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이산>
MBC
드라마 <이산>이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하여 두 번 정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는 드라마 속 정조 이산의 등극일을 2월 25일로 하려다가 네티즌 간에 논란이 생기자 그냥 1주일 앞당긴 것이고, 두 번째는 이명박 정부의 조직개편작업이 논란을 일으키는 시점에서 정조가 '수구세력'에 맞서 '작은 정부'를 추진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그저 드라마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귀여운' 시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에피소드는 해석에 따라서는 드라마 작가의 정치적 성향을 가늠케 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연산군 시절에 비롯된 방만한 정부 규모를 줄이기 위해서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니! 대체 '연산군'은 누구를 가리킴인가?
정조 임금이 정말로 '작은 정부'를 지향했는가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연산군이 정조 임금의 전임자도 아닌데 연산군 시절의 정치가 정조 시대에까지 영향을 준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것은 방송 드라마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었다고 평가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산군은 1506년에 쫓겨난 임금이고 정조는 1776년에 등극한 임금인데, 270년 전에 발생한 정치적 행위가 270년 후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세상의 인과관계를 그처럼 무한정 확대한다면, 형법학에서 흔히 이야기되고 있듯이 세상의 살인사건은 모두 다 아담과 이브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역사적 인과관계를 규명할 때에는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조 시대의 정치에 영향을 가장 크게 끼친 인물이라면, 정조에 앞서 52년씩이나 조선을 통치한 영조 임금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제21대 영조를 제쳐 두고서 제10대 연산군이 제22대 정조의 전임자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학이든 사극이든 간에 역사를 다루는 사람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과학성(인과관계의 합리적 제한)을 위반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드라마 <이산> 속에서 고의든 과실이든 간에 정조 임금과 이명박 대통령을 등치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났으므로,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 정말로 닮은 구석이 있는지를 한번쯤 탐구해보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정조 임금에게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송이 제기되면 어떤 식으로든지 반응을 하는 사법부처럼 우리도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비교 혹은 대조해본 결과, 생식능력이 없는 M이 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정말로 '발가락'만이라도 M과 닮은 구석이 있다면 진실 여하에 불구하고 M의 친구 겸 의사인 '나'는 "그래! 이 아이는 네 아이야!"라며 <이산> 시청 중에 생겼을 불편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지 않을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나'와 M은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의 등장인물들이다.
'발가락'을 살펴보기 전에, 정조 이산과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부터 비교·대조해보기로 한다. '얼굴'이 닮았다면 굳이 발가락으로 시선을 옮길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운데 발가락이 나를 닮았어! 내 가운데 발가락도 이렇게 길거든! 내 아들 맞지?"
'확인'보다는 '확신'을 얻으러 온 M에게 의사인 ‘나’는 “그래, 발가락뿐만 아니라 얼굴도 닮았지”라고 말해주었다. 발가락을 보기 전에 얼굴부터 확인한 의사 ‘나’처럼, 우리도 비록 마음은 좀 서글프지만 정조와 이명박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닮은 데가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얼굴이란 두 통치자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각 통치자를 대표하는 간판이 될 만한 정치적 과제를 통해 두 사람의 닮음 여부를 가려보기로 한다.
정조 이산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제는 문예부흥과 탕평정치였다. 그것이 그의 얼굴이다. 정조가 문예부흥과 탕평정치를 추진한 것은, 자기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선왕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작업들을 통해 조선의 문화와 정치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하고자 했다. 지금 당장 어떤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왕조의 기틀을 새로 짜는 것이 조선왕조의 부활을 위한 본질적 접근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반해 이명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제는 대운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그의 얼굴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경제를 살려야 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쭉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운하에 집착하는 것은 그 자신이 '건설맨'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경제관(觀)'이 많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를 살리려면 뭔가 큰 것을 건설해야 한다. 그런 접근법 말이다.
