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현대사, 리얼리즘·전위미술로 읽다

'칸딘스키와 러시아거장전' 내년 2월 27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등록 2007.12.06 14:03수정 2007.12.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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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예술의 전당 한가림 미술관 입구에 대형홍보물. 레핀 1884년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격변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묻게 하는 작품이다.

예술의 전당 한가림 미술관 입구에 대형홍보물. 레핀 1884년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격변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묻게 하는 작품이다. ⓒ 김형순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이 내년 2월 2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19세기 말 러시아 리얼리즘 회화 63점과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작품 28점을 선보인다. 러시아 양대 국립미술관인 러시아미술관과 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서 왔다.

1부 러시아 리얼리즘 섹션에는 초상화, 풍경화, 역사화, 풍속화 순으로, 2부 러시아 아방가르드 섹션에는 칸딘스키의 방과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 경향별로 나눠 전시된다.


러시아의 여타 다른 문학, 음악, 무용과는 달리 러시아 미술은 우리가 접할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이번 전을 계기로 구미중심의 미술 감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넓히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나, 러시아 리얼리즘]

레핀, 19세기 리얼리즘의 거장

위 포스터에 쓰인 그림이 바로 레핀(1844~1930)의 대표작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이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가정을 버리고 민중을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고독한 혁명가가 유형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이를 아무도 반기는 않는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a  레핀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77×57cm 1882

레핀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 캔버스에 유화 77×57cm 1882 ⓒ The State Tretyakov G.


레핀, 그는 러시아 19세기 리얼리즘 대가로 문학에 비유하면 톨스토이 격이다. 실제로 레핀은 톨스토이와 각별한 사이로 그의 초상화도 여럿 그렸다. 레핀은 이번 전에 단연 돋보인다. 그는 명실공히 러시아 미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는 초상화에서 천재적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예리한 심리묘사, 극적 표정 속에 담긴 성격묘사, 섬세한 붓질, 독창적인 구도, 부드럽고 투명한 색조, 고도로 수련된 명암법 등으로 한국 유명작가들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그의 초상화에는 고골리, 톨스토이, 무소르크스키 등 당시 작가, 작곡가, 예술애호가와 또한 그 가족도 있다. 위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은 바로 예술후원가였던 마몬토프의 조카를 그린 것으로 그녀의 예리한 눈빛에서는 러시아인의 자긍심을 읽을 수 있다.


고뇌하는 지식인, 땀 흘리는 사람

a  레핀 '작가 고골리의 분신' 캔버스에 유화 79×131cm 1909. 레핀 '볼보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 캔버스에 유화 23×50cm 1870

레핀 '작가 고골리의 분신' 캔버스에 유화 79×131cm 1909. 레핀 '볼보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 캔버스에 유화 23×50cm 1870 ⓒ The State Tretyakov G.


이번 전에서 레핀의 초상화는 다 훌륭하지만 그 중에 지식인의 고뇌를 실감나게 그린 '작가 고골리의 분신'이 인상적이다. 레핀은 고골리를 "신 앞에 선 우리 민중의 양심을 밝히는 가장 붉고 뜨거운 촛불"이라며 톨스토이와 함께 평생 존경하고 좋아했던 작가다.

레핀은 그의 삶과 창작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에까지 관심을 가졌다. 고골리가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줄 수 없음에 절망하여 자신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원고를 불태우려 할 때 그 번민과 비장함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래 '볼보강의 배를 끄는 인부'는 배를 뭍으로 끌어올리는 사람들을 그린 것으로 레핀이 당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 대한 남다른 애정도 엿볼 수 있다. 사람들 시선과 표정이 살아 있고 악전고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움을 그림자효과를 주어 잘 살려냈다.

러시아적 풍경의 색다름

a  I. K. 아이바조프스키 '폭풍' 캔버스에 유화.100×149cm 1857. 격정적인 바다의 생명력을 탁월하게 묘사하다

I. K. 아이바조프스키 '폭풍' 캔버스에 유화.100×149cm 1857. 격정적인 바다의 생명력을 탁월하게 묘사하다 ⓒ The State Tretyakov G.


풍경화 코너로 들어서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의 '폭풍'이다. 그는 바다가 중요 테마이기에 해양작가로 불린다. 영국화가 터너도 연상된다. 그는 바다의 난폭하면서도 낭만적인 양면성을 유려한 붓터치로 화폭에 담았다.

