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생들의 반란? '주동자'와 '배후'를 찾았다

[2008 뉴스게릴라를 찾아서 3] 이돈삼-이슬비 부녀, '거사'를 모의하다

등록 2008.04.08 14:17수정 2008.04.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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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된 이슬비 기자, 웃는 모습이 참 해맑죠? ⓒ 김귀자

초등생 슬비의 '이유 많은' 변신


"엄마, 전자사전 좀 사 주세요∼"
"부모 돈으로 사게 되면 귀한 줄 모른다. 정 갖고 싶으면 날 설득해 봐!"

작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슬비의 1주일 용돈은 4천원. '어떡하면 용돈을 늘릴 수 있을까.' 생일선물을 핑계 삼아 엄마에게 전자사전을 얻어 보려 했던 작은 꾀도 통하지 않았다.

더구나 책상정리나 숙제 등 할 일을 제때 안할 때마다 500원씩 팍팍 삭감하는 엄마의 '냉정함'이란. 엄마야 나쁜 습관을 고치게 되니 일거양득이라 좋았겠지만, 슬비에겐 고통의 세월에 다름없었다. 결국 스스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했던 슬비!

"그전엔 아빠가 기사를 왜 쓰나 생각했죠. (옆에서 보기에) 심심해 보였어요. 근데, 원고료 받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띄었어요."

그로부터 얼마 후, '초딩' 슬비는 주저 없이 기사를 썼다. 그렇게 초등학생 시민기자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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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이슬비 기자가 쓴 <초딩이 그려본 '노무현', 주름이 섬세해요~> 기사에 넣은 '깜찍한 노무현 대통령' 그림. ⓒ 이슬비


슬비는 첫 기사를 내놓은 지 열흘 만에 <오마이뉴스>에 첫 톱기사를 올렸다. <초딩이 그려본 '노무현', 주름이 섬세해요!>. 애니메이션 작가가 꿈이라는 슬비는 이 기사로 자신의 그림솜씨를 맘껏 뽐냈고, "팬입니다. 앞으로 기대할게요"라는 달콤한 댓글도 받아보았다.

이 기사로 사기충천, 용기백배해 열띤 기세로 몰아붙인 끝에 지난 2월엔 '새 뉴스게릴라'로 선정돼 '거금'을 움켜쥐기도 했다. 당시 새 뉴스게릴라상 수상을 알리는 공지글에 올라온 '이슬비 기자'의 소감을 보자.

"저는 어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같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동신여자중학교를 다니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기사 많이 쓰겠습니다."

남과 여 "우리 한집에 살아요"

그런데, 이슬비양 앞에서 '심심해 보이게' 기사를 썼던 그 '아빠'는 누구일까. 눈치 빠른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지난 2006년 명예의 전당까지 오르는 필력을 과시한 이돈삼 기자다.

요즘은 두 부녀가 올리는 번갈아 올리는 기사 량이 만만치 않다. 과연, 한집안 두 기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찾아 광주로 향했다.

공무원인 이돈삼 기자는 선배 소개로 2001년에 <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은 후 5년 만에 잉걸 이상 기사 1000개를 돌파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시민기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초등생 슬비의 눈에는 '지.루.해.서' 잘 읽지도 않는 기사였다고. 그런데 조금씩 원고료 모으는 재미에 눈을 떠가던 '새내기' 시민기자 슬비의 눈에 서서히 '거성' 시민기자인 아빠의 기사가 들어왔단다.

"직접 기사를 써보니 달라졌어요. 지금은 안 지루해요. 나는 이제 8개 썼는데 1000개 넘게 쓴 아빠가 정말 존경스러워요. 아빠가 딴 메달도 진짜 자랑스럽고요."

반면, 아빠는 행동도 느릿하고, 산만한 슬비가 글을 쉽게 뚝딱 써내는 것을 신통해 한다.

"저는 쓰기 전부터 어떻게 쓸까 부담을 가지는데, 슬비는 앉으면 삼십 분을 안 넘기고 바로 써요. 쉽게 쓰는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광주까지 부녀 시민기자를 찾아오면서 한 지붕 두 시민기자가 살기에 벌어질지 모르는 컴퓨터 쟁탈전, 불꽃 튀는 라이벌 전을 기대했다. 그런데 컴퓨터 쟁탈전은 '없단다'. 슬비는 학교에 갔다 와서 30분 안에 기사를 후딱 써버리고, 아빠는 주로 애들이 자는 오밤중에 쓴다. 라이벌이기 보단 상부상조에 가깝다.

