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 위원장, 딱 일주일만 영어 가르쳐보라"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 토론회... "불도저식 교육정책 이해 안 된다"

등록 2008.02.12 18:41수정 2008.02.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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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대응 공동행동'은 12일 오후 국회 도서관 회의실에서 '새정부 영어교육정책 해부와 대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대응 공동행동'은 12일 오후 국회 도서관 회의실에서 '새정부 영어교육정책 해부와 대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이종호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본 교사들은 5~6학년에 '영포'(영어 과목 포기 아동)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교육 과정이 어려운 6학년 영어전담교사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몰입교육이라니. 0점에서 100점까지의 아이들과 일주일만 수업해보고 정책을 만들라고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따져보고 싶다."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

"새 정부는 영어교육 하나를 위해 돈을 쏟아붓고, 심하게 말하면 영어로 말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다른 능력은 모두 모자라도 괜찮다는 영어만능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경양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고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위원장 이경숙·이하 인수위)가 '영어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이명박 정부가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교육 현장의 교사·학부모 등이 이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대응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2일 오후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새 정부의 영어교육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공동행동은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교육복지실현국민운동본부 등 6개 단체가 모인 조직이다.

토론회는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개편안에 제동을 걸고 새 정부가 추구해야 할 교육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주최로 열렸다. "향후 교육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던 인수위의 주장과 달리 현장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은 외부 단체 주도로 열린 셈이다.

교사들 "일주일만 영어 수업해보고 말하라"

참석자들은 인수위가 공청회 등을 열면서 야심차게 내놓은 영어 공교육 개편안을 질타했다. 이들은 "인수위가 교육 현장의 현실을 너무 모르고 있다"며 "사회적 합의없는 '불도저식' 공교육 개편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홍완기 전국영어교사모임 회장(용산고 교사)은 "영어 교육에 대한 논의가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이라며 "전 국민이 영어를 얼마나 잘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꼬집었다.

홍 회장은 "'사회적 요구'라는 명분으로 필요 이상의 영어 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영어에 대한 가수요를 넘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어를 의사소통 도구로 여기는지, 교수매체로 할 것인지, 외국어 교과목으로 볼 것인지 등 영어를 보는 시각에 대해 이명박 당선인이나 이경숙 위원장 등이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수위의 대입 자율화 조치도 문제삼았다. 홍 회장은 "본고사에 영어 지문이 나오면 교사들은 (영어 교육 때문에) 바빠진다, 안 되면 (아이들은) 과외를 받아야 한다"며 "이런 가운데 대학 자율화를 해버리면 대학들이 과연 가만히 있겠느냐, '사교육 시장을 줄이겠다'는 인수위의 발표와 상충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홍 회장은 그러면서 "입시구조에 대한 구조적인 성찰없는 영어 공교육 대책은 또 실패할 것"이라며 "'국가영어능력평가'에 찬성하지만, 그 시험과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진희 서울 영일초 교사는 지난 1997년 도입된 초등학교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교사는 "10년간 진행된 초등영어교육에 대한 객관적·질적 연구가 없었다"며 "이명박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초등영어교육 확대 혹은 백지화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사는 "영어에 아예 관심이 없고 아주 쉬운 단어도 쓰려고 하지 않는 등 영어 과목을 포기한 아동을 교사들은 '영포'라고 줄여서 이야기하는데, 고학년 아이들을 가르쳐 본 교사들은 5~6학년에 '영포'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조 교사는 "6학년 영어전담교사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자리"라며 "이런 상황에서 영어몰입교육이라니, 0점에서 100점까지의 아이들 30여명과 일주일만 수업해보고 그런 정책을 만들라고 이경숙 인수위원장에게 따져보고 싶다"고 질타했다.

조 교사는 현행 영어 원어민 교사에 대해 "지도력이 천차만별이라, 교수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교사들은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학부모 "차라리 모든 초등학생을 필리핀 유학보내자"

박경양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고문은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개편안은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정책"이라며 "새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사교육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고문은 "사교육은 학교 교육의 부실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 구도 때문에 나타났다"며 "사교육 문제는 경쟁 구도의 완화나 다양한 경쟁이 가능토록 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고문은 "새 정부는 영어 교육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물음없이 '모든 한국인이 영어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 최고'라는 인식 아래 정책을 만들었다"며 "국어를 비롯한 다른 과목을 소홀히 여기면서까지 영어교육에 그토록 목을 매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박 고문은 "모든 아이가 영어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며 "물가가 싼 필리핀은 1년에 (학비가) 1000만원 정도라는데 차라리 모든 초등학생들을 3년쯤 필리핀을 유학을 보내면 될 것"이라고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정책을 일갈했다.

천세영 인수위 자문위원 "'영포'라는 말, 처음 들었다"

천세영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상임자문위원(충남대 교수)은 이에 대해 "최적은 아니지만 차선의 정책을 냈다"고 반박했다. 천 위원은 지난달 30일 인수위 주최로 열린 '영어공교육 완성을 위한 실천방안 공청회'에서 발제문을 발표한 바 있다.

천 위원은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개편안의 방향에 대해 ▲각급 학교와 교사들의 어려움 해결 ▲실용영어 구사능력 고양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서라도 국가경쟁력 제고 사업으로 추진 ▲학교와 교사들의 자율적 역량 지원 등을 꼽았다.

천 위원은 "지난 10년간 초등영어교육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해야 한다"며 "인수위가 부득불 제시한 방안은 얼개일 뿐이다. 상세한 것들은 평가와 실험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이뤄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천 위원은 '영포'에 대해 "처음 들었다"면서 "교육은 기본적으로 개별화를 전제로 하지만 교육 현실은 현장 교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런 한계에서 최선 또는 차악을 택하려는 것이 정책의 원리"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로 하는 영어수업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천 위원은 영어 공교육의 목적에 대해 "인수위나 정부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국가교육정책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며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국가교육과정 개편으로 해결이 이뤄져야지, 한두달 활동한 인수위나 새 정부가 들어서서 바꿀 문제가 아니라도 본다"고 말했다.

천 위원은 또한 '영어전용교사' 도입에 반발하는 예비 영어교사들을 향해 "굉장히 오해하고 있다"며 "그분들(예비 영어교사들)이 일차적인 자원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분들이 배제됐다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테솔(TESOL) 문제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고 토로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영어 공교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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