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에 의하여 고발당한 전 정권

이래서야 누가 기록을 남기려 할까?

등록 2008.07.25 11:37수정 2008.07.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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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뉴라이트와 국민의병단에 이어 국가기록원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측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전직 대통령이 분명하고 엄중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 마땅히 법에 의하여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성역이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과연 잘못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그 잘못을 했다면 얼마나 중대한 잘못은 했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전례

 

해방 후 60년이 넘는 동안 통치자들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기록을 남길 경우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통치자들이 스스로 도덕적 결합을 숨기고 싶은 욕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수 많은 정권이 지나가는 동안 남겨진 기록이라곤 겨우 몇십만 건에 불과하다. 그 내용도 대부분 크게 문제가 안될 것들만 세심하게 분류하여 남겼기 때문에 사료적 가치도 없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취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동안 기록을 남기는 데 신경을 쓴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임기를 마치거나 청와대를 떠나면서 기록물을 모두 파기하였다. 자신이 남긴 기록들로 인하여 스스로 곤란한 일을 겪을 가능성은 항상 있는 것이다. 정권교체기에 청와대는 기록물을 태워 없애는 일이 하나의 큰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었다. 후 일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그렇게 모두 없어졌다. 아무런 시비가 발생하지 않을 것들만 국가기록원에 남겨졌다.

 

후진적 정치구조상의 문제로 후임자의 정치적 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싶은 욕구도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대한민국은 소중한 역사적 기록들을 상실하였다. 기록물이 누적되어 후일에 소중한 사료가 되고 또 노하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언젠가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

 

후일을 위해 남겨야할 기록을 파기하여 없애는 일은 본인이 살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하더라도 대단히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역사에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또 본인에게 꼭 필요한 기록은 아무도 몰래 유출하였을 것이다. 누구도 그러한 유출에 대하여 문제삼지 않았고, 한번도 조사를 하거나 수사를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록물 관리

 

참여정부가 출범하고 국정에 참고할만한 기록물이 없어서 대통령은 답답함을 느겼다고 한다. 감춰야할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참고할만한 기록들은 남겨서 후임이 볼 수 있도록 만들 필요성이 절실했다. 문제는 정치보복이 두려워서 아무도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마음놓고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전직의 노하우를 물려받지 못하여 백지상태로 시작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e-지원 시스템을 스스로 기획하여 기록물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법을 손질하여 현직이 정치보복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장치도 마련하였다.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가 없는 기록은 모두 현직 대통령도 보고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록물을 특정기간동안 열람할 수 없는 것과 열람이 가능한 것으로 분류하여 국가기록원에 넘기도록 하였다. 전직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중 생성된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퇴임전 미리 준비를 많이 했다. 기록물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정리하여 국가기록원에 넘겼다. 그 양도 방대한 것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남긴 것을 모두 합해도 참여정부가 남긴 기록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이다. 전산화된 데이타여서 별도의 저장장치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국가기록원에 넘겨주었다. 본래의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는 법에 따라 폐기했다고 알려졌다.

 

물론 법적으로 보장된 자신의 열람편의를 위해 복사본을 만들어서 봉하마을로 가져갔다. 국가기록원이 전용선등을 통해 열람의 편의를 제공하면 그 복사본조차 반납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모들에 대한 고발을 운운하며 압박하는 청와대와 국가기록원 측에 굴복하여 그 복사본을 반납하였다. 하지만 결국 고발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결국 자신이 만든 시스템과 기록물로 인하여 현 정권에게 고초를 겪게 된 것이다.

 

청와대와 국가기록원의 졸렬함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는 전 정권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수위 시절부터 필요한 자료를 챙겨서 넘겨받고 적절히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예를 들면 인사검증자료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참여정부가 검증해둔 인사중에는 쓸 일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취임후 화면보호기 로그인을 못해서 전정권이 컴퓨터를 고장내고 자료를 모두 없앴다고 투덜거린 일은 널리 알려진 것이다. 대통령이 스스로 업무를 하려고 해도 아무 자료가 없다며 투덜댔다. 전정권이 실패한 정권이어서 아무것도 참고할 것이 없다는 식의 교만한 태도가 낳은 희극이다.

 

검증 안 된 인사로 인하여 고소영 내각이니 강부자 청와대니 S라인이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협정으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였다. 한반도 대운하, 몰입교육,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이 대부분 국민저항에 의하여 주춤거리고 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라는 인식이 국민속에 확산되어 나갔다.

 

어려움에 처한 정권이 갑자기 봉하마을에 대한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혹시 법적인 책임을 지는 일을 피하려고 익명으로 공격을 시작하였다. 청와대 관계자 또는 청와대 주요관계자라는 익명으로 지속적으로 전 정권을 공격하였다. 원본을 무단으로 유출하였다느니, 유령회사를 동원했다느니, 국가기밀이 해킹이나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느니 하면서 언론에 흘렸다. 정권을 편드는 일부 신문은 그것을 받아서 열심히 의혹을 부풀렸다.

