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위에 막춤 추는 한미FTA

다음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한미FTA의 진실 ②

등록 2008.05.20 16:47수정 2008.05.2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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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계속되고 있고, 그 중심엔 10대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최재천 통합민주당 의원이 그러한 10대들과 공유하기 위해 '쇠고기 협상과 한미FTA'에 관한 네 편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습니다. 다음은 그 두 번째 글입니다. [편집자말]
 공동체 이익을 중요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들이 한미FTA 앞에선 철저히 무력화된다. 사진은 지난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공동체 이익을 중요시 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들이 한미FTA 앞에선 철저히 무력화된다. 사진은 지난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고 있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남소연

미국에서 한미FTA는 단순한 '행정협정'에 불과합니다.

"미합중국의 법률에 일치하지 않는 한미FTA의 어떠한 조항도, 어떠한 법 적용도, 어떤 미국인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도 무효다."

제가 쓴 문장이 아닙니다. 미 의회가 각 나라와의 FTA 때마다 제정하는 <FTA 이행법>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한미FTA 협상 당시에도 미국 협상팀은 미국법과 단 한 줄이라도 어긋나는 사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협상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계를 긋곤 했었죠.

그러면 우리는 어떠할까요? 한미FTA가 법률 아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개정 대상 법률만도 30여개입니다. 정부는 국내 법률이 한미FTA와 충돌할 때마다 우리 법률을 개정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한미FTA가 조약이고 법률이기 때문입니다.

한미FTA의 위상은? 미국법 아래 한국법 위에

문제는 헌법까지 건드린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법률이 헌법을 침해할 수 있죠? 위헌 법률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통상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자는 것이 한미FTA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나라를 바꾸자는 겁니다.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가보자는 겁니다.

미국의회조사국은 한미간 첫 협상을 일주일 남겨둔 2006년 5월 25일, 미 의회에 "한미FTA는 관세 장벽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비관세 장벽, 곧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1년 뒤 우리 정부가 화답합니다. 작년 9월 7일인가요? 정부가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제출하면서 당시 한덕수 총리는 "한·미FTA는 선진통상국가로 거듭나기 위한…(중략)…우리 제도와 관행을 선진화하는 계기"라고 비로소 보고합니다. 지금도 한미FTA를 단순한 미국 시장을 여는 제도로 좁게 이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정도 차원이라면 저도 백번 동의합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한미FTA는 '간접수용'을 허용한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미FTA는 우리 헌법을 뜯어고칩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죠.

나라가 개인의 땅을 가져다 공군비행장 활주로로 쓰게 되면 당연히 땅값을 물어줘야죠? 그러면 공군비행장 근처에서 소를 키우는 사람이 비행소음으로 인해 소의 출산율이 떨어졌다면 국가가 직접 땅을 쓰지 않는다 해도 땅값을 물어줘야 할까요? 그렇진 않겠죠?

우리 헌법이나 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송아지 출산이 줄어든 만큼의 비용은 보상해줄 겁니다. 땅값은 아닙니다. 우리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는 땅을 직접 빼앗아 가는 '직접수용'은 보상해주되, 단지 이용에 피해를 주는 '간접수용'은 보상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보상해줍니다. 간접수용과 직접수용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이 주는 시사점은 엄청납니다. 두 나라의 역사와 헌법과 권리의 차이를 정면으로 드러내주는 근본적 쟁점입니다. 넓은 땅, 적은 인구라서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좁은 땅, 많은 인구라서 개인의 권리나 소유권의 한계를 상대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정든 나라를 떠나 목장을 일구고 내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내 땅은 내가 직접 총을 들고서라도 지키고, 교회를 건설하고, 대학을 만들고, 주를 건설하고, 연방국가를 만들었던 나라가 있습니다. 물론 청동기 시대부터 집단을 이루기 시작합니다만 단일민족으로 사실상 먼저 나라가 있었고, 거기에 구성원이 있었기에 서로 양보하고 어깨를 부딪히며 살 수밖에 없었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는 아무리 내 땅이라 하더라도 권리의 한계를 인정했고, 서로 양보하며 사는 쪽으로, 즉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조화롭게 해석하는 쪽으로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개인의 재산권의 행사는 일정한 한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교학사 <고등학교 법과 사회> 127쪽)"는 교과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한미FTA는 간접수용을 인정함으로써 일거에 헌법을 제압해버립니다.

 지난해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미FTA는 ISD을 인정한다, 위헌심사는 불가능!

위헌법률 심사가 있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충분한 장치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아예 한국에서 재판을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국제중재로 넘기기로 합의해 버렸습니다. 미국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한국에서 재판을 받지 않고 서로 합의에 따라 국제중재라는 국제재판을 받기로 명문화시켜버렸습니다.

참고로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제도를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라고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농업을 포기하고 도리어 ISD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했습니다.

현재 우리와 EU 간에 FTA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와 EU는 아예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기로 합의하고 진행중입니다. 그렇게 좋은 제도를 왜 미국과는 합의하고 EU에는 요구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 한미FTA 초기 저를 비롯한 입법자들이 ISD를 반대했을 때, 정부는 일관되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제도이거든요.

