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유세? 아주 시끄러워 죽겠어!"

[현장] 대통합민주신당 강남 갑 선거사무소의 하루... 무관심한 유권자

등록 2007.12.08 15:34수정 2007.12.0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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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강남 갑 선거사무소 좌측에 앉아있는 사람이 김성욱 위원장 ⓒ 김준희


선거사무소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선거운동원들은 대개 아침 7시 30분이면 특정 장소에 모여서 출근하는 주민들에게 아침인사를 한다. 청담동에 있는 대통합민주신당 강남 갑 선거사무소도 마찬가지다.

강남갑 지역은 삼성동·청담동·논현동·신사동·도곡동 등 총 13개 동이고 지하철역도 13곳이다. 13개 동이기 때문에 선관위에 등록할 수 있는 선거사무원(운동원)의 수도 13명이고, 후보 홍보현수막도 13개다. (각 동마다 후보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한 개씩만 걸 수 있고, 한 동에 2개 이상의 현수막이 걸릴 경우에는 바로  선관위에서 경고가 내려온다고 한다.)

대통합민주신당 강남갑 선거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위원장·조직국장·회계·운동원 등 총 16명. 이 16명이 그 넓은 강남 갑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해야한다. 그러니 얼마나 바쁠까.

13개 동, 13개 지하철역... 선거운동원은 16명

청담사거리에 있는 강남갑 선거사무소를 찾은 것은 7일 오전 10시였다. 선거운동원들은 오전 7시 30분부터 오전 9시까지 삼성역에서 아침인사를 진행하고 지금은 모두 집에서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고 한다. 넓은 사무실에는 김성욱(48) 위원장과 회계·사무국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의 가운데에는 강남갑 지역의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다. 지도상의 각 동마다 현수막이 걸려 있는 지역을 표시해두었다. 이렇게 지도를 내려다보니까 정말 넓다. 이 넓은 지역을 16명이 뛰어다니면서 홍보를 해야한다.

강남 갑 지역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던 곳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선거운동에 대한 이 곳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태까지 정동영 후보 현수막이 2번 파손되었어요. 정동영 후보의 벽보는 7번 파손되었구요."

김성욱 위원장의 말이다. 현수막을 설치한 것은 11월 27일 새벽이었다고 한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위원장이 직접 사다리차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현수막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열흘 정도 되는 기간 동안 현수막과 벽보가 합쳐서 9번 파손된 것이다.

유세차량을 가지고 로고송을 틀어놓고 돌아다니다보면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주민들도 많다고 한다.

각 선거구마다 유세차량도 1대씩만 소유할 수 있다. 강남 갑 지역의 유세차량은 강남을 지역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불법이기 때문에 바로 선관위에서 경고가 내려온다고 한다. 이 유세차량은 운전기사 혼자서 운행해서는 안된다. 그것도 불법이기 때문에 꼭 특정인이 옆좌석에 동승해야 한다. 이 선거법은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이 유세차량들은 아무 곳에나 주차하더라도 딱지를 떼거나 견인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차를 세워두고 실컷 로고송이나 홍보비디오를 틀어놓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사무실 바깥 도로에 이 유세차량이 세워져 있다. 마침 운행나갈 예정이라고 하기에 나도 함께 따라나서기로 했다. 12시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로고송을 틀며 홍보하고, 12시에는 운동원들이 모두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모인다. 그곳에서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해서 운동원들이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다.

강남 을로 넘어가면 불법, 혼자서 우전해도 불법... 복잡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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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차량 선거사무소 바깥에서 대기중이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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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차량 운전기사 함종수씨 ⓒ 김준희


선거유세차량은 1톤 트럭을 개조한 것이다. 트럭의 뒤를 커다란 박스로 개조했다. 그 박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안 쪽에는 CD·DVD를 틀수 있는 장치가 있다. 위성방송신호를 잡아서 스크린으로 내보낼 수도 있다.

이 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는 함종수(68)씨. 이 차량의 원래 소유주다. 이렇게 1톤 트럭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특정인을 골라서 유세차량의 운전을 맡긴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거의 하루종일 이 차를 운전한다고 보면 된다.

유세차량을 운전하다보면 자주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온다고 한다. "날씨가 흐리네요. 운전 조심하세요" "오늘 시내에서 집회 있으니까 위성방송 틀어주세요" "오늘 하루도 수고해주세요" 등. 선관위 또는 중앙당에서 보내는 문자메시지다.