"내 재위기간 내에 조선을 살려야 한다."(정조 임금)
"내 재임기간 내에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이명박 대통령)
이런 신념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있는 동안'에 뭔가 큰일을 해야겠다는 것은 어느 통치자나 처음에는 다 똑같이 품는 꿈일 것이다. 문제는 그 꿈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정조 임금은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이고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대단한 건설사업을 벌인다든가 혹은 먼 나라들과 수교를 맺는다든가 또는 대외 군사활동을 벌인다든가 하면 얼마든지 짧은 시간 내에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런 역사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정조 임금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원칙주의 때문에 정조 임금이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가시적인 성과물을 자주 내놓았더라면 그의 정치적 기반이 훨씬 더 공고해짐은 물론 그의 측근세력도 보다 더 빨리 성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넓은 문’을 택하지 않고 ‘좁은 문’을 선택했다.
정조 사망 후에 그의 개혁이 모두 다 원위치 되고 만 것은 그가 생전에 뭔가 구체적이고 확고한 성과물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개혁은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이라서 훌륭한 것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현실의 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말았다. 역사를 많이 공부했기 때문에 역사에 쉽게 이름을 남기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 텐데도,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면, 못한 것일까?
그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학자들의 생리를 잘 아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풍길 때가 많다. 역사학자들이 주로 주목하는 대상이 과도기나 변화기의 군주, 획기적이고 가시적 성과물을 많이 남긴 군주, 뭔가 독특한 행적을 많이 남긴 군주 등이라는 점을 이명박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자기 시대를 조용히 이끌면서 온 나라의 존경을 받는 군주는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이름 없는 군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인 개혁을 해봤자 시간만 많이 걸리고, 괜히 그러다 장렬히 전사해버리면 역사 속에서 영원히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은 꼭 '영리한 과외선생' 같다는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학생에게 복잡한 영어문법을 일일이 정성껏 가르쳐줘봤자 소용없다. 다음 달 중간고사에 나올 만한 문제들만 꼭꼭 짚어서 그것만 가르쳐주면 된다. 그래야 학부모의 칭찬을 받을 수 있다. 학생보다는 학부모를 더 의식하는 '영리한 과외선생'.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의 서울시장 재임시절에 최대 성과로 남은 청계천 복원사업. 그 사업이 그의 재임기간(2002~2006년) 내인 2003년에 시작해서 2005년에 끝났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일이 아니다. 아마 그는 한반도 대운하도 자신의 재임기간 내에 어떻게든 이루려고 할지 모른다.
위와 같이 핵심적 정치과제를 추구하는 기본자세에서 정조 임금과 이명박 대통령은 본질적인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정조 임금은 장기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한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단기적으로 문제의 현상에 다가서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조 임금이 당장의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좁은 문'을 선택한 데 반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당장의 성적을 올리려고 '넓은 문'을 선택하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훗날 역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정조 임금보다도 이명박 대통령이 더 많이 기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대운하가 정말로 완성된다면, 먼 훗날의 역사학자들에게는 정조 임금의 추상적인 업적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구체적인 한반도 대운하가 눈에 얼른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지만 한반도 대운하가 정말로 건설된다면 말이다.
의사인 '나'는 친구 M이 데려온 아기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는 M의 아기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정조 임금과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을 비교해본 결과, 우리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의사인 우리들 ‘나’는 아기의 발가락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래, M 네 말대로 정말로 가운데 발가락이 남들보다 긴 편이구나.” 그렇게라도 ‘나’는 M을 달래고 싶다. ‘나’와 M은 서로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M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줘야 한다. “그래, 이 아이는 너를 닮았구나!”
그래! 정조 ‘이산’과 대통령 ‘이명박’에게는 정말로 닮은 구석이 딱 하나 있다. 본관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성씨가 같은 이씨라는 점. 한국문화를 잘 모르는 먼 나라 사람들은, 같은 이씨라는 점 때문에 뒷사람이 앞 사람의 후손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래! 두 사람은 그것 하나는 확실히 닮았다.
“그래! 이 아이는 네 아이가 맞아!”라며 친구 M을 돌려보낸, 김동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의 화자(話者)인 ‘나’. 거짓말을 해서라도 친구 M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는 ‘나’. ‘나’의 말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한 채 아기를 꼭 안고 돌아서는, 생식능력 없는 M의 서글픈 뒷모습.
드라마 <이산>의 정치적 편향을 보면서 우리는 혹 그런 서글픔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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