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도시 팜플로나 #1

[천진난만하게JH, 산티아고 가는 길 6] 라라소냐에서 팜플로나까지 ①

등록 2007.11.16 09:28수정 2007.11.22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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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25일 월요일.   
순례 3일째, 총 15km,
오전 7시 출발, 12시 10분 도착.


순례를 시작하고 산골짝 숲길만 다니다, 3일만에 만나는 도시! 기대가 되었다. 나도 도시 사람이라고, 익숙한 그 느낌이 그리웠나보다. 걷기 시작하고 3시간이 채 못 되어 높은 건물들, 그리고 사람들, 상점들, 시내버스가 보였다. 아- 익숙한 느낌! 조금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생장피드포르를 떠나 계속 지금까진 본 적도 없는 시골짝 풍경들에 살짝 긴장했는데.


도착한 곳은 ‘빌라바(Villaba)’라고 하는, 팜플로나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마을이었다. 걷다가 무심결에 만난 컴퓨터부품 판매점에서 15유로를 주고 카메라에 넣을 1기가짜리 SD카드를 샀다. 그리고 방금 문을 연 과일가게에 가서 동네사람들 사이를 거대한 배낭을 메고 헤집으면서 사과랑 건과류 한 봉지를 샀다. 괜히 마음이 푸짐해졌다.

a 저를 따라오세요 노란 화살표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순례 가운데 지도 한 장 없이 다녔다.

저를 따라오세요 노란 화살표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순례 가운데 지도 한 장 없이 다녔다. ⓒ JH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대체 노란 화살표, 즉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찾는 것이 꽤 복잡했다. 나는 큰 마을, 여러 갈래의 길, 다양한 표지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제까진 그냥 길 하나만 쭉 따라가면 되었는데, 이상하네? 그렇게 길을 헤매는 중에 어제 강아지와 함께 걷던 모습이 참 예뻤던 여자친구를 만났다. 오늘은 강아지가 없었다.

"저기, 이 길이 산티아고 길 맞아?"
"어, 아마 맞을 거야. 저기…, 노란 화살표 있네!"
"그런데 너 어제 강아지랑 함께 걷지 않았니?"
"응. 내 뒤를 졸졸 따라오더라고. 산티아고에 같이 가고 싶었나 봐. 어느새 다른 곳으로 갔는데, 혹시 유기견으로 잡히진 않았을까 걱정돼. 그렇지만 계속 함께일 수는 없었어."

그리고 우리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C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스페인 친구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보라색 곱슬머리가 인상적인, 60리터짜리 거대한 가방을 지고 씩씩하게 걷던 그녀와 함께 팜플로나로 향하는 길에 스페인 대도시의 부동산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 그리고 스페인 사회의 이민자 문제 등 (생각해보니) 꽤 심각한 문제를 두고 대화했다.

급여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집값 때문에 스페인 젊은이들이 독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 유입으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일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어쩜 한국과도 퍽 닮아 있는지. ‘이게 바로 세계화란 거구나?’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순례 처음으로 스페인 사람을 만나, 스페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와의 신나는 대화 속에 눈 깜짝 할 사이에 팜플로나에 닿았다. 숙소 앞 벤치에는 어제부터 살짜쿵 스쳐지나갔던 스페인 모녀 순례자들이 서로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있었다. C는 그녀들과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서, 숙소가 1시에 문을 연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원한다면 두 사람이 우리 가방을 맡아줄 수 있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을 금세 거두고 가방을 내려놓고 동네로 나섰다.

나는 성당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곧 C는 나를 십자가가 매달린 높은 첨탑의 건물로 안내해주었다. 자기는 도시를 더 둘러볼 테니 숙소에서 보자고 했다. 때마침 들어간 성당에서는 미사가 진행중이었고, 등산화의 투박한 발소리를 조심조심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전례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실 수 있다니, 좋은 징조였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했다. 미사를 마치고 내딛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성당 바로 앞의 ‘메르카도(Mercado)’, 재래시장 건물이 인상적이기에 슬쩍 들러 구경했다. 꽤 깔끔한 실내에 채소, 과일, 고기, 치즈, 빵 등을 파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스페인의 시장! 별천지였다.

a 스페인 재래시장 메르카도(Mercado) 팜플로나 시내의 재래시장, 주 품목은 과일, 채소, 그리고 고기.

