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석수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유성호
경호(16·가명)는 지난해 전주소년원에 갇혔다. 또래 아이들을 괴롭히고 '삥뜯기(돈을 빼앗기)'한 혐의 때문이다. 안산 단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계의 한 형사는 "경호가 친구들의 돈을 빼앗는 것뿐만 아니라 몰래 차문을 열고 동전 등을 훔치는 이른 바 '차털이'까지 해서 교정시설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아버지의 당부도 한몫 했다.
안산 선부동 아이인 경호는 4년 전 엄마와 이혼한 아빠·동생과 살고 있었다. 일용직 잡역으로 힘겹게 노동하지만 늘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아빠와 살던 엄마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아빠와 결별을 선언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도벽으로 안산 단원경찰서 선부지구대에 불려다닌 경호. 그동안 아버지가 납부한 벌금만도 셀 수 없다. 지난해 겨울 또 다시 절도 혐의로 형사입건 됐을 당시에는 아버지가 "말썽의 종지부를 찍자"며 차라리 구속시키라고 경찰에 부탁했다. 자식을 위한 '벼랑끝 전술'이었는지 모른다.
경호도 처음에는 학교 앞에서 저학년 동생들에게 몇백원 빼앗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 뒤에는 경찰 말대로 차도 털고 자전거도 훔쳤다. 그래봐야 최고로 많이 빼앗은 돈은 고작 1500원. 그런데도 소년원까지 가게 된 것은 반복적으로 같은 사건에 자주 연루됐기 때문이다. 한해 대여섯번씩 경찰서에 잡혀간 경호는 이미 경찰 아저씨들 사이에서 유명인사다.
소년계 형사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영필(16·가명)이도 경호와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고학년 형이 욕하고 인상쓰면 저학년 동생들은 겁에 질려 고사리손에 꼭 쥔 돈을 탈탈 털어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때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종종 학교 안 다니는 친구들과 어울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훔쳤다. 차털이는 물론이고 빈집털이까지 하게 됐다.
연행될 때마다 경찰서에 함께 와 늘 영필이의 선처를 바라던 아버지는 반복되는 자식의 범죄 앞에 "제발 구속만은 말아달라"는 당부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경찰도 워낙 어린 나이인 데다 자칫 인생이 잘못될 수 있어 구속에는 신중을 기한다고 했다. 혼내서 돌려보내고, 잘못 되면 큰일난다고 위협도 해봤지만 번번이 같은 사건에 연루돼 얼굴을 드러낼 때면 "어이쿠, 너 또 왔구나!"하게 된단다.
영필이는 아주 어렸을 때 엄마와 헤어졌다. 아버지와 이혼했기 때문이다. 영필이가 처음 남의 돈을 훔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필이 바로 위에 형이 있지만 다독여도 소용이 없었다. 늘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던 영필이는 자주 가출했고, 집을 나가있을 때마다 후배들을 통해 '돈 심부름'을 시켰다.
친구나 후배들로부터 받은 돈으로는 자장면과 컵라면·사탕·과자·음료수 등을 사먹고 PC방에 가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김형규 안산 단원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형사는 "부모님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고, 청소년기 아이들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 비행의 길로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며 "자식을 소년원으로 보내야 하는 부모 심정이 오죽 하겠냐"고 씁쓸해 했다.
이어 김 형사는 "형사입건된 아이들의 부모가 경찰서에 찾아와 선처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반복적으로 사고치는 애들의 부모는 아예 경찰서에 오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경찰이 알아서 구속하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막말하는 일도 왕왕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40대 중반의 경호 아버지는 거의 매일 아들 면회를 다녀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 형사는 "정신적·육체적 여유가 없는 부모님과 그 밑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소년범죄의 원흉은 양극화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고 긴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는 또 "사교육비 압박 없이 모든 아이들이 무상으로 교육받았으면 좋겠다"며 "적어도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차별 받고, 빈곤문제 때문에 학교에서 상처받아 비행의 길로 빠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컵라면 찜질방 그리고 담배법원으로부터 6개월 보호처분을 받고 서울 영등포의 한 청소년 교호시설에 살았던 성철(18·가명)이는 어릴 때부터 자주 경찰서에 들락거렸다. 부모님이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느라 성철이와 자주 대화하지 못하고 방치한 탓이 큰 듯 했다. 일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온 아버지는 자주 술을 마셨고, 어머니와 말다툼이 잦았다. 성철이의 생활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표명하지 않았다.
성철이는 줄곧 밖에서 생활하며 학교 앞에서 또래 아이들의 돈을 빼앗았다. 그 돈으로 배가 고프면 컵라면을 사먹고, 오락게임도 했으며,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담배도 사 피웠고, 술도 사 마셨다. 가출하게 되면 주로 찜질방에서 잤다. 이 비용은 모두 '빼앗은 돈'으로 충당했다.
성철이와 함께 지냈던 권오택 가톨릭교회 수사는 "개인별로 구체적인 장래 비전을 세우고 설계도 함께 해야 한다"며 "중간에 고비를 잘 넘기지 못하면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하는데 나갔다가 돌아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말했다.
권 수사는 "아이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직업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는 있지만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는 학원 등을 다니면서 공부할 기회가 필요"한데, "정부의 아무런 지원대책이 없다"고 토로했다.
노동부에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위한 제과제빵·요리·중장비·자동차 정비 등의 학원비 지원을 해주고, 또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있다. 하지만 보호처분 뒤의 생계가 막막한 아이들의 전망을 제대로 세워줄 정책당국이 없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또 "부모가 있어도 가정이 아이들의 비전을 세워줄 형편이 못될 때는 사회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며 "구체적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보호처분 뒤에 집으로 보내면 재범에 가담할 위험도 크다"고 걱정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성철이를 들었다. 사회복귀를 위한 제도적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을 방치하면 또 다른 범죄에 가담하거나 희생된다는 것이다.
스물일곱 청년 되기까지 소년원 3번, 교도소 4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