대신 그들은 서로에게 '편집기자' 노릇을 한다. 아빠는 슬비의 기사를 보고 "이런 걸 첨가하라며 글 구성을 코치해주고, 오탈자를 잡아준다. 슬비는 아빠의 기사를 보고 "이건 재미없다, 이 에피소드는 왜 넣었냐, 빼라"라고 지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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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우린 그런거 몰라요~ 아빠 이돈삼 기자와 딸 이슬비 기자. ⓒ 김귀자



딸의 일기 훔쳐보던 '인권침해' 아빠의 반성

아빠는 예전에는 슬비가 쓴 글의 오탈자를 잡아준다는 이유로 슬비의 일기를 꼬박꼬박 읽었다. 그런데 자녀들의 일기 보는 건 '인권침해'라는 말을 듣고서 슬비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슬비가 "그렇다"고 했단다. 충격이었다. 게다가 딸이 '비밀일기'를 따로 쓰는 걸 보고선 그 다음부터는 딸의 일기를 읽지 않았다. 딸이 커가면서 찰떡궁합이었던 부녀 사이도 조금씩 벌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 슬비가 크면서 약간 거리감이 있었어요. 요즘엔 엄마랑 많이 통하더라구요. 여성으로 느끼는 것, 그건 저와 할 수 없으니까. 좀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아빠가 느끼는 거리감을 좁힌 계기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아빠는 요즘 딸이 쓰는 기사를 보며 속내를 많이 들여다본단다. 특히 딸이 언제나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무주스키장을 다녀와서 쓴 첫 기사 <뭐, 죽기야 하겠어>에서 "무섭긴 해도 뭐 죽기야 하겠어"라며 대담하게 표현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딸이 이런 표현을 쓸 줄 안다니…. 이젠 아빠는 딸과 기사를 통해 소통한다. '기사' 덕분에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엄마는 슬비의 이중생활을 어떻게 생각할까.

"저도 슬비 기사를 보면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 기사는 사진이나 보고 내용은 안 읽는데…(호호), 슬비 기사는 달라요. 재밌어요. 호호호."

엄마는 대놓고 슬비편이었다. "혹 딸에게 라이벌의식을 느끼지 않나요?"라고 묻자, 이돈삼씨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무렴요. 저는 새 뉴스게릴라상을 받아본 적도 없잖아요…. 슬비가 나보다 낫죠!"

가족의 재구성... "우리가 최초가 되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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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시민기자 되는 날까지!(왼쪽부터 엄마, 예슬이, 슬비, 아빠) ⓒ 김귀자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돼지 세 마리(豚三)'가 걸어갑니다 ♬"

이돈삼 기자와 이슬비 기자. 이들은 가족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공통점 외에 '통(通)' 하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이름이 특이하다는 것'. 둘 다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이젠 달관한 상태다. 이돈삼 기자는 "이름이 특이하죠?"라며 특별히 이름외기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역마살이 강림한 아빠는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종종 딸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산에서 30일간 텐트를 쳐놓고 노숙한 이야기며, 누구나 다 아는 17:1로 싸운 이야기까지…. 아빠를 닮아서 슬비도 여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이돈삼 기자는 결혼하고도 밖으로 돌아다니길 좋아(?)했다는데, 그러던 그가 '슬비'가 태어난 후로는 아주 가정적이 됐다. 그래서 슬비를 '복덩이'라고 한다. 요즘도 이돈삼 기자는 틈만 나면 가족여행을 떠난다. 2001년부터 써온 기사엔 가족과 어디를 여행했으며,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기록이 그대로 담겨있다.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가) 나중에 개인적인 가족자료가 될 수 있을 거 같아서 일일이 (가족) 사진을 올립니다. <오마이뉴스>가 가족사가 되기도 하는 거지요."

그렇다면 슬비는? 아빠 덕에 슬비는 방학숙제로 '여행신문 만들기'를 해야 할 때면 따놓고 1등이다. 슬비와 동생인 예슬이 자매에게 가족이야기나 사진이 공개되면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돌아오는 답변은 "전혀요!"다. 내가 사진기를 들이대도 오히려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주기까지.

동생과 뛰놀던 슬비가 갑자기 내게 물었다.

"근데 전부 다 (기사) 쓰는 (시민기자) 가족도 있어요?"
"없는 것 같은데요?"
(슬비가 예슬이를 보더니) "그럼 너도 쓰고, 엄마도 써서 가족 다 같이 쓰자!"

원고료로 대학가는 그날까지, 쭈욱~ 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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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시민기자, '이예슬' 신고합니다! ⓒ 김귀자


슬비는 온 가족의 시민기자화를 '선동'한다. "기사 써서 원고료 받으면 예슬이가 부러워해요. 채택이 안 돼도 좋으니 자기도 하고 싶다고 졸라대요. 그래서 실력이 늘면 내년부터 하라고 했죠."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 예슬이는 아직은 '뭘 써야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니처럼 용돈을
벌고 싶다며 이미 기대에 부풀었다. 아무래도 <오마이뉴스>는 슬비와 예슬이의 '용돈창구'로 영원히 머물게 될 것 같다. '한 지붕 두 시민기자'가 아니라 '온 가족 시민기자'가 탄생할 날도 멀지않았다.

슬비의 원고료는 벌써 17만원이다. 최종목표는 천만 원. '대학등록금'까지 원고료로 충당한다는 거다. "처음엔 백만 원이었는데요, 목표가 너무 낮으면 안 될 거 같아서요"라며 슬비가 배시시 웃어보였다.

소 팔아 대학가는 시대를 넘어 원고료 받아 대학 가는 꿈을 꾸는 슬비. 실용세대의 진정한 표본이 아닐까. 친구들도 슬비에게 원고료 이야기를 듣고 직접 써보겠다고 두 팔 걷고 의욕적으로 나설 태세라고 한다.

나는 기대한다, 슬비가 꿈을 이루는 그날을….
#이슬비 #이돈삼 #뉴스게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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