스페인 재래시장 메르카도(Mercado) 팜플로나 시내의 재래시장, 주 품목은 과일, 채소, 그리고 고기. ⓒ JH


조금 늦게 들어선 숙소엔 이미 순례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나는 조신하게 벽에 기대 있는 가방을 찾아서 수속을 마치고 침대를 받았다. 곧 C를 만나 같은 2층 침대의 위아래를 나눠쓰게 되었다. 그녀는 오늘 저녁, 팜플로나에서 유명하다는 '핀초스'를 맛보길 고대하고 있었다. 괜찮으면 함께 가지 않겠냐는 얘기가 고마웠다. 나는 애초에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함께 재래시장에 다시 들러 점심거리를 조금 샀다. 그리고 나는 mp3 플레이어와 PDA를 챙겨 산티아고로 부치기 위해 우체국을 찾아갔다. 그 두 가지는 한국에서 매일같이 지니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새 내 삶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지 않으면 외부의 소리들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고, PDA의 작은 창으로 나의 일정과 스케줄을 매 순간 체크하고 지금 느끼는 것들, 경험하는 것들을 남기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것들은 세상에 대한 일종의 방패였다. 혹은 방어막이라고 해도 좋고, 높은 담이라고 해도 좋다.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것들. 3일 간 걸음을 걸으며 문득 이것들이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이제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지 않고 손으로 쓰는 글이 답답해 급하게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아도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이 길을 걷는 동안은 없이 지내보자, 용기가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 유명한!) 시에스타 시간이었다. 우체국은 닫은 채였고, 나는 짐을 들고 터덜터덜 돌아왔다. C는 점심을 가볍게 해결한 후였고, 나는 거나한 핀초스 저녁 한 상을 믿었기에(!) 수중에 가진 것은 토마토 두 알에 바나나 두 개뿐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가진 빵과 치즈를 주었고, 나는 그녀에게 바나나 한 개를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들고 주방으로 가 접시 하나에 준비물들을 얹어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이미 몇몇 순례자들이 식사하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살짝 겁이 났지만 어떠랴, 마땅히 자리도 없으니 '안녕!'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열심히 샌드위치를 제조하고, 성호를 그었다.

"너 가톨릭이야?"
"어. 이번 4월에 세례 받았어."
"신기하다!"

그렇게 천천히 말을 트게 된 친구들은 독일에서 온 남자아이들 A, M, F. 그 가운데서도 영어를 듣기 수월했던 A와 많은 얘기를 했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그는 영국에서 어학연수의 경험도 있단다. 독일에서 인턴십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어쩐지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이 남달랐다. 물론 앞으로의 순례 중에서 만날 전 유럽의 사람들 중 특히나 독일 사람들의 영어 구사력이 탁월하긴 했지만.

"나도 경제학 전공하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그래? 나도 경제학에 관심 많은데, 아무래도 수리적 모델들이 쉽진 않지. 그렇지만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것들이지 않아?"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겠니',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내가 C로부터 얻은 빵에 치즈를 얹고 토마토를 슬근슬근 썰어 샌드위치를 만드는 동안 그는 길다란 바게트 빵에 칼집을 내고 치즈를 넣어 먹었다. 우리들은 마른 빵과 치즈(그리고 토마토)로 연명하는 순례자였다. 식사를 마친 A는 자리를 일어서며 나에게 말했다.

"너 근데 그거 알아?"
"엉?"
"영어라도 같은 영어가 아니지. 'Broken English'라는 게 있어."
"…그렇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니? 영어는 더 이상 영미인의 것이 아니잖아. 하나의 언어가 세력을 넓혀가며 변화 - 그것이 진화인지 퇴보인지는 모르겠지만 - 하는 건 당연하잖아."
"그래? 그렇지만 정말 네가 영어권에서 활약하기 바란다면, 부서진 영어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순간 멍-했다. 부서진 영어라니. 나는 '첫 순례, 첫 스페인, 첫 유럽, 첫 외국여행'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하물며 영어를 입 밖으로 내어 소통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도, 공식적인 환경에서는 처음이었다. 자신의 영어로 사람들과 대화가 된다는 게 참 신기했는데, 이 녀석은 나에게 '부서진 영어'를 말한다.

나 역시도 식사를 마친 참이라 설거지를 마치고, 미뤄뒀던 샤워를 끝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짐을 들고 우체국으로 다시 향했다. 손짓 발짓 해 가며 1.4kg을 산티아고로 보냈다. 7유로. 그리고 우체국을 나가려는 찰나,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난 재미 한국인 모녀를 다시 만났다.

"잘 만났네! 내가 학생 고추장 주려고 찾았는데~"
"네?!"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얘기가 있다. '미국에서 온 순례자들 찾기는 간단해, 무조건 가방이 크고 본다는 거지. 가방 안에 온갖 가지 것들을 잔뜩 넣고 다니니까.' 대륙인들 특유의 영미인들 비꼬기가 잔뜩 묻어나는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사실인 것은, 이 모녀의 가방도 만만찮게 거대했다. 그 무거운 가방을 두고 꽤 씨름하셨나보다. 창고 대방출인지는 몰라도 고추장을 주겠다고 하신다. 그분들은 공립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사립 숙소에서 묵고 계셨다. 오늘 저녁 같이 식사하지 않겠느냐는 감사한 말씀을,

"걷다가 만난 스페인 친구가 여기 대표음식을 먹어보자고 해서요."

하고 말았다. 죄송하게도. 혹시 시간이 되면 우리 숙소로 와서 고추장 가져가라 하시는 말씀이 감사하기도 하고 곤혹스럽기도 했다.

이 길은 참 신기하다. 사람들이 나누는데 인색하지 않다. 곧잘 하나를 내어놓아 서로 주고받고 하다 보면 금세 작고 꼭 필요한 10개가 되어버리는 마법 같은 길이다. 그렇게 하나 둘 나누다 보면 애초에 자신이 가졌던 거대한 - 혼자 처리하기엔 불가능한 - 하나가 작고 다양한 여러 개로 바뀌어 있다. 나는 남들에게 무엇 내미는 것에 참 익숙하지 않은 편인데, 많이 가지고 있어봤자 다 스스로 떠안을 짐이 된다는 것을 그새 간파했는지 나눌 수 있는 만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이 날 어머님께서 베푸신 온정이, 내게는 부담으로 느껴졌는지

"네, 시간 되면 그렇게 할게요…."

하고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에게도 비상식 고추장 몇 개는 있었기 때문에.
#산티아고가는길 #스페인 #도보여행 #성지순례 #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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