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의 독사

산케이신문 구로다 서울지국장의 칼럼을 읽고

등록 2008.05.28 18:54수정 2008.05.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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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毒蛇)의 독은 '절대 악' 같은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단백질이다. 즉 인간과는 맞지 않아 간이 항거하고 봉기하며, 이때 활성산소가 유독성이 되어 자기 세포를 파괴한다.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는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 독이 되는 독설과 약이 되는 독설 양쪽 모두로 유명하다.

 

최근에 구로다의 독사(doxa) 몇 구절이 그의 칼럼 '올림픽으로 변화, 서울올림픽으로 바뀐 질서(五輪で変化、前へならえ 韓国、ソウル五輪で変わった秩序)'(5월 19일치)에서 눈에 띈다. <서울신문> 주미옥 기자에 의해 그 논지가 소개되었다.(5월 20일치, 이하 인용은 <서울신문>의 것이다.)

 

그는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한국에서 '일본침몰' 등 지진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가 인기 있는 것은 지진에 흔들리는 일본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쾌감을 느끼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먼저, 이질적인 단백질이 아니라 우리의 해독(解毒) 능력에 대한 통탄을 참을 수가 없다. 교통사고, 그 중에서도 사망사고 피해자를 졸지에, 그것도 가학증의 전력이 있는 가해자처럼 둔갑시키는 이런 해괴한 글쓰기를 통박하는 문필의 기동타격조차 찾아볼 수 없다.

 

구로다의 이해를 의심한다. 또한 그에게 입력된 경험 자료가 과연 어디서 난 것인가를 의심한다. 혹시 일본인이 죄다 '왜놈' 되고, 중국인이 죄다 '떼놈' 되는 난장 술판 내지 망동하는 인터넷 '악플'에서? 그 시장의 우상으로부터? 혹은 영화 <넘버쓰리>? 독도와 다케시마를 그런 식으로 다투는 조폭 아니면 야쿠자?

 

구로다는 또 썼다. "이번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이웃나라인데도 일본만큼은 아니다. (…) 성화봉송과 관련 중국유학생들의 난투극 등 그 위세에 놀라면서도 이번 지진재해를 접한 한국인들은 '중국은 멀었다'라며 어딘가 안도하는 것 같다."

 

희생자 앞에서 묵념하는 일본 구조대에게서 비롯된 비교우위를 암묵적으로 내비치려는 것이라면, 진심으로 훌륭하다, 존경스럽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런데 구로다에 따르면 얘기는 이렇게 된다. 지진 피해국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중국은 동병상련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쾌감’ 또는 ‘안도’를 느낀다.

 

솔직히 한국인도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자부하기는 쑥스럽다. 그러나 일본인은 더더욱 쓰촨의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당신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구조대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당신들 국가수반이 토의종군이라도 해야 한다.

 

이웃나라의 참화를 목전에 둔 마당에 간토 대지진, 난징 대학살 이야기는 차마 못 하겠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해야겠다. 절대로 선대(先代)처럼 닥치는 대로 물어서 이종 단백질을 주사하지 말라.

 

구로다, 당신이나 우리나 불행하게도 아직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이사야 11:8)는 세상에 살고 있지 못하다.

덧붙이는 글 | 네이버의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한겨레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2008.05.28 18:54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네이버의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한겨레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구로다가쓰히로 #DOXA #黑田勝弘のドク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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