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람은 왜 살아야 돼요"라고 묻는다면?

[온고을 사람들 16] '철학' 공부하는 엄마들의 모임 '인생'

등록 2008.05.15 12:03수정 2008.05.1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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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열공'하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물론 공부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직접 자녀를 끼고 함께 영어나 논술을 공부하는 적극적인 엄마가 있는가 하면 족집게로 소문난 학원정보를 알아보거나 새로운 입시요강을 마스터하면서 학업 이외의 것으로 외조하는 엄마들도 있다.


그러나 철학을 공부하는 엄마는 그리 많지 않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는 엄마들 모임이 전북 전주에 있다. 독서모임회 '인생'이 그들이다. 이름부터가 심상찮다. 모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김은영(37)씨와 문홍연(40)씨를 만나보았다.

a  지난 5월 10일 열린 <자녀와 함께하는 무료철학특강>

지난 5월 10일 열린 <자녀와 함께하는 무료철학특강> ⓒ 김은영


좋은 부모 되기 위해 '철학' 공부하는 엄마들

이들이 '인생' 모임을 구성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6월의 일이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과정에 개설된 '적극적 부모훈련(APT)' 강좌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6개월간의 교육과정이 끝난 후 부모 교육이란 끝이 없는 자기수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뜻을 같이하는 몇몇 엄마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김은영씨가 처음 부모훈련 강좌를 듣고 난 첫 소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제가 수학교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평소 교육에 대해서 관심은 많았어요. 그런데 부모가 되기 위해서 교육을 따로 받아야한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거든요. 아이만 낳으면 모두 부모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아이에게 필요한 협동심, 자아존중감, 자아의식 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느냐 그런 문제에 직면하자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그 결과는 충격이었죠."


충격을 받은 것은 비단 김은영씨뿐이 아니었다. 6개월 만에 끝난 부모교육이 아쉬웠던 그녀들은 매주 1회 회원의 집에 만나서 함께 공부했던 교재를 가지고 서로 읽고 토론하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작 인원은 7명이었다. 독서모임이라고 하지만 여느 독서모임이 수필이나 자기계발서, 소설 등 '소프트'한 것인데 비해 '인생'에서 다루는 책은 주로 자녀양육, 부모계발서에 관한 것들이다. 치열하게 읽고 전문서적도 찾아보며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하며 정말 '빡세게' 공부한다.

이들이 '인생' 모임을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자기 자식만 잘 돼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자녀, 옆집 자녀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자녀들이 모두 올바르게 클 때 더 좋은 사회를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 교육에는 특별한 우등생도, 특별한 열등생도 없다. 그러기에 서로 토론하고 격려하고 충고하며 어깨를 도닥인다.


'사과' 잘하는 부모만 되어도 성공

그 중 하나가 '사례나눔발표'다. 발표자가 실제로 자기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부모와 자녀와의 대화를 A4 용지에 그대로 적어서 모임때 나누어준다. 회원들은 그것을 읽어보고 충고와 조언을 나눈다. 예를 들면 '이 경우에는 좀더 자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 것 같다'라든지 '이때는 I (아이) 메시지('나'를 주어로 하여 긍정적으로 말하는 방식)로 바꾸어 결론을 유도하는게 낫지 않았느냐'는 식이다.

a  김은영씨가 작성한 '사례발표문'. 회원들의 조언과 충고를 꼼꼼이 메모한 흔적이 보인다

김은영씨가 작성한 '사례발표문'. 회원들의 조언과 충고를 꼼꼼이 메모한 흔적이 보인다 ⓒ 안소민


"우리는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보다는 비난하고 힐책하는 데 익숙해있어요. 우리가 자녀와 일상에서 무심코 주고받는 말을 잘 살펴보세요. 대부분이 '너 때문에' '네가~했으니까'라는 화법에 익숙해있거든요. 부모라고 당연한 특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에게 과감히 사과할 줄도 알아야 돼요." (문홍연)

문홍연씨는 이 수업에 참가한 뒤 자녀에게 '사과'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사과만 잘 해도 부모와 자녀 관계는 일단 원활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큰아이가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아이가 5학년 때 제가 처음으로 사과를 했더니 제 손을 잡아주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좀 서먹한 사이였는데 그 후로는 정말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어요. 지금 한창 사춘기라서 예민할 땐데 잘 보내고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문홍연)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해야할까? 대부분의 부모들도 마음은 있지만 입떼기가 참 어렵다. 입을 떼더라도 쑥스럽기만 하다. 그들에게 들어본 사과 잘하는 요령.

