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라는 괴물에게 빼앗긴 시간을 찾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이들 웃음소리

등록 2008.01.23 07:59수정 2008.01.23 09:1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얼굴에 팩을 한 아이들 팩을 하고 아빠를 놀래키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해 보았다.

얼굴에 팩을 한 아이들 팩을 하고 아빠를 놀래키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해 보았다. ⓒ 김민수

▲ 얼굴에 팩을 한 아이들 팩을 하고 아빠를 놀래키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포토샵으로 합성해 보았다. ⓒ 김민수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잠시 외출 중이었습니다. 막내는 아내를 따라 나섰고 두 딸은 학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차려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지난 가을부터 아이들에게 들려 줄 들꽃이야기를 쓰고 있거든요. 
 
썰렁한 집. 저녁이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꽃도 피우면 좋을텐데 사실 아이들이 집에 있어도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놈의 공부때문이죠. 덧붙여 말하자면 입시제도라는 귀신이 우리 가정의 이야기꽃을 꺾어가 버린 것이죠.
 
방학인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바쁩니다. 어른들보다 더 바쁜 아이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살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인해 마음 편하게 쉬질 못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며 학원을 오가느라 힘들고 부모는 늘어만 가는 사교육비 지출로 인해 허리가 휩니다. 허리가 휜 이유 역시도 입시제도라는 괴물 때문입니다.
 
돈이 성적을 만드는 현실, 학교공부만 열심히 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교육정책은 백화점 바겐 세일하듯 빈번하게 바뀌고,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혼란스럽게 합니다.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일찍 씻고 자라.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하냐?"
"다 그러는데 어떡해? 학원에 안 가면 불안하고…."
"에이, 이 놈의 나라는 어째 아이들을 이렇게 들들 볶아대냐?"
 
아이들과 놀고 싶은데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조용히 앉아 내 일을 합니다.
일찍 자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하나 둘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아이들 방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입니다. 사람 사는 소리죠.
 
뭐하고 놀고 있나 방문을 빼꼼히 열어보았습니다.
 
"으악!"
 
아이들이 얼굴에 하얀 팩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도 해 줄까?"
"아녀, 너희들 사진이나 찍자."
 
그렇게 30여 분을 깔깔거리니 안방에 있던 아내가 궁금한지 아이들 방으로 들어옵니다.
 
"뭐하는 거…으악!!"
"크크크크…."
 
오랜만에 아이들과 실컷 웃었습니다. 이런 시간들, 가족들이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입시제도라는 괴물이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 빼앗긴 시간들을 찾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 괴물에게 질 수는 없으니 자투리 시간이라도 자꾸 온 가족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죠.
2008.01.23 07:59ⓒ 2008 OhmyNews
#입시제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이러다 임오군란 일어나겠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대통령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