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의 출정식호세 마르티 동상이 있는 혁명기념탑에서 조촐하게 사진 한 장으로 출정식을 대신했다.
문종성
구절양장처럼 복잡하고 시끄러운 아바나 시내를 한 시간여 동안 요리조리 빠져나와 혁명광장 앞에 서서 우리는 출정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계는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열리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다가가서 열어야 한다!" 호세 마르티가 고국의 독립을 위해 열정을 다 바쳤던 때 한 이 장엄한 한 마디는 지금 나의 가슴에 또다른 의미로 불덩이처럼 부딪힌다.
쿠바의 속살이 보고 싶다면서 가만히 기다리다 남의 여행기나 인터넷에서 가져다주는 정보로 만족을 채우려 한다면 어찌 타는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간다. 아니, 우리가 간다. 쿠바 민중들의 마음의 문을 열러!
도마 위의 고기가 칼을 무서워하랴? 한 번 마음먹고 모질게 따라나선 준호는 생각보다 아주 좋은 페이스를 보이며 뒤처지지 않고 따라오고 있었다.
격렬히 출렁대는 건 카리브 해의 파도뿐이 아니었다. 그의 배도 만만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에서도 출렁이는 열의. 첫 라이딩에 짐을 잔뜩 실은 마운틴 타이어임에도 불구하고 3시간여 만에 30㎞ 지점까지 왔다는 건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성인이 되어 시도하는 첫 격렬한 운동이었고, 게다가 그의 몸무게를 감안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글거리는 화마가 우리의 정신을 흐물흐물 녹여버리는 오후가 되자 준호의 페이스는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삐질삐질 흐르던 땀이 폭포수가 되고 활짝 웃던 얼굴도 어느 새 찰흙처럼 굳어 있었다. 괜히 왔나 싶은 표정으로 곧 죽을 것 같던 준호는 스스로 겸연쩍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파이팅" 을 외친다.
안장 위에 오른지 단 몇 시간 만에 그의 뽀얗던 살결은 붉게 물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더 짙은 갈색으로 변모해 갔다.
"형, 이 언덕 높이가 대체 몇 미터나 돼요? 왜 이리 높은 거예요? 우리 지금 엄청나게 높게 올라왔죠?""흠, 10m도 안 돼요. 옆을 봐요. 바다가 우리랑 거의 수평이잖아요.""오, 맙소사!"낮은 언덕을 넘을 때조차도 쏟아내는 준호의 거친 숨소리가 내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번 여행 목표는 소박해요, 살을 빼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