오전 11시가 되서 유세차량을 함께 타고 밖으로 나갔다. 청담사거리를 출발해서 역삼역· 강남역·논현역·신사역·압구정역을 거쳐서 갤러리아백화점으로 향할 예정이다. 로고송을 크게 틀어놓고 달리기 시작했다. 넓은 강남의 대로에는 평일 오전시간인데도 많은 차량들이 있다.

"하루에 기름값으로 얼마나 사용하세요?"
"하루에 한 5만~6만원 정도 되요. 운전도 운전이지만, 뒤쪽에 있는 발전기를 돌려야 되니까 기름을 많이 먹어요."


낮에는 주로 로고송을 틀어놓고 운전하고, 저녁이 되면 위성방송이나 홍보비디오를 틀어 놓는다고 한다. 방송이나 비디오를 스크린으로 보여주려면 한 장소에 정지해있는 것이 좋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정해서 그 곳에 '주차'해두고 비디오를 틀어놓는 것이다(유세차량만 아니라면 불법주차다).

강남 갑 지역에서 그러기에 좋은 장소는 강남역 사거리, 삼성역 사거리 등이다. 가끔 경찰과 마주칠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서로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하고 각자 볼일을 본다고 한다.

거리에 차가 많아서인지 유세차량의 진행도 느리기만 하다. 각 동에 들를 때마다 현수막이 제대로 걸려있는지 벽보가 훼손되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최근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현수막이 조금 느슨하게 걸려있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현수막을 제작해준 업체에 전화걸어서 'AS'를 부탁하고, 급하면 직접 다시 현수막을 단단하게 묶어둔다.

정동영 후보의 현수막이 설치된 곳은 대부분 넓은 사거리다. 아무래도 사거리에 지나다니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을테니까 홍보효과가 그만큼 있을 것이다. 우리는 로고송을 틀어놓고 운행하면서 벽보가 제대로 붙어있는지, 현수막이 잘 걸려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운동원들의 인사에도 무관심한 주민들 "시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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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백화점 앞 연설중인 김성욱 위원장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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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백화점 앞 점심시간 홍보 중인 운동원들 ⓒ 김준희


압구정역을 거쳐서 갤러리아백화점 앞에 도착하자 시간은 낮 12시. 위원장과 사무국장, 조직국장, 10여 명의 운동원도 모두 이 곳에 모여있다. 위원장은 홍보차량에 올라서 연설을 시작하고, 운동원들은 2~3명씩 짝을 지어서 백화점앞 도로에 섰다.

"시끄러워 죽겠어! 아주 그냥"

김성욱 위원장이 연설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도로를 걷던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소리지르며 걸어갔다. 김 위원장의 목청이 크기는 크다. 게다가 유세차량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고 하는 연설이니, 스피커를 통해서 터져나오는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릴까. 특정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짜증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저런 분들 많아요."

내가 그 아주머니를 바라보자 사무국장이 나에게 말했다.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대놓고 특정후보를 욕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때는 웃으면서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고 인사한다고 한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운동원들에게 가보았다. 운동원들은 모두 이 지역에 거주하는 아주머니들. 정동영 후보를 나타내는 어깨띠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있다.

"식사하고 나오셨어요?"

내가 물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9시까지의 지하철역 홍보시간이 끝나면 각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낮 12시에 다시 점심시간 홍보를 위해서 모인다. 그 장소는 상황에 따라서 매번 바뀐다고 한다.

"다른 당의 운동원들과 부딪치는 경우도 있나요?"
"마주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서로 양보해요. 우리가 이 쪽에서 먼저 하고 있으면, 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러죠. 예전처럼 서로 몸싸움하고 그런 경우는 없어요."


아주머니들은 모두 가정이 있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운동원들은 선거기간 동안에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밖에서 활동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이 기간동안에만 엄마일을 도와달라고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이렇게 거리에서 인사하면 사람들 반응은 어떤가요?"
"대부분 관심없어 해요. 가끔씩 격려해주는 사람도 있고,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수고한다면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주고 가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한다. "화이팅"을 외치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있단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힘이 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맥빠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관심 아닐까.

