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외경심과 문명재해에 대한 공포

등록 2007.12.27 14:53수정 2007.12.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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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득한 옛날부터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늘 안고 살아왔다. 더불어 '천재지변'이니, '자연재해'니 하는 말도 인류와 함께 존재해 왔다.


그러다가 작금에 이르러 우리는 '문명재해'니, '환경재앙'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며 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용어들의 실체를 심심찮게 접하는(접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자연재해와 문명재해는 성격이 너무도 판이하다. 자연재해는 규모와 상관없이 그 어떤 것이라도 단기간의 복구가 가능하다. 외과치료만으로도 완전 치유가 가능한 환자의 경우와 같다. 더러는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문명재해는 큰 내상(內傷)을 동반한다. 외과와 정신과 치료만으로는 완전 치유가 불가능하다. 외상과 함께 내상이 속속들이 워낙 커서, 온전히 복원이 되려면 장기간이 필요하다.

'복구'는 인위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복원'은 자연력(自然力)의 의미를 더 많이 지닌다. 자연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복원'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면, 어떤 상실감과 절박감 같은 것이 함께 따라오는 듯한 묘한 질감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이 문명화되면서 복원이라는 단어로부터 때로는 뼈아픈 절망도 경험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을 우리는 살고 있다.

자연재해는 복구로써 거의 100% 복원이 가능하지만, 문명재해는 복구가 복원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자연의 복원력(復原力)에도 심대한 영향이 미치는 것이 문명재해다. 그런 문명재해의 속성을 생각하면 자연 공포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인류는 자연재해만을 경험하면서, 거기에서 자연에 대한 외경심도 키워왔다. '외경심(畏敬心)'이란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다. 자고로 외경심은 인간의 귀중한 미덕 중의 하나로 존중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이나 어떤 합당한 대상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바르고 폭넓은 품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자연을 파괴하고 때로는 능멸하면서 문명재해의 조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명재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인류가 발전시켜온 과학문명으로부터 생겨나는 재난이다. 이 문명재해는 자연파괴와 상실로부터 조건이 마련되기도 하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운데서 유래하기도 한다.

자연재해는 2004년 동남아를 휩쓴 쓰나미처럼 예측 불가능 속에서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것들도 있지만 대개는 인간의 예측과 대비 능력을 허용한다. 반면 문명재해는 인지권(認知圈) 안의 인위적인 방비 시스템 속에서도 인간의 방심이나 태만, 기계류의 오작동으로부터 발생한다.

자연재해는 온전히 자연에 달린 것이지만, 문명재해는 전적으로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머리와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관장하고 있기에 불안전하게나마 안전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고로 문명재해는 언제라도 어떤 형태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하며, 인간들은 오늘도 그 위험성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무제한적 '위험성 확보'는 지구의 종말론과도 연결될 정도다.

2007년 12월 7일 발생하여 태안반도를 덮친 '기름과의 전쟁'은 내게도 깊은 자괴감을 갖게 한다. 나도 거의 매일같이 바다를 다니며 기름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비탄과 함께 뼈아픈 자책감을 갖는다.

그동안 나부터 방심 속에서 살아왔다. 백화산에 올라 태안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거듭 취하며 천혜의 고장임을 자랑스러워할 줄만 알았지, 서해의 수평선 위에 떠 있는 대형 선박들을 보면서도 별다른 '각성'을 갖지 못했다.

가로림만 어귀 한 옆의 대규모 석유공업단지를 눈으로 보고 그곳에 원유를 실어 나르는 대형 유조선의 존재를 인지했으면서도, 그리고 서해의 비좁은 항로를 갖가지 크고 작은 선박들이 무수히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설마'라는 추상적인 부사 속에 안주하여 이날 이때껏 위험을 걱정하는 글 하나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름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수시로 '새만금'을 떠올리곤 한다. 대규모 자연파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새만금 간척공사와 태안반도 '기름과의 전쟁' 사이에 혹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나만의 모호한 생각이겠지만, 자꾸만 문명재해라는 단어와 함께 '새만금의 슬픔'이 떠오르니 묘하고도 얄궂은 일이다.

더불어 나는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와 관련하여 육지에서의 문명재해 상황을 걱정하게 된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중에는 남한을 동서로 가르는 대운하 건설 계획이 들어 있다. 이명박 정권이 제발 그 공사만은 시행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초대형 자연파괴가 될 대운하 공사 자체만으로도 문명재해가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건설이라는 미명으로 자행되는 대규모 자연파괴는 인간의 오만과 무분별의 극명한 반영에 다름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2월 27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12월 27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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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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