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일 지났지만... 저희 잊으신 거 아니죠?"

[현장] KTX 여승무원 투쟁 800일 기념문화제

등록 2008.05.10 14:06수정 2008.05.1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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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투쟁 800일 기념문화제를 열었다.

지난 9일,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투쟁 800일 기념문화제를 열었다. ⓒ 조윤

지난 9일, KTX 여승무원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투쟁 800일 기념문화제를 열었다. ⓒ 조윤

 

청계광장에서 수만의 인파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열던 9일, 거기에서 멀지 않은 서울역 광장에는 KTX 여승무원들이 모여 투쟁 800일 기념문화제를 열고 있었다.

 

맨 앞줄에는 "저/희/잊/으/신/거/아/니/죠/?"라는 슬픈 웃음 같은 의문문이 한 글자 한 글자 놓였다. 서울역 광장의 이 작은 속삭임은 청계광장의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거대한 외침만큼이나 단단하고 강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떠나간 동지들을 아쉬워하고 그들의 쓰린 마음을 이해하며 투쟁을 다짐했다. 아기를 안고 참석한 여승무원은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회의 여러 순서가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여승무원 한 명이 어디엔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통화 연결음이 멈춘 후에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질문에 "응, 끝났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안다.

 

쓸쓸하게 내뱉는 "끝났어" 대신에 환호성을 지르고 동지들끼리 얼싸안으며 큰 소리로 외치는 "끝났어"를 들어야 진짜 끝일 것이다. 그때까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최후의 일인이 남을 때까지 함께 싸워야 한다.

 

 집회가 끝난 뒤 마지막까지 남은 KTX 여승무원

집회가 끝난 뒤 마지막까지 남은 KTX 여승무원 ⓒ 조윤

집회가 끝난 뒤 마지막까지 남은 KTX 여승무원 ⓒ 조윤

단지 미친소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이 총체적인 위기는 민중들 편에 서지 않는 신자유주의에서부터 왔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 비정규직 문제, FTA 문제, KTX 여승무원 문제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으니 소나 닭 등을 공장에서 물건 찍 듯 생산해 내고, 너무 많이 생산해서 남아도는 것은 버리기 아까우니 건넛마을로 싼 값에 팔아넘기자고 한다. 같은 생각으로 인간도 값을 매길 수 있는 상품이라 생각하니 인간을 기계 돌리는 부품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저 부품들 없어도 이 기계 잘 돌아가잖아. 저것들 때문에 효율만 낮아지고 말이야. 당장 빼! 그리고 삐거덕거리는 부품들도 재빨리 갈아치우란 말이야.'

 

이것이 바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분들의 속마음 아닐까. 높이 앉아 계신 분들은 하늘 높이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본다.

 

지구는 점점 작아진다. 지구에서 애드벌룬으로, 애드벌룬에서 볼링공으로, 볼링공에서 테니스공으로, 테니스공에서 탁구공으로, 손에 쏙 들어올 만큼 작아진다. 그분들은 신이 나서 사포질을 한다. 거친 부분들을 매끄럽게 만든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쓱쓱 문지른다.

 

이제 그 탁구공 위에 돋보기를 갖다 대줘야 한다. 그들이 사포질을 한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바로 보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말해야 한다.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다고, 당신들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긁히고 상처 나고 피 흘렸다고 말이다. 

 

KTX 여승무원은 커다란 하나의 상징이다. 민중을 잡아먹을 신자유주의 흐름을 거스르는 이정표이다. 그동안 많이 밀렸다. 이제 더 이상 이 상징이 무너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이 "저희 잊으신 거 아니죠?"라고 물어온다. 그 속삭이는 질문에 어울리게끔 낮은 소리로 대답한다.

 

"그럼요.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 되지요."

2008.05.10 14:06ⓒ 2008 OhmyNews
#KTX여승무원 #서울역 광장 #투쟁 800일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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