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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산한 동대문 거리 사람들로 붐비던 예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 정미경
▲ 한산한 동대문 거리 사람들로 붐비던 예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이다.
ⓒ 정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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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동대문을 찾았다. 마지막으로 동대문에 쇼핑을 왔던 것이 지난해 가을이었으니 거의 반 년 만에 다시 동대문에 간 셈이다. 나에게 동대문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볼 빨간 지방 아가씨가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서울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동대문이었다. 2005년 당시 동대문은 시골 촌사람인 나에게 '별천지'였다.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에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붐비는 동대문이 좋았다.
"거기 지나가는 이쁜 언니, 이것 좀 보고 가."
"이거 두벌 사면 2000원 깎아줄게."
"에이, 언니 5000원은 빼주셔야죠."
"어머, 그래서는 원단값도 안나와."
장사꾼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봤던 사람 또 봐야 하고, 거리를 걸을 때 절대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 없는 조용한 내 고향에는 없는 그 활기. 그 분주함과 활기가 나를 들뜨게 했고 그래서 동대문이 좋았다.
그러나 그 반년 사이에 동대문은 많이 변해있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났을 거리는 한산했다. 밀리오레, 두타 등 번쩍거리는 패션몰과 대조적으로 그 앞에 철거가 진행 중인 동대문 운동장의 외벽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장사꾼의 흥정 소리 대신, 어수선한 분위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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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 외벽에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붉은 색의 현수막에서 상인들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 정미경
▲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동대문운동장 외벽에 철거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붉은 색의 현수막에서 상인들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 정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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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체철거 결사 반대 동대문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의 모습. 기둥마다 철거를 반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 정미경
▲ 강체철거 결사 반대 동대문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의 모습. 기둥마다 철거를 반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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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거리에는 활기 대신 어딘가 모를 싸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보다 더 많아 보였다. 매서운 겨울바람 만큼 차가운 냉기가 상인들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붉은 현수막에 적힌 말들은 그들의 심정을 말해주었다.
'우리나라 패션의 원조', '쇼핑의 중심지' '노동자 전태일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 곳 ' 이 바로 동대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옷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대문에 와서 물건을 사간다. 비단 옷뿐만 아니라 동대문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새로 생긴 청계천을 따라 헌책서점, 신발가게부터 시작하여 평화시장, 디자이너크럽, 뉴존, 밀리오레, 두타 등 대형 쇼핑몰들이 요밀조밀 모여 있다. 20년 동안 동대문에서 옷을 사다가 지방에서 장사를 했다는 이근옥(52)씨는 "IMF 때도 동대문에는 사람들로 꽉 찼었다. 이 곳을 개발하는 것은 좋지만, 여기서 어렵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마음도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라며 달라진 동대문의 분위기를 전했다.
휘황찬란한 백화점 건물이 곳곳에 들어서고 굳이 동대문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을 통해 옷을 사는 것이 더 편리해져 버린 요즘, 동대문은 시대로부터 소외받고 있었다.
동대문,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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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으로 사라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 뜨겁던 관중들의 열기도 목소리도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그 곳에는 아직 서민들의 애환이 남아 있다. ⓒ 정미경
▲ 역사속으로 사라질 동대문 운동장의 모습 뜨겁던 관중들의 열기도 목소리도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그 곳에는 아직 서민들의 애환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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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상인들의 외침 "우리를 외면하지 마라" 동대문운동장스포츠 지하상가 상인들은 격일로 시의회와 인권위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 정미경
▲ 마지막 상인들의 외침 "우리를 외면하지 마라" 동대문운동장스포츠 지하상가 상인들은 격일로 시의회와 인권위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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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운동장 스포츠 지하상가에도 철거를 반대하는 성명서가 붙어 있었다.
‘서울시의 강제철거 오세훈은 사퇴하라’, ‘영세상인 목조이는 서울시는 자폭하라’
분노가 그대로 묻어나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눈여겨 읽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곳에서 30년간 장사를 했다는 김용주씨는 "젊을 때 장사를 시작하여 평생을 이 냉난방도 안되는 지하에서 보냈다. 철거하라고 하니 앞길이 막막하다"라며 결국 눈물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넘쳐나는 쓰레기에 포장도 제대로 안된 인도, 꽉 막히는 도로에 지저분한 지하상가. 언제 페인트칠했는지 모를 낡은 건물들. 찌든 때가 잔뜩 껴 있는 리어카. 싸구려 물건을 내다 파는 노점상들.
동대문은 분명 나이가 들었다. 그래서 개발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동대문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오백원짜리 싸구려양말을 파는 할아버지, 백원짜리 찹쌀도넛을 파는 할머니, 어디에 쓰이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요상한 물건을 선전하는 아저씨, 반쯤 손가락이 들어간 오뎅 국물을 건네는 아줌마, 새벽부터 지방에서 올라와 물건을 사가는 언니, 무거운 짐을 오토바이로 겁 없이 나르는 청년 그리고 포장마차의 이천오백원짜리 호박죽으로 고픈 배를 달래는 내가 동대문에 있다.
"우리는 맨날 쫓겨만 다녀."
18년 동안 가죽피혁노점을 했다는 풍물시장의 한 상인(64)은 말했다.
"청계천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지 4년이 되었다. 이제 또 나가라고 하네."
"신설동에 풍물시장 상인들을 위하여 건물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하던데요?"
"여기 들어올 때도 우리가 한 사람당 70만원씩 걷어서 다 만든 거야. 하루 벌어 사는 처지에 그 돈이 어딨어. 심지어 일수 빌려다 쓴 사람도 있어."
"그래도 이렇게 노점이 아닌 곳에서 장사할 수 있다는 거 좋은 거 아닌가요?"
"좋으면 뭘 해, 이렇게 장사하기 좋은 동대문에서도 장사가 안되는데, 거기라고 장사가 되겠어? 나도 아직까지 개시도 못했어. 하도 장사가 안되니깐 그냥 물건 던져버리고 간 사람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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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동대문 멀리서 바라본 동대문의 모습은 마치 끝을 기다리는 백발의 노인과 같았다. ⓒ 정미경
▲ 도로 한가운데 위치한 동대문 멀리서 바라본 동대문의 모습은 마치 끝을 기다리는 백발의 노인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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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인터뷰 안하려고 하는 거죠?"
"시청에서 나온 용역들이 기자들 나오면 이름하고 소속 다 적어가. 그리고 전노련 지도부들은 수배령까지 내려졌어. 다들 겁나니깐 앞으로는 못나서고 뒤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지 뭐."
"앞으로 철거를 반대하시면서 계속 투쟁하실 생각이신가요?"
"가기 싫다고 하면 어쩔 거여. 결국에는 다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잖아. 우리는 맨날 쫓겨만 다녀."
나는 아무리 가기 싫다고 발버둥쳐도 결국에는 별 수 없을 거라는 상인의 말에서 그가 평생을 통해 느꼈을 사회에 대한 깊은 패배감을 보았다. 동대문이 품고 있던 이 사람들은 이젠 어디로 가야할까.
이 날 내가 3년 전에 보았던 동대문의 열기는 어느새 서글픔으로 남아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가 느낀 동대문의 변화를 솔직히 취재하였습니다.
2008.01.30 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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