"우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민감해야 돼요. 부모들은 대개 자신의 모습에 굉장히 둔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말이 맞죠?(웃음) 잘못된 점이 있으면 늦더라도 반드시 사과해야되요. 다른 수식어나 오버는 필요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전하면 돼요.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거든요."(김은영)

a  김은정(왼쪽)과 문홍연씨

김은정(왼쪽)과 문홍연씨 ⓒ 안소민


현재 '인생'의 회원은 35여명이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경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아무래도 주부들이다 보니 시간내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따. 이젠 매주 수요일 점심 12시부터 1시간 가량 모임을 갖는다. 직장 여성이 많은 까닭에 점심 시간을 잠깐 이용해 모임을 하게 된 것. 어느 때는 단 두명이 모임을 할 때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렇게 나마 꾸준히 모임을 이어간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처음에 부모들이 상담센터나 부모교육을 받을 때는 마음 한구석에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죠. 그러나 수업을 받을수록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요. 포커스가 아이로부터 자신에게 옮기는 거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철학이 있느냐하는 것이었어요." (김은영)

평범한 엄마들이 만든 '철학교실'

지난 5월 10일부터 시작한 '자녀와 함께하는 무료철학특강'도 이렇게 시작됐다.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고, 누가 지원을 해준 것도 아니다. 지원이라면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의 동아리후원사업 공모에 이 프로젝트가 당선되어 약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전부이다. 강사비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 홍보는 자비를 들여 인터넷에 올리거나 입소문을 내는 등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이었지만 그 과정이 모두 소중하고 즐거웠다고 김은영씨는 말했다.

"첫 강의를 하고 난 뒤 이날 강의에 참여한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딸이 어느날 저녁 식탁에서 '엄마, 사람은 왜 살아야 되는 거예요?'라고 묻더래요.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마땅한 말을 못하고 궁색하게 얼버무렸는데 그 순간, '아~이래서 부모의 가치관과 철학이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 질문을 하는 건 당연해요. 부모는 거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나저나 모임이름이 꽤 거창하다. '인생'의 연유에 대해서 묻자 아주 간단한 대답으로 마무리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뭘까 생각해봤어요. 바로 우리 인생 아닐까요?"

a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는 엄마들이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하는 엄마들이다 ⓒ 김은영


[취재후기] "I 메시지, 인터넷 메신저인가요?"


"잠깐, I 메시지가 뭐죠? 인터넷으로 하는 메신저 같은 건 가요?"

기자의 질문에 두 여인은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아차,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부모교육에 몽매해서요"라며 궁색한 대답으로 서둘러 마무리.

"이게 뭔지 안 궁금하세요?"

거실 한켠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 세탁기 박스 상자를 가르키며 김은영씨가 묻는다. 사실 내심 궁금하긴 했다.

"우리 아이가 만든 집이에요. 좀 엉성해 보이긴 하지만 있을 건 다 있어요. 집을 만들고 싶다고 하길래 뭐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두 사람은 부모교육훈련을 모든 부모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녀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 아니, 부모가 되기 전에 결혼 전 '필수과목'으로 받아야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부모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지역 대학이나 단체에서 부모교육을 하는 곳이 무척 많아요.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김은영씨 집에서 이루어진 인터뷰. 김은영씨가 손수 준비한 김밥과 과일이 있어 더욱 즐거웠다. 점심을 함께 나누면서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모임을 하면서 많은 여러 엄마들로부터 자극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가장 큰 도전은 집에서 항상 일어나요. 날마다 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도전을 받고 거기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죠."

그녀들의 도전은 끝이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자녀와 함께 하는 무료 철학특강>은 5월 10일, 24일, 6월 14일, 7월 12일, 8월 9일, 9월 27일, 10월 11일, 11월 8일 총 8차례 전주완산청소년수련원에서 이루어진다.

모임에 참여를 원하는 학부모와 자녀는 신청서를 메일로 미리 작성해 보내면 된다. 이메일(msm114@hanmail.net)


덧붙이는 글 <자녀와 함께 하는 무료 철학특강>은 5월 10일, 24일, 6월 14일, 7월 12일, 8월 9일, 9월 27일, 10월 11일, 11월 8일 총 8차례 전주완산청소년수련원에서 이루어진다.

모임에 참여를 원하는 학부모와 자녀는 신청서를 메일로 미리 작성해 보내면 된다. 이메일(msm114@hanmail.net)
#인생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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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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