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통이 된 네팔의 학교 선생님들

[카트만두 소식②] 네팔 교사들, 큰돈 내고 공부하러 오다

등록 2008.05.26 16:21수정 2008.05.26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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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생수통이 된 선생님들 워크숍에 참여한 네팔 교사들이 '관찰과 표현'을 주제로 거리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네팔에서 교사들의 '거리수업'은 이례적인 일이다.

생수통이 된 선생님들 워크숍에 참여한 네팔 교사들이 '관찰과 표현'을 주제로 거리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보수적인 네팔에서 교사들의 '거리수업'은 이례적인 일이다. ⓒ 이주빈


200루피라는 큰돈 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네팔 교사들

우기를 맞은 네팔 카트만두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더없이 맑다가 비가 내리곤 했다. 내심 날씨가 흐리면 그 학교를 찾아가기가 더 힘들 것이란 생각에 은근히 걱정이 깊었다. 다행히 24일 오후(네팔 현지시각) 카트만두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하지만 택시 기사조차 마을 주민에게 위치를 물어볼 정도로 그 학교를 찾아가긴 힘들었다. 하긴 네팔에만 1000개가 넘는 학교가 있으니 택시 기사인들 무슨 재주로 그 위치를 다 알 수 있겠는가. 또 많은 학교들이 한국으로 치면 주택 건물 같은 곳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한국처럼 학교가 그 지역의 '랜드 마크' 기능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까닭은 재정 형편이 열악한 네팔 정부가 국민 교육에 대한 책임을 민간에 전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설립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하고 있어서 교육 여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들도 너나없이 학교를 세우고 있다. 특히 그중 일부는 학교를 교육 목적이 아닌 돈 벌이 수단으로 설립하기도 한다.

힘들게 도착한 학교에선 한 워크숍이 오전 9시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네팔 NGO 품(대표 장부 셰르파, 심한기)과 SFN(Schools Forum Nepal, 대표 라비 라이 샤히)이 공동으로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이 워크숍엔 네팔 교사 41명이 참여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모두 200루피라는 매우 큰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워크숍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외국의 정부와 비정부기구 등의 다양한 원조에 익숙한 네팔에서 자기 돈을 내고 워크숍에 참가한다는 것은 깜짝 놀랄 일이다.

특히 네팔 교사의 평균 한 달 급여가 6700루피에 불과하고, 월세가 3000루피니 200루피는 한국 교사가 참가비 10만원을 내고 워크숍에 참가한 것과 같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그 많은 돈을 내면서까지 '가르치지 않고 배우러' 온 것일까.


이날 워크숍은 '관찰과 표현', '이미지로 말하기' 등 두 분야로 진행됐다. 두 분반으로 나뉜 네팔 교사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새로운 수업내용과 방식'을 배우기 위해 학생들 못지않은 학구열을 발휘했다. 

3년 전 1차 워크숍부터 내용이 좋아서 참여하고 있다는 비살 카르키는 "수업하기 전엔 애들의 학습 분위기를 환기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만족해 했다. 그는 "워크숍 내용 중에서 '우뇌를 사용하라'는 말이 제일 흥미롭게 다가왔다"며 "아이들에게 항상 새로운 학습법을 제시하는 좋은 교사이고 싶다"고 말했다.


a  워크숍 참가 소감을 밝히고 있는 한 교사. 이들은 200루피라는 큰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 참가 소감을 밝히고 있는 한 교사. 이들은 200루피라는 큰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워크숍에 참여했다. ⓒ 이주빈



a  워크숍에 참여한 네팔 교사들이 동료교사의 발표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워크숍에 참여한 네팔 교사들이 동료교사의 발표를 듣고 박수를 치고 있다. ⓒ 이주빈



"네팔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것"

영어를 가르친다는 브라티바는 자신이 재구성한 동화를 이야기해주면서 "아이들을 무조건 가르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배웠다"면서 밝게 웃었다.

비라이 마하란은 "아이들을 새롭게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됐다"면서 "다른 교사들도 이 워크숍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장의 추천으로 워크숍에 참가했다는 버비 뜨란은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 그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며 "이 새로운 방법을 아이들과 함께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관찰과 표현 분야를 지도한 김월식 계원조형예술대 교수는 "너무 즐겁게 수업에 임해 줘서 고맙다"고 네팔 교사들에게 인사했다. 김 교수는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경험을 나누는 것"이라며 "여러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부끄러운 경험'"이라고 강조하며 변화를 당부했다.

이미지로 말하기 분야를 지도한 사진작가 임지은씨는 "아무래도 현직 교사들이다보니 교육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처음 접해보는 방식을 열심히 해보는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활발하게 받고 싶었다"며 "하루만 더 할 수 있다면…"하고 아쉬워했다.

3년째 네팔 교사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는 심한기 네팔 엔지오 품 대표는 "네팔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네팔 교사들이) 돈 안 받고 돈 내고 자발적으로 워크숍에 참여하게 만든 것만도 큰 변화"라며 "교육분야 교류사업은 퍼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이번엔 엔지오 품은 교육내용을 준비하고, SFN은 교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역할을 했는데 완벽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심 대표는 "갈수록 네팔 교사들이 요구하는 재연수 프로그램 내용은 높아져 가는데 이를 담아내기엔 우리 같은 엔지오는 역부족"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네팔 교육에 대한 지원이 학교 지어주기, 도서관 지어주기 등 하드웨어에 집중되고 있을 때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지원과 교류에 나선 엔지오. 이들의 그간의 노력이 더 값진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여주기 식' 지원보다는 '알맹이를 소통'하는 교류가 필요하지 않을까.

a  네팔 엔지오 품의 심한기 대표(가운데)와 SFN 관계자들이 참가 교사들의 소감을 듣고 있다.

네팔 엔지오 품의 심한기 대표(가운데)와 SFN 관계자들이 참가 교사들의 소감을 듣고 있다. ⓒ 이주빈


#네팔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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