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소리'에서 발견하는 '책읽기'의 오랜 향기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에서 듣는 '책읽기' 방법과 유익함

등록 2008.02.04 12:28수정 2008.02.0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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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겉그림 ⓒ 포럼

▲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겉그림 ⓒ 포럼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오랜 질문이 있다. 겉보기에는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지만, 곰곰이 헤아려보면 이 말은 결국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게 한다. 이 말이 나온 유래가 어떻든 간에 이제 우리에게 이 말은 잠들기 쉬운 우리 삶을 끊임없이 깨운다.
 
책 세계에서는 이 말을 ‘읽기가 먼저냐, 쓰기가 먼저냐’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볼 수 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무언가를 읽고 (세상을) 배운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쓰며 자기 생각을 (세상과) 나눈다.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읽기에 더 큰 의미를 둘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읽기’는 사실 단순히 어떤 문자 뜻을 눈과 입으로 헤아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마음, 표정, 사물, 사건은 물론 심지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우주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 역시 ‘읽기’에 해당한다. 물론 ‘읽기’와 ‘쓰기’는 사실상 동전 앞뒤면과 같다.
 
'읽기'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보자니, 고전(古典)이란 참 재밌고도 알차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전이란 모름지기 지혜로운 독서가들 사이에 인정받으며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읽히고 또 읽힌 책이다.
 
세월을 넘나드는 재주를 지닌 것이 고전이다 보니, 고전에는 단순히 화려한 문자나 사상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속에는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여러 계층 목소리, 그들이 살아온 발자취, 시대별 세계가 깊숙이 스며 있다. 그런 고전을 읽는다는 건 그야말로 글도 읽고 세상도 읽는 유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전과 독서, 그 오랜 '책읽기' 향기를 찾아서
 
이렇듯 고전이란 세월을 넘나드는 지혜, 지식, 삶이 어우러진 ‘종합선물’이자 ‘특별선물’이다. 그런데, 막상 고전을 읽자면 그 어려운 옛 글자하며 쉽게 이해하기 힘든 말투, 느낌이 선뜻 마음에 새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전은 좋은 책이지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다’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곤 한다. 누구 할 것 없이 고전에는 약한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어서인지, 그런 우리에게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는 꽤 반가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는 박지원, 이이, 정약용, 허균 등 이름도 제법 익숙한 옛 지식인들이 남긴, 독서에 관한 풍성한 지혜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그 오랜 지혜를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번역자들은 쉽게 풀어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더 많은 이들과 고전을 나누고자 하는 노력으로 맺은 열매가 바로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이다.
 
‘옛 소리’(고전)에 뜻을 둔 고전연구회 사암(俟巖)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독서했는지를 살피는 일에 적잖은 힘을 들였다. 이제는 더더욱 익숙하지 않은 한자로 기록된 데다가 옛 사람이 말하는 방식, 의도까지 이해하자면 고전은 이미 어느덧 베개나 받침으로 그 쓰임새가 변질되어 있을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고전을 쉽게 풀어써 그 풍성한 지혜를 나누려는 노력은 이렇듯 계속 이어지고 있다.
 
번역자들은 옛 지식인들이 지은 책(일부분)을 번역하면서 각 글마다 번역자들이 느낀 점을 몇 문장 분량으로 적어놓음으로써 독자들이 고전을 읽으며 활용할 방법 한 가지를 제시해주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이 다소 불편한 배려일 수 있겠으나, 적잖은 이들이 고전이라는 말부터 부담스러워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배려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 다만, 독자들은 이미 쉽게 풀어 쓴 고전을 ‘원래 그대로’ 보라는 뜻에서, 각 글마다 번역자들이 붙인 제목이나 독서후기는 나중에 따로 보고 (번역된) 원문만 먼저 읽는 게 좋겠다.
 
예를 들어, 홍길주가 지은 '수여방필' 일부분을 풀어 쓴 것을 보면 그 밑에 다음과 같은 독서후기가 있다.
 
“오해는 아직 모르는 것 모르는 것보다 한 참 더 모르는 것”(이 책, 93쪽)
 
이 책에 담은 '수여방필' 내용을 보면, 홍길주는 많은 이들이 책 일부분을 흘깃 보고 책 의도를 섣불리 짐작해버리거나 심지어 오해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수여방필'를 읽고 번역자들이 남긴 독서후기가 바로 위 문구이다. 이 책 구성과 그 내용이 대개 이러하다.
 
재밌는 사실은, 어느 시대든 사는 모양새나 고민하는 문제가 비슷하다는 점이 이 책이 다룬 옛 글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나더라는 점이다. 책을 아끼고 잘 다루라든지, 좋은 종이(재질)을 사용한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서가 더 잘 되리라는 법은 없다든지, 책을 베개나 받침으로 쓰지 말라든지 하는 생활 속 조언들이 바로 그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읽기는커녕 책을 험하게 다루고 잘못 사용하는 일이 늘 있는 일인가보다. 개중에는 다음과 같은 따끔한 충고를 통해 책 읽기에 담긴 깊은 의미를 가르치기도 한다.
 
“요즘 서울의 젊은이들은 마치 저잣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과 같아서, 오로지 빨리 성공에 접근하고, 속성으로 성공을 구하는 기술만 찾는다. 반면 옛 성현의 글이 담긴 책들은 높디높은 다락에 묶어 처박아 두고, 매일같이 영악하게 남의 비위나 맞추는 글을 찾는다. 그리고 그 말을 도둑질해 시험감독관의 눈에 띄도록 글을 지어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이 책, 211쪽/유성룡의 <서애선생문집>에서 ‘여러 아이들에게 보냄’이라는 글(일부)을 풀어 씀.)
 
고전은 참 묘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 좋은 말씀이 많다면서도 잘 읽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이다. 또한, 우리가 잘못 이해한 결과이겠지만, ‘고전을 읽는다’ 하면 오랜 지혜와 지식이 아무런 수고도 없이 저절로 내 것이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게 바로 고전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홍석주의 조언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독서가 곧 학문이라고 말한다. 학문은 진실로 독서를 하지 않는다면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독서는 학문의 한 가지 일에 불과하므로 학문이란 독서만으로 이룰 수는 없다. 나는 일찍부터 공부하는 사람이 ‘학문의 도’를 구할 때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엄격한 스승과 좋은 벗을 만나 매일같이 가르침을 듣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옛사람이 지은 고전을 읽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여행과 유람을 하면서 세상을 두루 살펴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이 책, 146쪽/ 홍석주의 <연천전서>에서 ‘학강산필’(일부분)을 풀어 씀.)
 
만일 위 글이 선뜻 마음에 닿지 않는 이들에게는 김성일이 '학봉전집'에 기록한, 퇴계 이황의 조언 한 마디가 오히려 더 정곡을 찌르는 꾸지람이자 따뜻한 충고로 들릴지 모르겠다. 이제 독자들께서도, 30여명에 달하는 많은 옛 지식인들이 남긴, 그 오랜 '책읽기' 향기를 직접 맡아 보기를 권한다.
 
“낮에 독서한 것은 반드시 한밤중에 골똘히 생각하고 풀어보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고전연구회 사암. 포럼, 2007.

2008.02.04 12:28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고전연구회 사암. 포럼, 2007.

[POD]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 - 개정판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포럼, 2015


#조선 지식인의 독서노트 #고전 #고전연구회 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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