"가만히 서있지 말고 사람들 건너오면 인사하세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조직국장이 아주머니들에게 말했다. 점심시간이라서 그런지 백화점 앞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당 운동원 만나면 서로 양보 "몸싸움 이젠 없어요"

이 곳에서 1시까지 홍보를 하고 사무실에 모인다. 그 곳에서 각자 명단을 가지고 아는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작업 등을 한다. 그리고 6시 가까이 되면 직장인들 퇴근 시간에 맞춰서 다시 지하철역에 모인다. 그곳에서 저녁인사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시간이 끝나면 대략 저녁 8시. 그럼 다시 사무실에 모여서 보고하고, 다음날 일정을 챙기고 나서야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보통 밤 10시 가까이 된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12월 18일까지 이런 일과의 반복이다.

물론 주말에는 조금씩 변동이 있다. 출퇴근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하철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홍보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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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사무소 오후 일정을 논의중이다. ⓒ 김준희


오후 1시가 되자 일행은 다시 사무실로 이동했다. 나는 김성욱 위원장, 사무국장과 함께 사무실 앞에 있는 식당에서 갈치조림·매운갈비찜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위원장은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거리를 걸으면서도, 식당에서도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서는 다시 사무실에 모였다. 위원장은 직접 오후 일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 4시 30분에 명동에서 '시민사회연석 규탄집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운동원들도 시간에 맞춰서 모두 그곳으로 간다. 오후 6시에는 광화문에서 또 집회가 있다. 운동원들은 거기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그러니까 오늘 저녁 퇴근시간 지하철역 홍보는 물 건너간 셈이다. 이렇게 집회같은 돌발적인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운동원들의 하루 일정은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유세차량은 그 집회와는 별도로 이 지역에서 계속 운행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도곡동·논현동 쪽으로 좀 돌아봐."

차량에 동승할 사무원에게 위원장이 말했다. 선거구 중에서 어느 지역이 소홀한지, 어느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홍보할 것인지 일일이 신경을 쓰는 모양이다.

밥을 먹고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있자니 몸이 나른해져 온다. 하지만 오후 운행에 동승하기 위해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오후 2시. 유세차량은 다시 청담사거리를 출발해서 역삼역으로 향했다. 비가 오지는 않지만 하늘은 잔뜩 흐려있다.

이렇게 흐린 날에는 오후 시간에도 비디오를 틀기에 좋다. 날이 어두울수록 스크린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역삼역에 도착한 차량은 다시 도로 한가운데 '불법주차' 하고서 비디오를 틀었다. 30분 분량의 정동영 후보 홍보비디오다.

그러니까 30분 동안 이 곳에서 멈춰 있다가 다시 이동할 예정이다. 역삼역 앞으로는 많은 차들이 오고 간다. 차량들이 지나가면서 이 유세차량의 방송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어, 이명박 후보 유세차량이네요."

신호에 걸려서 서있는 차 중에 한나라당 유세차량이 보였다. 같은 1톤 트럭을 개조한 것이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의 유세차보다 박스를 좀더 높게 만들었다. 저렇게 만들면 좀더 눈에 뜨일지 모르겠다. 신호등이 바뀌고 한나라당 차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 차에서도 우리를 보았는지, 그 차에 타고있던 운동원이 이 차를 바라보면서 재미있는 표정으로 거수경례를 하고는 지나갔다.

오후 3시 10분이 되서 다시 이동했다. 매봉역·양재역을 거쳐서 강남역이 목적지다. 이렇게 하루종일 차를 몰고 다니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조금 전에는 어떤 사람이 이 차를 보고 '야! 이 xxxx야!'라고 큰소리로 욕을 하고 지나갔다. 정동영 후보를 싫어하는 사람일까.

퇴근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강남의 도로에는 차가 많아진다. 강남역 사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4시가 조금 넘어서다. 이 사거리 한쪽에 주차해두고 위성방송을 틀 생각이다. 위성방송 신호를 잡는 것도 일이다. 언제 어디서나 신호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호를 잡기 위해서는 차의 위치를 잘 조정해야 한다. 1m 차이를 두고 신호가 안 잡힐 수도 있다고 한다.

박스 안쪽에서 한참동안 기계를 만지고 나자 방송이 나왔다. 차에 붙은 스크린이 환하게 밝아졌고, 커다랗게 볼륨을 높였다. 신호에 걸린 차들이 심심해서라도 이 차 화면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곳에 주차해있다가 다시 이 지역을 한바퀴 돌고 사무실에 들어가면 오늘 하루 일과가 끝난다. 아니, 사무실에 들어가서 보고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내일 일정을 논의하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4시 30분.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 그리고 스크린은 점점 밝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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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앞 사거리 주차중인 유세차량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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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유세차량 스크린에 위성방송이 나오고 있다. ⓒ 김준희


#2007 대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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