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입은 남성, 여성부에 필요없다

등록 2008.02.24 18:19수정 2008.02.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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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대통령직 인수위가 폐지하려고 했던 여성부가 우여곡절 끝에 규모를 줄인 채 살아 남았다. 정부 조직 가운데 여성부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 구조 속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성’을 끄집어내 우리 사회를 좀 더 평화적이고, 창조적인 곳으로 만들 그런 부서 하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성성이 공격적, 파괴적, 직선적, 권위적인 성질을 가리키는 데 반해, 여성성은 평화적, 창조적, 수평적, 수용적인 성질을 가리킨다. ‘국민성공시대’라는 구호 아래 온 국민을 경쟁의 대열에 올려 놓고 있는 이 시점에 여성성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끌어낼 것이며, 가학적으로 변해갈 사회를 상생이 가능한 곳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부처 가운데 환경부나 복지부 등이 여성 장관을 많이 배출하는 까닭은 나눔과 배려, 보살핌의 영역인 두 부처의 업무 성격이 곧 여성성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물론 힘 없는 부서에 생색내기 식으로 여성을 배정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은 온전히 성의 생물학적인 성질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사회적으로 여성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생물학적 여성이 남성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국회 국방위원회에 소속된 한 여성의원은 다른 남성의원을 능가하는 남성성을 과시하며 이름을 날리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성을 담보하고 있을 거라 판단하고 지지한다면, 치마 입은 남성을 선택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도 있다.

여성단체의 노력으로 지켜낸 여성부의 수장으로 이춘호 자유총연맹 부총재가 내정되었다. 자유총연맹은 이라크 파병을 앞장 서서 찬성했으며, 양심에 따른 병역 대체 복무를 반대하고, 군가산점 제도에 찬성했던 단체다. 이 단체의 부회장이 여성부의 수장이 된다면 여성부는 여성성을 잃고 말 것이다.

이 내정자의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부위원장 경력과 그로 인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여성부 장관으로 이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청계천 복원은 그로 인해 사라진 수많은 문화재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서민들의 상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은 정부기관의 남성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이 내정자는 전국 각지에 다양한 형태의 부동산 40여 건을 보유하고 있는 땅 부자이다. 부동산에 대한 마구잡이식 투자도 그렇지만, 그에 대한 해명으로 "유방암 검사를 했는데 암이 아니라는 결과를 보고 남편이 기뻐하며 서초동 오피스텔을 사줬다"고 말하는 그의 상식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양성평등을 우선해야 할 여성부의 업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걱정스럽다.

장관으로 내정된 다른 이들과 비교했을 때 이춘호 내정자의 이력이 특별히 도드라지는 건 아니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 내각’이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 이명박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은 다들 형편이 비슷하다. 하지만 여성부라는 부서 특성에 이춘호 내정자는 도무지 맞지 않는다. 이춘호 내정자의 취임과 동시에 '남성부' 또는 '부동산부' 등으로 이름부터 바꿔야 할 상황이다.


이춘호 내정자가 담당하기에는 여성부의 존재가치가 너무 크고, 그가 끝내 취임을 한다면 여성부를 지켜내기 위한 그간의 노력들이 너무도 허망하다. 여성부의 수장으로는 부동산 투자의 달인이 아니라, 자기 것마저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줄 아는 그런 여성성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 치마 입은 남성, 여성부에는 필요 없다.
#이춘호 #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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