그의 그림은 폭풍 속 울부짖는 바다를 그릴 때 더욱 돋보인다. 거기다가 난파에 직면한 돛단배와 그 안에서 이를 막으려 사력을 다하는 절박한 선원들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작가의 뛰어난 구도감각과 세련된 색감은 사람들 마음을 끌기에 충분하다.

러시아 자연의 장엄미 조명

a  레비탄 '북부지방에서' 캔버스에 유화 107×77cm 1896

레비탄 '북부지방에서' 캔버스에 유화 107×77cm 1896 ⓒ The State Tretyakov G.


이번엔 러시아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비탄(1860~1900)의 '북부지방에서'를 보자.

그는 러시아 이동파(移動派 1871년 설립된 러시아 리얼리즘 단체로 레핀, 페로프, 스리코프가 회원임. 미술이 사회적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전국방방곡곡을 순회전시회를 함. 그래서 이동파라 칭함) 화가로 조국의 자연을 극진히 사랑하여 적막한 분위기까지도 서정적 풍경화로 그렸다.

이 그림은 러시아와 핀란드 북부지방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추운 북부지방의 신비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야성의 숲에 신비한 실루엣이 도입되어 장엄하게 느껴진다.

그밖에도 풍경화의 대가들 폴레노프, 사브라소프, 쥬코프스키, 키셀료프 등이 있다

생생한 사회상이 담긴 풍속화

이번 전에서 사실 풍속화가 제일 많다. 당시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대하소설 같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씨는 러시아회화의 특성을 문학성에 있다고 했는데 정말 이번 전을 통해 격동의 러시아현대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a  K.E. 마코프스키 '임시숙소' 캔버스에 유화 94×143cm 1889. 아카데미회원이고 풍경화의 거장인 사브라소프(그림을 끼고 있는 사람)을 그림에 포함시킨 점이 재미있다

K.E. 마코프스키 '임시숙소' 캔버스에 유화 94×143cm 1889. 아카데미회원이고 풍경화의 거장인 사브라소프(그림을 끼고 있는 사람)을 그림에 포함시킨 점이 재미있다 ⓒ 김형순


마코프스키(1846~1920)의 '임시숙소'는 1880년 말에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상을 담은 풍속화다. 이 그림의 모티브는 도시하층민의 다양한 일상생활을 현실감 넘치게 보여주는 데 있다. 한눈에 당시 서민들이 겨울나기가 얼마나 혹독했는지 알 수 있다.

그밖에도 사랑보단 가문을 위한 결혼을 풍자한 쥬라블료프의 '정략결혼', 특권층의 허세를 풍자한 코발레프스키의 '교구순방', 시골부모를 마지못해 맞이할 수밖에 없는 도시아들을 그린 레베데프의 '노부모 상경' 등 그 시대의 풍속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둘, 러시아 아방가르드]

20세기 초부터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러시아에서는 짧지만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이 일어난다. 이 시기는 이렇게 러시아 미술사에서 가장 빛난다. 제자백가 식으로 여러 실험이 시도되고 다양한 유파가 생겨나면서 유럽미술계에도 큰 충격을 준다.

곤차로바, 광선주의

a  곤차로바 '흰 서리' 캔버스에 유화 101×132cm 1910-1911

곤차로바 '흰 서리' 캔버스에 유화 101×132cm 1910-1911 ⓒ 김형순


곤차로바(1881~1962)는 최근 런던 크리스티에서도 최고가로 낙찰되는 인기작가다. '흰 서리'는 2차원 평면에 반사광의 특성을 살리는 '광선주의'의 일면을 잘 보여준다. 반사광이 힘차게 밖으로 뻗쳐나가는 것 같다. 틀에 박힌 그림과 다르게 어린이의 마음을 보는 듯한 신선한 화풍이 독창적이다.

그녀의 시원한 붓질은 당시로서는 획기적 화풍이었다. 색채를 최대로 절제하고 대신 단조롭지만 우아한 색조로 칠한다. 여기선 주로 흰색을 외광의 빛으로 변주하여 관객을 꿈의 세계로 이끈다. 이 작가의 남편인 라리오노프는 더 유명한 광선주의 화가로 그의 작품 '나무'도 감상할 수 있다.

