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밥쌀용 미국산 칼로스쌀을 수입에 농민단체 회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단순 통상협정이라면 상관없습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법과 제도를 미국식으로 바꿔버리는 통상 그 이상의 협정이라서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겁니다. 다시 협상 당시로 되돌아갑니다.
한미FTA 협상을 시작할 때 한미 양국 사이에 "이 부분은 서로 논의하지 말자"고 약속한 사항이 있습니다.
미국은 넷을 요구했습니다. TPA(통상증진권한)의 지침에 어긋나는 부분 불가, 개성공단은 정치적 사안이므로 불가, 일시입국비자(전문직 비자쿼터)는 의회권한사항이므로 불가, 주정부의 권한과 관련된 부분은 침해 불가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딱 하나를 요구했습니다. '쌀'이었습니다.
문제는 쌀이 당연히 의제가 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참여정부는 이미 2004년 "2014년까지 실질적으로 쌀 소비량의 13%를 의무수입하고 그 30%를 밥상용으로 자유로이 수입하겠다고 양보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캘리포니아 산 칼로스 쌀이 수입되고 있고, 2015년부터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협정을 맺어놓았(김성훈 경실련 공동대표)"기 때문입니다.
이미 WTO에서 협상을 끝냈고, 전면 개방일정까지 예정해두고도 왜 이것을 협상대상에 넣었을까요? 어차피 2015년이면 끝나는 게임인데 왜 쌀만은 지키겠다고 거짓말했을까요?
알면 알수록 고민되는 한미FTA 여기에 대한 정부 답변이 걸작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걸고 넘어지는 미국 측의 요구에 대해 이렇게 방어했답니다.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입니다. "쌀을 요구하길래, 미국 측의 '존스액트'(미 연안의 승객·화물 수송은 미국에서 만든 국적선만 허용하는 법)를 공격해서 쌀 개방 요구를 잠재웠다"(필자,
<오마이뉴스> 2007년 4월 9일 자 기고문 참조)
대한민국은 세계 1등의 조선강국입니다. 미국에 우리가 만든 선박조차도 팔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미국 법 때문이죠. 한미FTA는 미국법을 일체 손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의제도 아닌 쌀 개방을 요구하자, 그럼 우리도 우리 배를 당신들이 사달라 이렇게 요구해서 막았다는 '자랑스러운' 협상 실화입니다.
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왜 자유무역 협정인데, 상품을 자유롭게 유통하자는 건데 우리가 만든 선박은 수출하지 말라는 거죠? 이것이 어떻게 해서 자유무역협정입니까? 이래서 알면 알수록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말합니다. "(점수를 매긴다면) '수'를 주고 싶다."(한미FTA 협상타결 당시 김종훈 수석대표) 잘했다는 겁니다. 그리곤 "재협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이 신통상정책을 이유로 재협상을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덥석 받아줬습니다. 4월 2일 협상타결이 있었고, 5월 하순 재협상이 있었고, 그리하여 5월 29일 최종적으로 협상문안이 완성됐습니다.
이런 정부가 쇠고기에 대해서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재협상 권한은 미국만의 독점적인 권한인 셈입니다.
우리의 강점은 사람과 상품, 한미FTA가 길을 열었을까?우리 경제의 장점이 무엇일까요? 사람과 물건 아닐까요? 미국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쇠고기, 곡물 등 1차 상품과 금융서비스, 지적재산권 등 3차 산업일 것입니다. 각기 경쟁력 있는 분야를 수출하는 것이 자유무역의 이득이라면 우리는 사람과 물건의 수출 길을 열었어야만 했죠.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는 문제가 '비자쿼터' 문제입니다. 가서 일자리를 얻으려면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우리가 받아내야 합니다. 일을 하기 위해서 머무를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죠.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의 FTA를 통해 1만500개를 받아냅니다. 전문직 일자리입니다. 우리는 어땠습니까? 이 부분은 미 의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안 된다고 미국이 못 박아버렸습니다. 정부는 회의 때마다 미 의회와 별도의 교섭을 통해 받아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끊임없이 우리 경제 규모를 볼 때 오스트레일리아보다는 더 많이 받아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2007년 6월 25일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김종훈 대표의 말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부분이 우리가 검토하는 내용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며 마치 대단한 밀약이 있고, 대단한 협상전술이 있고, 행정부 간의 여러 채널간의 약속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습니다.
둘째는 '무역구제'입니다. 상품을 팔다보면 좀 싸게 파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 때 그 싸게 판 부분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것이 '무역구제'입니다. 우리 협상단이 최고의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무역구제만큼은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무역협회도 꼭 받아내야 할 부분으로 이것을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무역협회는 이것을 받아내지 못한 줄 잘 알면서도 한미FTA 적극 찬성에 서 있습니다.
상품을 팔기 위해선 불필요한 규제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도 미국의 법을 고쳐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2006년 말까지 협상의제도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법 개정 사항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미국이 못 박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마지막에 겨우 얻은 것이 협의권만 있고 결정권은 없는 '무역구제위원회'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미FTA 협정문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지난해 5월 25일 오전 김종훈 수석대표가 외교부에서 협정문 공개에 따른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10년간 GDP 60% 증가, 33만 명의 고용증대 효과, 대미 무역수지 6억 3천만 달러 개선 등 화려한 기대치를 저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한미FTA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선전한 수치들은, GDP 증가와 고용증대를 계산한 방식과 무역수지를 계산한 방식이 다르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 하락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설명도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과 대만도 미국 시장 점유율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중국이나 인도나 브라질 같은 새로운 경제중진국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들이 미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성공했을까요? 가장 성공적인 지표라는 멕시코가 고작 0.60%P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파는 상품 중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축에 드는 무선전화기와 반도체 등은 이미 무관세 품목입니다. 우리의 평균 관세율은 7.9%이고 미국은 2.4%입니다. 물론 정부는 미국 시장이 한국의 16배라고 항변합니다. 그렇다고 칩시다. 과연 누가 더 이득일까요?