 

원본은 국가기록원에 모두 가 있다. 유령회사를 동원했다는 말도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봉하마을에 있는 복사본은 온라인에 연결된 것이 아니어서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없었다. 전직 대통령 사저가 외부유출에 취약하다면 국가기록원도 정도의 차이일 뿐 유출이나 해킹의 위험에 안전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기록원을 압박하여 검찰고발 운운하는 협박까지 하였다. 참모들의 무고한 고초를 원하지 않는 노 전 대통령이 결국 반환을 결정하였다. 그런데 국가기록원이 이번에는 사유재산인 서버까지 모두 반환하라고 주장하여 협의가 타결되지 못하였다. 7월 18일이라는 국가기록원이 통첩한 기일을 지키기 어려웠다. 기일안에 반환이 안되면 그 또한 공격의 빌미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봉하마을 측이 하드디스크를 봉인하여 스스로 국가기록원에 반환을 강행하였다. 그런데 이제는 또 반환과정에서의 보안이나 안정성을 들어 공격을 하였다. 경찰의 경호를 받아서 국가기록원에 가져갔음에도 대단히 위험한 짓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마녀재판이 아닐 수 없다.

 

또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중 생산된 기록물을 열람하려는 경우 사본을 만들 수 있도록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적어 놓았었다. 그러니 전직 대통령의 사본보유가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어느 새 삭제하고 이제는 직원의 실수로 잘못 게시된 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사본을 만드는 근거를 없애서라도 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데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러다 결국 뉴라이트, 국민의병단의 고발에 이어 국가기록원도 검찰고발을 감행하였다. 일련의 과정이 대단히 의심스럽다. 자신들의 무능을 전 정권의 비협조로 몰아가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다.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자 전 정권의 도덕성에 흡집을 내서 비교열위를 극복하려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힘없는 전 정권과 대립각을 세워서 지지층의 결집을 노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반노의 기치로 집권한 추억을 떠 올리며 반노로 어려운 난국을 비껴가려는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국민들 사이에 만연하였던 반노정서를 다시 일깨워 정권의 추락한 신뢰를 감추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과거 정권들의 자료파기나 유출가능성은 훨씬 더 높다. 또 의도가 심각히 부당하다. 동교동도, 상도동도, 연희동도 모두 수사대상에 올려서 압수수색하고 색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단죄를 하려 든다면 모두가 죄인이다. 또 기록물을 많이 남기고 관행화 시키려는 노력을 오히려 높이 평가받아야할 지난 정권이 지금 역으로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의 치졸함이 눈에 보인다.

 

누가 기록을 남기려 할 것인가?

 

5년의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가는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의 일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기억할 뿐 아니라 후임자가 자신에게 가할 압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 보복을 당할 두려움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아마도 모든 자료를 철저히 파기하여 근거를 없애려 할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안될 자료들만 일부 골라서 국가기록원에 이관하고 형식적인 조치만 취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한 일을 기억한다면 기록을 적절히 보존할 수가 없다.

 

이미 임기말에 청와대가 서류 태우는 연기로 가득했던 전례가 다시 부활할 수 밖에 없다. 아무도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기록을 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반복하지만 그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인간의 역사는 진화해왔다. 기록을 남기고 노하우를 학습하며 세대를 지날수록 발전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특성이다. 청와대만 매번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매우 원시적이다. IT최강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앞으로 대통령의 통치기록이나 사료가 누적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서 학습하지 못하며, 매번 서툰 짓을 반복하는 일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일은 전적으로 현 정권의 책임이 될 것이다. 잠시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익을 해하는 일을 저질러서야 되겠는가?

 

법이 보장하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에 대한 조치는 국가기록원이나 청와대나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 결국 성남시에 있는 국가기록원에 와서 눈으로 보고 기억하여 돌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열람의 방법이다. 자신의 통치기록을 볼 수 없다면 아마도 몰래 사본을 만들어 가지고 나가려는 유인이 생긴다. 열람권이 제약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지금 청와대와 국가기록원이 역사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일이다.

 

국민은 모두가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이 일이 누구에 의하여 무슨 의도로 저질러진 일인지를 아무도 잊지않을 것이다. 국민은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고, 앞으로의 진행과 사건전말에 주목할 것이다. 누가 치졸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누가 역사에 당당하고 명분있는 일을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심판은 국민이다. 사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눈이 중요하고, 국민의 판단이 중요하다. 역사적 파급효과가 중요하다. 현정권은 국민과 역사를 좀 더 두려워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2008.07.25 11:3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기록유출 #정치보복 #열람권 보장 #기록물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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