서 밝게 웃는 모습이 반가움과 동시에 너 참 태평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잃어버렸을까 마음 졸인 것은 전혀 모르겠지! 하지만 태연하게 얼굴엔 웃음을 띄며, 그녀와 또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분위기에 마음이 녹아들었다.

C는 오전에 팜플로나로 오는 길목에서 만난 동네 아주머니에게 숙소 위치를 물으며 동시에 핀초스로 유명한 바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이것저것 묻는 모습, 그리고 아주머니 역시 C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짚어주며 이야기하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치 그녀와 아주머니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급할 것이 없었고, 서두를 것이 없었다. 나의 마음은 ‘빨리 숙소에 가야 하는데, 여기서 이렇게 한담을 늘어놓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하며 재촉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알아듣지 못하는 스페인어가 후두둑 쏟아지는 상황이 불편했다. 영어를 하는 스페인 친구를 만난 것이 구세주처럼 반가웠지만 동시에 묘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쨌든 처음 만난 두 스페인 사람들의 이야기 사이에 낀 이방인으로서의 느낌은 이상야릇했다.

우리들은 핀초스로 유명한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주머니가 일러준 바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났다. 나는 그들을 한~명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C와 그들은 ‘올라(안녕)!’를 주고받으며 인사의 키스를 나누고 또 멈춰서 긴 얘기를 나누고, 자기들의 갈 길을 갔다.

“아는 사람들이야?”
“아니, 그냥 길에서 몇 번 봤던 것 같아서. 저 사람들도 핀초스 먹으려나봐.”
“난 너희들이 전부터 알고지낸 친구들인 줄 알았어!”
“지금 같이 다니는 저 친구들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야. 너처럼.”
“정말?”

우리들은 끝끝내 바를 찾아냈다. 안팎으로 꽉 들어찬 사람들이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겨우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우리 여섯 사람이 앉을 자리를 만들고, 주문을 했다. 길게 늘어진 입식 테이블 위의 유리 진열장에는 갖가지 작은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빵조각 위에 갖가지 재료가 얹혀 있는 술안주 같은 음식들이 입맛을 당겼다. 이것들이 바로 작은 타파스인 ‘핀초스’였다.

나는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어서, 사람들로 들어찬 진열대 사이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며 이걸 고를까 저걸 고를까 하다 결국 두툼한 달걀말이(후에야 그것이 스페인의 유명한 음식 ‘또르띠야’라는 것을 알았다)가 얹힌 빵을 하나 주문하고, '비노 틴토(Vino Tinto; 레드와인)'을 주문했다. 사람들은 각자 두어 개의 핀초스를 고르고 비노 혹은 음료를 주문해 테이블로 돌아왔다.

시끄러운 주변 소리에 파묻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더 정확하겐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서는 알 수도 없었지만, 푸짐히 한 상 차려놓고 먹었던 그 음식들, 그리고 서로 웃고 ‘살루테(건배)!’, 또 ‘부엔 카미노(좋은 길)!’를 외치며 떠들썩하게 보냈던 그 밤이, 참 좋았고 즐거웠다.

핀초스를 해치우고 나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따라 걸어 도착한 곳은 ‘카페 이루냐(Cafe Iruña)’였다. 스페인을 사랑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말년의 벗이 되어주었던 카페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단체로 몰려 들어가 바 입구에 멋지게 기대고 있던 헤밍웨이의 동상 옆에 서 사진을 한 장씩 남겼고, 음료를 한 잔 더 마셨다. 시간은 이미 숙소의 통금시간인 10시에 가까워져, 우리들은 서로를 신데렐라라고 칭하며 깔깔거리며 숙소로 몰려갔다. 나는 비노 한 잔과 '세르베자(Cerveza; 생맥주)' 한 잔에 적당히 취해 오늘 밤도 잘 잠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어둑해지는 팜플로나의 길을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같은 방의 다른 침대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셨나보다. C가 저녁의 일을 들려주자, 아주머니는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셔서 나를 붙들고 한 말씀을 하신다.

“여기 ‘라 리오하(La Rioja)’에서 맥주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 이 지방은 스페인에서도 최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야. 그러니까 다음엔 꼭 비노를 마시도록 해. 알았지?”
“와, 저는 몰랐죠! 아주머니가 제 비노 선생님 해주시면 되겠네요!”

그리고 그녀는 라 리오하에서 품질 좋은 비노를 고르는 법을 알려주셨지만…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도시에선 이 비노를, 저 도시에선 저 비노를! 아깝기 그지없는 정보를 무지함으로 모두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 앞으로 순례 중에 들르게 될 로그로뇨에서는 ‘비노 로사도(Vino Rosado; 로제 와인)'를 마셔보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은 기억에 남았다. 나는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거듭 반복하며 웃고 또 끄덕였다.

서로 저녁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주고받으며 떠들썩한 우리 방의 소리가, 방문도 없이 통로로 서로 연결된 옆방까지 쩌렁쩌렁 울렸는지 웬 웃통을 벗은 건장한 아저씨가

“잘 시간이유, 다들 좀 조용히 합시다~!”

하면서 웃으며 찾아오고, 아주머니들은 ‘알았어요, 알았어!’ 꺄르르 웃으며 아저씨를 밀어낸다. 서로 침대에 누웠는지 확인한 후 방의 불을 끄자,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비상등만이 환했다.

이곳에서 함께 만나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약속했던 S씨와 Y언니가 하루 종일 걱정되었지만, 그녀들 역시 오늘 하루 멋진 순례의 기억을 안고 지금쯤 잠자리에 들었으리라, 또 길 위에서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유쾌한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침대에 누워 비노와 세르베자의 적당한 취기를 즐기며, 어느새 잠이 들었다.
#산티아고가는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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