한미FTA는 미래세대의 '정책주권' 문제이 글을 연재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결정을 내리죠. 그런데 누구도 주인에게 제대로 알려주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미FTA는 단순한 통상협정이 결코 아닙니다. 공공성과 개인의 소유권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사회를 꿈꾸지 않습니다. 철저히 국가를 사소유권화시켜 버립니다.
한미FTA는 청소년 여러분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입니다. 한미FTA는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제도를 만들고 고쳐나가는 데 엄청난 제약 조건이 될 것입니다. 한미FTA는 정책주권의 자율성을 침해합니다. 한미FTA는 궁극적으로 국민주권의 문제입니다. 이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1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선비준으로 미국을 압박한다? 선(先)비준론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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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먼저 비준한 뒤 미국 측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2월 13일) 재밌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물론 미국보다 상대방이 먼저 비준하는 게 거의 관례입니다. 그런데 선 비준하면 그대로 가는 건가요? 두 가지입니다. 미국이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있고, 미국이 재협상을 통해 고쳐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페루의 예를 들어보죠. 페루는 미국과 FTA 협상을 마치고 선 비준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미국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이후 민주당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 쪽에 달려있다는 게 솔직한 현실입니다.
더구나 미국은 권력교체기입니다. 미·일·중·러 등 코끼리 네 다리 사이에 놓인 우리나라는 신중하고 예민할 필요가 있겠죠? "코끼리가 싸울 때도 잔디는 뭉개진다. 코끼리가 사랑을 나눌 때도 잔디는 망가진다(스리랑카 속담)"는 키쇼르 마부바니 싱가포르 국립대 공공정책 대학원 원장의 말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어찌됐건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이죠?
이런 미국의 정치상황 아래서 우리 정부는 미국 의회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국회가 한미FTA를 먼저 비준해야 해서 미국 의회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미FTA 추진을 통해 국익을 지키고 자유무역 원리를 관철시켰다는 명분이 필요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논리입니다. 물론 전경련 등 우리네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도 마찬가지죠. 이들의 확신을 비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선 비준으로 미국이 압력을 받는다? 이건 아니겠죠.
한미FTA의 비준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 후보나 힐러리 후보를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각 미국을 방문한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한 시간 단위로 공화당의 멕케인 후보까지 영국대사관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브라운 총리를 만나기 위해 그 먼 곳에서 유세를 멈추고 워싱턴으로 달려와야 했습니다.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언론이 오바마나 힐러리 후보와 접촉해서 한미FTA 문제를 얘기했냐고 묻게 되면) "안 했다고 해도 후보로선 손해고 했다고 하면 찬반 여부를 물어볼 것이고, 반대했다고 하면 본의 아니게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현명하지 못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유명환 장관, 4월 23일)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을 접촉하지 않은 이유가 한미FTA 때문이랍니다. 안정적인 한미 관계를 위해서라면 대통령은 당연히 그들과의 접촉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대한 관계를 어떻게 구상하는지, 한반도 핵문제는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등은 우리가 외교정책을 짜는 데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한미FTA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이런 일들을 생략해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이익일까요, 손해일까요?
그런데 최근 이른바 '선 비준' 주장에 새로운 버전이 나왔습니다.
"버락 오바마와 힐리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미국 새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한·미 FTA의 인준이 더욱 어려워질 것…올해 안에 한·미 양국 의회로부터 FTA 비준안을 승인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전경련, <미 민주당 주요 대선후보의 통상정책과 한미 관계 보고서>, 5월 8일)
정부와 일부 언론은 새로운 버전의 주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이상한 일은 새로운 버전에서도 미국 의회의 한미FTA 비준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버전에 의하면 한미FTA는 양국 의회에서 '올해 내'에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의회는 올해 대선 일정 때문에 8월 2일부터 휴회에 들어갑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8월 2일 이전 FTA비준동의안이 상정되면 무역촉진권한법(TPA)의 적용을 받아 90일 회기 이내에 수정안 없이 찬성 또는 반대만 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미국 의회 입장에서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미국 의회의 승인 가능성이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 정부는 '선 비준론'을 통해 쇠고기 개방 등 미국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줬습니다. 협정에도 없는 "30개월 미만만 수입하겠다"는 우리 대통령의 말을 두고 미 무역대표부(USTR)가 반발하고 있다는 기사가 외신을 타고 전해옵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왜 넘겨주고 신뢰의 상실이라는 위기를 자초할까요? 우리가 먼저 선 비준하면 미국 의회가 꼭 해주겠다고 약속한 적 있나요? 미국 쪽 협상 담당자들은 그런 보증을 우리 의회에 해줄 수 있나요? 이래저래 선 비준론의 허구성은 분명해집니다. 그런데도 선 비준을 통해 미국에 압력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당이 아닌, 야당의 정치인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일까요? 저 스스로도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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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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