ISD는 우리의 '사법주권'에 대한 침해이자, 소유권에 대한 '정책주권', 역사와 전통에 대한 침해가 된 셈이죠?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도 간접보상 권리를 획득하게 됐나요? 그건 또 아니라는 겁니다. 헌법상 '평등주권'의 침해죠? 법률가로서 더 놀라운 것은 중재의 대상이 되는 '조치'의 내용 중에 '관행'까지 포함시켜버린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관행'이 국제소송의 대상이 됩니까?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재판권을 보장해왔나요? 그래서 법률가로서 화가 나고 입법자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은 좁은 땅, 많은 인구, 뿌리 깊은 공동체 의식의 소산

조금만 더 얘기할게요. 미국 헌법에는 경제질서 조항이 없습니다. 경제는 나라와 상관없이 개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맥아더 헌법'이라 비아냥 받는 일본헌법도 미국헌법을 모델로 했기에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있습니다.

여러분들 잘 아시다시피 우리 헌법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되,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119조 제2항)"라고 규정합니다.

아무리 미국인 투자가 고맙다 하더라도, 투자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안정과 조화를 위해 적절한 분배를 유지하고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조정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헌법이요, 주권자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이자 경제적 근간인 농어민을 보호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도록 규정해놓았습니다.

이런 공동체 이익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들이 한미FTA 앞에선 철저히 무력화됩니다. 대기업 오너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반(半)공식적 입장이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 조항을 없애자는 겁니다. 미국처럼 가자는 거죠.

미국은 개인의 총기소유를 합헌적으로 인정하는 나라입니다. 내가 먼저고 공동체는 나중이라는 헌법적 사유체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여기에 동의합니까? 그렇다면 한미FTA를 통해 헌법을 개정할 게 아니라 솔직하게 헌법을 개정화고 한미FTA를 해야 합니다.

스위스와 한국은 왜 다른가

스위스도 '농목국가'답게 농업을 보호하는 헌법 조항을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도 미국과 FTA 협상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유전자변형 농산물(GMO) 수입문제가 쟁점이 됐습니다.

GMO는 한미FTA에서 쟁점도 되지 못하다가 정부가 일부 속였네 하며 잠시 쟁점으로 떠올랐던 이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스위스 정부는 GMO 농산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아예 국민투표에 부칩니다. 2년 전 일입니다. 국민들이 부결시켰습니다. 스·미FTA를 하지 말라는 국민의사를 확인하고 스위스는 협상을 포기합니다.

우리는 행정수도 이전을 놓고도 "사실상의 헌법개정"이라며 헌법개정에 따른 국민투표를 거치라고 헌법재판소가 명령한 바 있습니다. 한미FTA는 여러 측면에서 더 본질적인 헌법개정입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한미FTA에 대한 사실상의 반대표시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그냥 가자는 겁니다.

결국 제 결론은 '대한민국 헌법 위에서 한미FTA가 춤추고 있다'입니다.

한미FTA에 따르면 독도와 개성공단과 북한사람은 어떻게?

모든 FTA는 협정의 효력이 미치는 해당 국가의 영토를 먼저 정합니다. 영토의 범위는 ①대한민국이 주권을 행사하는(exercise) 육지·해양·상공 ②대한민국이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주권 혹은 관할권을 행사하는(exercises) 영해의 외측 한계에 인접하고 그 너머에 위치한 해상 및 하층토를 포함한 해양지역(쉽게 풀자면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칠레나 싱가포르 등과 FTA를 체결했고, ①과 ②의 구별 없이 "행사하는"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한미FTA도 2007년 5월 25일자 초안까지는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6월 30일자 최종본에서 ②부분에 대해서는 '행사해도 되는(may exercise)'로 바뀌어 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도 지난번 청문회에서 질의했고, 정부는 미국 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것까지는 시인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미국에 항의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부인하더군요. 결국은 독도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행사해도 되느냐, 마느냐가 논란이 되는 부분은 '독도'와 '이어도' 부분 아니겠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송기호 변호사님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개성공단 상품을 국산으로 인정해야 하나, 아니면 북한산으로 인정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어려운 용어로 '역외가공지역(OPZ)'의 문제입니다. 우리 입장에선 적어도 미국이라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 정도는 우리 것으로 쳐주고 적어도 관세혜택을 누릴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개성공단이 우리 땅이라는 직간접적 의미도 부여할 수 있게 되겠죠?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의 FTA에서는 대부분 그렇게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런저런 조건을 놓아서 나중에 다시 정하자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성공단 상품이 무관세로 미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고 헛되게 선전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거짓입니다. 그래서 자꾸 알면 알수록 더 따져보게 됩니다.

한미간에 합의한 조건은 이렇습니다. 한반도 비핵화가 진전돼야 하고, 현지의 노동, 임금, 환경이 국제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이런 조건을 판단하는 곳은 한미 양국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입니다. 여기에다가 위원회가 판단한 내용을 미국 의회가 승인해야 비로소 개성공단 지역이 한미FTA에 포함되는 지역으로 인정받습니다. 가능성은 둘째 치고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고 있는(헌법 제3조) 실질적 영토의 판단을 한미 양국의 공무원과 미국 의회의 승인에 맡겨둔 것입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제품이 한국 원산지 규정을 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국민의 개념입니다. 한미FTA 협정문은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의 주소를 두고 있는 자는 이 협정상의 혜택을 주장할 수 없다"라는 각주를 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북한주민들은 한미FTA의 적용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 것입니다. 우리 헌법과 국적법은 북한주민도 출생과 동시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것으로 사실상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탈주민이 한국에 들어오면 그냥 호적을 만들어줍니다. 별도의 국적취득 절차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역시 칠레나 싱가포르 등과의 FTA에서는 이런 조항을 두지 않았죠. 그런데 한미FTA는 역시 특별합니다.

대륙붕을 비롯한 영토, 개성, 북한주민들의 헌법 상 지위 등에 대해서도 한미FTA가 일정한 제약과 충격을 가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겠죠?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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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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