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36) 아비투스

[우리 말에 마음쓰기 330] ‘밑뿌리’와 ‘정체성’과 ‘아이덴티티’

등록 2008.06.05 11:45수정 2008.06.0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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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이덴티티(identity)

 

.. “일본 문화, 일본 사회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와 같은 ‘아이덴티티’를 묻는 문제가 절실하였습니다 ..  《아오키 다모쓰/최경국 옮김-일본 문화론의 변용》(소화,1997) 12쪽

 

 “일본 사회의 특징(特徵)은 어떤 것인가?”는 “일본 사회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나 “일본 사회 특징은 어떠한가?”나 “일본 사회는 어떻다고 할 수 있는가?”로 고칩니다. ‘절실(切實)하였습니다’는 ‘아주 컸습니다’나 ‘뼈저리게 다가왔습니다’로 고쳐 봅니다.

 

 ┌ 아이덴티티(identity) = 자기 동일성. ‘일체감’, ‘정체성’으로 순화

 │

 ├ ‘아이덴티티’를 묻는

 │→ ‘정체성’을 묻는

 │→ ‘나란 누구인가’를 묻는

 │→ ‘일본사람이란 누구인가’를 묻는

 │→ ‘무엇이 일본인가’를 묻는

 └ …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아이덴티티’라는 말도 올라 있습니다. 그만큼 두루 쓰이니까 실린다고 하겠습니다. 지식인들이 흔히 즐겨쓰기 때문에 실릴 수 있고, 쓰임새가 지식인 울타리도 넘어섰기 때문에 실린다고 하겠습니다.

 

 ┌ 자기 뿌리 / 자기 바탕

 └ 뿌리 / 바탕 / 밑뿌리 / 밑바탕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쯤, 이 ‘아이덴티티’라는 미국말을 학교에서 배웠지 싶습니다. 학교에는 영어를 따로 가르치니 이런 말도 배울 테지요. 그런데 이 말 ‘아이덴티티’는 학교 영어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더군요.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고 세상을 더 널리 부대끼며 알아가는 가운데, 사회 구석구석에서 지식인들이 꽤나 즐겨쓰는 말임을 느낍니다.

 

 그 많은 지식인들은 ‘정체성’을 가리키는 ‘아이덴티티’라는 미국말을 써야만 자기 정체성을 세울 수 있는지, 가꿀 수 있는는지, 키울 수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지, 보듬을 수 있는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읍디다만, 지금도 쓰이고 앞으로도 쓰일 테고, 또 또 쓰일 테고 …….

 

ㄴ. 아비투스(habitus)

 

.. 생산-유통-소비의 장(場)을 관통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아비투스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일 년 365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한다고 해서 문화적 기풍이 진작되는 것은 아니다 ..  《임지현-이념의 속살》(삼인,2001) 410쪽

 

 “생산-유통-소비의 장(場)을 관통(貫通)하고 있는”은 “생산-유통-소비가 이루어지는 삶터를 꿰뚫는”쯤으로 다듬을 수 있을까요. ‘근본적(根本的)으로’는 ‘뿌리부터’나 ‘속속들이’로 손봅니다. “일(一) 년(年) 365일”은 “한 해 365일”로 손질하고, “문화적 기풍(氣風)이 진작(振作)되는”은 “문화 바람이 일지는”으로 손질해 줍니다.

 

[아비투스(habitus)] 부르디외의 연구를 특징짓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지배구조 혹은 계급구조가 어떻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지, 피지배계급 혹은 노동계급이 어떻게 그들의 지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설명을 문화에 관한 분석을 중심으로 제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며 부르디외는 객관적인 계급구조와 행위자들의 취향 사이의 밀접한 관련을 발견해 낸다. 이 부분에서 부르디외의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구조와 행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보다는 그 사이를 매개하는 구조로서 ‘아비투스(habitus)’라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여 기존의 이론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구조와 행위의 딜레마를 넘어서려고 시도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부르디외는 어떻게 문화가 계급과 지위의 차이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문제는 ‘아비투스’. 요사이 더러 듣는 말 가운데 하나인데, 국어사전에는 없고, 인터넷 찾아보기를 해서 겨우겨우 알아봅니다. 네이버 지식인이라는 곳을 보니, 퍽 길게 ‘아비투스’ 풀이를 해 줍니다. 그러나, 이 긴 풀이를 읽어도,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아도 머리가 어질어질할 뿐, 어떤 실마리를 잡지는 못하겠어요. 그저 ‘매개하는 구조’ 한 마디를 헤아리면서 ‘징검다리’나 ‘이음고리’를 가리킬 수도 있겠다 싶을 뿐.

 

 문득, 이 보기글에서 ‘아비투스’가 아닌 ‘아우라’라는 말을 썼다고 해도, 또는 ‘이데아’라든지 ‘이데올로기’라는 말을 썼다고 해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 우리 문화 뼈대를 뿌리부터 바꿔야 합니다

 ├ 우리 문화 얼거리를 속속들이 고쳐야 합니다

 ├ 우리 문화를 바탕부터 확 바로잡아야 합니다

 ├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생각이나 눈길을 추슬러야 합니다

 └ …

 

 아예 새롭게 써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 보기글을 쓴 분 마음이나 느낌을 나타내기 어렵겠지요. 보기글을 쓴 그분이 손수 자기 느낌이나 생각을 다른 말로 펼쳐 주지 않는다면.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6.05 11:45ⓒ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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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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