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까?

[책 이야기] 진화의 역사

등록 2008.02.27 16:12수정 2008.02.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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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역사 크로노스 총서 13권으로 출간된 '에드워드 라슨'의 진화의 역사 ⓒ 을유문화사

▲ 진화의 역사 크로노스 총서 13권으로 출간된 '에드워드 라슨'의 진화의 역사 ⓒ 을유문화사

신이시여 진정 창조하셨나이까?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생명의 기원’, 즉 ‘원인’에 대해 탐구하였다. 물론 이는 유신론적인 세계관에서 되물어진 질문은 아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원인의 원인’과 ‘최초의 운동자’를 상정했을 때 이미 유일신교를 위한 ‘변증의 다리’는 놓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야 기독교의 공고한 지배력과 향후 들끓게 되는 이슬람의 역사가 모두 ‘유일신’을 향한 여정이었고 그만큼 ‘신의 창조’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다른 곳이라고 그렇게 무관하지만은 않다.

 

유학자를 비롯한 제자백가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을 일구어낸 한중일의 수많은 석학들이 비록 ‘인격적인 신’에 관한 진지한 여정을 시도한 적은 없지만 공자가 논어를 통해 다양한 ‘하늘’을 이야기하고, 주자가 성리학적 정당성을 ‘천리’에서 찾고, 노자가 ‘자연과 도’를 이야기 할 때 이미 어떤 ‘절대적인 것’은 상정될 수 밖에 없었던 아니, 오히려 당연할 수밖에 없던 전제였는지도 모른다.

 

갈릴레오, 튀비에, 다윈, 리처드 리키에서 리처드 도킨스까지

 

갈릴레오는 최초로 진정한 의미에서 ‘물리적 성질과 인과 관계’만을 다룬 근대적 형태의 과학을 열었고 다윈은 비로소 현대 무신론과 자연주의로 가는 근원적인 단초인 ‘진화의 길’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오늘 우리에게야 기껏해봤자 기독교인과 무신론자 간의 논쟁으로 느껴지거나 혹은 과학적으로 상식에 속하는 얘기인지 모르겠으나 실상 ‘진화론’의 발전은 그렇게 순수하게 과학적이지만도 않은 오히려 매우 복합적인 역사성을 띠며 지금까지도 강력한 의미를 갖고 발전해 오고 있는 ‘진행형’ 사상이다.

 

초기 튀비에로 대표되는 유신론적 과학자들은 원인과 기원의 탐구를 통해 창조의 과학적 적실성을 추구했으며 이 가운데 창세기가 가진 경전의 신성성, 이를 보증해주는 기독교 신학의 신성성을 과학과 동일한 지평에서 지켜나가고자 했다. 또한 노아의 홍수와 화석 증거들이 가지고 있는 상관관계 속에서 ‘격변설’과 ‘상동이론’ 등 불연속적이고 다차원적인 창조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자 하였다.

 

다윈은 <종의 기원>과 이후의 논문들을 통해 이런 서구사회의 본질적인 페러다임을 뒤엎기 시작하였으며 조금 더 거칠고 사회사상가적 입장이 강한 ‘헉슬리’와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을 다양한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화석학이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기 위한 끝없는 행보를 계속하는 가운데 <오리진>의 저자 리처드 리키 가족을 통해 초기보다 훨씬 고도의 형태로 발전하였으며 ‘용불용설’을 주창한 라마르크적 진화의 한계와 ‘적자생존’만으론 이종간 천이나 진화의 포괄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지 못한 다윈설의 한계 가운데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같은 보다 과감하며 포괄적인 과학적 비행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한편에서 진화론은 ‘게르만 민족우월사상’의 저주스러운 모태가 되는 우생학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잊혀진 줄만 알았던 창조론자들과 미국 기독교의 과학적이고 대중적인 반격, 제인 구달, 리처드 도킨스 같은 신다윈주의자들의 창조적이면서 새로운 도전들이 얽혀지며 오히려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여전히 진행 중으로 후끈후끈한 주제

 

작게 보면 ‘신이 세상을 창조했는가, 아닌가’ 혹은 ‘인간과 세계는 진화의 산물인가’의 과학적 문제이겠으나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질문일 수 있겠으며 ‘세계와 자연’을 바라보는 근원적인 세계관의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우리 삶의 의미를 묻는 실존적인 주제일 수도 있겠고 말이겠다.

 

한국에선 이 주제가 지나칠 정도로 생물학적 논쟁으로 비추어진 감이 있다. 또한 격렬한 논란과 기독교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관한 차분하고 건전한 토론이 부재하고 이 문제를 살펴볼 만한 포괄적인 개론서 한권 찾아보기 힘든 것도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는 가운데서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서 창조론 교육을 도입하거나 적어도 진화론 교육을 교과서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진화적 창조론’을 수용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과학적 용단에도 불구하고 베네틱도 16세는 ‘지적설계’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조론에 대한 적극적 수용의 뜻을 밝히고 있다.

 

반면 여전히 성경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창조설을 믿는 창조론자와 진화론 외의 어떠한 과학적 입론도 배격하는 ‘전통적인 자연주의자’들 간의 뜨거운 공방도 계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 정도면 흥미를 끌고도 남을 만큼 후끈거리는 주제가 아닌가?

 

크로노스 총서

 

에드워드 J 리슨의 <진화의 역사>는 진화를 둘러싼 복합적인 역사를 3백페이지 분량에 알뜰하게 담아내면서 국내 최초로 진화를 둘러싼 통사를 맛볼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 안타깝게도 글이 드문드문 산만해지고 전반적으로 일목요연하지 못하는 대목도 있으나 그래도 현재로서는 꽤 귀중한 수확이다.

 

기독교도나 유신론자 입장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 정도로 진중하고 객관적으로 쓰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을유문화사에서 기획한 ‘크로노스’ 총서의 기획서로 출간되었는데 기획출판이 범람하는 최근 ‘책세상’ 시리즈와 더불어 가장 유익하다고 평가받을 만큼 귀중한 총서이니 이 기회에 ‘크로노스’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좋을 듯.

2008.02.27 16:12 ⓒ 2008 OhmyNews

진화의 역사

에드워드 J. 라슨 지음, 이충 옮김,
을유문화사, 2006


#서평 #진화의역사 #책 #도서 #크로노스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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