포포바, 구축주의의 대가

a  포포바 '식료품점' 캔버스에 유화71×53cm 1916

포포바 '식료품점' 캔버스에 유화71×53cm 1916 ⓒ The State Russian M.


포포바(1878~1924)는 여성작가로 1910년대 들어 비구상 미술에 빠져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양식을 실험한다. 그녀는 구성 간 부분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역동적 움직임을 줄까 고민한다. 이런 과정에서 잉태한 것이 바로 '구축주의'다.

이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식료품점'이다. 식료품으로 가득 찬 실제상점의 공간을 입체적 색채와 단순한 형태로 농축시켜 표현한다. 구성 간 연계된 구축, 그 이면에 감추어진 예술적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말레비치, 절대주의 창시자

a  말레비치 '절대주의' 나무에 유화 71×45cm 1928-1929

말레비치 '절대주의' 나무에 유화 71×45cm 1928-1929 ⓒ The State Russian M.


절대주의 창시자 말레비치(1878~1935)는 당시 소시민적 상식과 편견을 깨고 비구상 세계를 연다. 그의 절대주의는 즉 모든 대상이 사라진 근원으로서의 무(無)와 절대적으로 순수한 예술의 비대상적 본질이라는 이념과 당시 유행한 숭고미에서 나온 것이다.

미술의 생명이 창의성에 있기에 그는 공간에서 다양한 모험을 무한대로 구축하고 시도한다. 이런 획기적 발상은 결국 현대미술의 모태가 된다. 기하학적 추상, 최소로 최대를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고정관념을 깨는 개념미술, 움직이는 키네틱(모빌) 아트 등이 여기에 비롯됐다는 데 이의가 없다.

칸딘스키, 현대추상미술의 거장

a  칸딘스키 '블루 크레스트' 캔버스에 유화 133×104cm1917. 크레스트는 '닭의 볏'이란 뜻으로, 이런 '형태의 폭발'은 전쟁의 공포를  상징한다.

칸딘스키 '블루 크레스트' 캔버스에 유화 133×104cm1917. 크레스트는 '닭의 볏'이란 뜻으로, 이런 '형태의 폭발'은 전쟁의 공포를 상징한다. ⓒ The State Russian M.


칸딘스키(1866~1944)는 우리에겐 표현주의적 추상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세계1차대전을 치르고 전쟁에 넌더리가 났다. 그때까지 절대적 가치로 신봉되었던 이성을 완전불신한다. 그러면서 그는 선·점·면과 색채로만 표현하는 뜨거운 추상세계로 빠진다.

'블루 그레스트(닭의 볏)'를 보면 그 속엔 전쟁에서 입은 악몽이 숨어 있다. 그런 경험을 논리적 이성이 아닌 직관적 감정으로 그린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뭔가 폭발하는 비극적 운명의 감정, 음악적 내재율, 충만한 에너지, 변혁의 열망 등이 전해진다.

이렇게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은 광선주의, 구축주의, 절대주의, 추상주의 등 세계미술의 전위적 실험장이 되고 중심지가 될 수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1930년대엔 소비에트의 적대세력으로 낙인찍혀 영영 사라지고 만다.

덧붙이는 글 | 러시아전 공식홈페이지 www.2007kandinsky.com 02)525-3321
관람시간 : 오전11시~오후7시 월요일 휴관. 단체문의 02)588-8421
관람요금 : 어른 12,000, 청소년 9,000, 어린이 7,000 도슨트 그림 설명 오후2시·5시(주말 제외)
대중교통 :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 5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덧붙이는 글 러시아전 공식홈페이지 www.2007kandinsky.com 02)525-3321
관람시간 : 오전11시~오후7시 월요일 휴관. 단체문의 02)588-8421
관람요금 : 어른 12,000, 청소년 9,000, 어린이 7,000 도슨트 그림 설명 오후2시·5시(주말 제외)
대중교통 :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 5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칸딘스키 #레핀 #말레비치 #곤차로바 #러시아 아방가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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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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