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야, 너는 국제중 못 보내겠구나"

사교육비로 허리 휘는 40대 가장, 공정택 교육감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8.08.23 14:00수정 2008.08.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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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택 서울교육감님, 대한민국 서울의 교육을 총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세 자녀를 둔 40대 후반의 가장이며, 노부모님까지 포함하여 7인 가족이 한 울타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미 첫째와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3학년이니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고 있는 국제중과는 무관하지만 막내가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라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국제중 관련 보도를 모른 척 할 수만은 없더군요.

서울 송파지역에 거주하는 7인 가족 한 달 생계비가 얼마인지, 혹시 아시나요? 통계청에서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376만2천원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무능해서인지 몰라도 저희 가족은 7명임에도 불구하고 최소 비용으로 한 달 한 달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최소한의 사교육만 받고 있지만, 여기에만도 제 월급의 반 이상이 들어갑니다. 빚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지요. 

월급의 반 이상이 사교육비에 들어갑니다

a  국제중학교 설립 신청서를 낼 예정인 학교법인 대원학원의 웹사이트.

국제중학교 설립 신청서를 낼 예정인 학교법인 대원학원의 웹사이트. ⓒ 대원학원


제도교육이 제대로 굴러간다면 제 월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교육비는 우리 가족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담당해야할 제도교육의 붕괴로 발생한 피해를 고스란히 제가 떠안은 셈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서울시교육청에서 심혈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국제중을 만들고, 수우미양가식으로 아이들의 서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제도교육을 살리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대학갈 수 있고, 자기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교육청이 할 일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실추된 교사들의 명예도 회복될 것이며, 사교육비로 인해 힘들어 하는 부모들의 짐도 덜어질 것이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힘겨워하는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교육환경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19일 "사교육 없이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국제중 입학전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공정택 교육감을 비롯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들이 전부 귀를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기에는 너무 시간 낭비고, 영어에 대한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국제중 전형시에는 "영어면접이나 영어인증시험과 각종 사설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배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업은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 영어몰입교육을 한다죠? 그렇다면 국제중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는 당연히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아이들 영어회화를 마스터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도 이미 어학연수다 영어학원이다 난린데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학교에 아이들을 입학 시킬 부모가 영어 사교육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이로 인해 영어 사교육 시장은 부자동네를 중심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팽창할 것이고, 어학연수도 봇물을 이룰 것입니다. 초등학교부터 입시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아이가 영어천재라고 해도 국제중 만만치 않겠네

4학년 막내가 국제중에 들어갈 수 있는 2011년을 기점으로 국제중에 입학한다는 전제 하에 두 가지 극단적인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는, 막내가 똘똘해서 영어학원에 안 다니고도 영어회화를 마스터하고 국제중에 합격했을 경우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분기당 수업료 120만원을 지키겠다고 하셨는데, 아이들 교육에 수업료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겠죠? 일반적인 국제학교 수준이라고 볼 때 최소한 한 달에 수십~100만원 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맞벌이를 하며 자녀가 1명이라면 해볼 만 할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중3, 고2 자녀가 있고 그들은 2011년이면 고등학교 3학년과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일 것입니다. 고3 학원비와 대학등록금, 국제중학교 수업료를 감당하려면 지금 수입의 몇 배를 벌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막내가 똘똘해서 국제중에 합격을 한다고 해도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부자들만의 귀족학교가 될 여지가 농후한 것입니다.

둘째는, 부모의 욕심으로 막내를 국제중에 입학시키려고 할 경우입니다.

먼저 국제중에선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몰입교육을 하니 입학 전에 영어회화를 마스터하게 해야 합니다. 어학연수나 영어학원을 통해 영어 교육에 집중할 겁니다. 거기에다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경력사항을 한 줄이라도 더 첨부하기 위해서 각종 경시대회가 열릴 때마다 참여를 할 것입니다.

교장의 추천을 받기 위해서는 불법이겠지만 약간의 돈봉투를 준비할지도 모릅니다. 돈봉투를 건네는 것이 불편하다면, 교장과 친해지기 위해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선물공세 혹은 식사대접, 기부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결국 국제중에 입학을 시키고 싶어도 능력이 안 되는 관계로 아이에게 국제중에 가지 말라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또 교장의 추천과 구술면접, 생활기록부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하는데 교장 추천의 공정성을 기하려면 내신성적이 필요할 것이고, 내신 사교육 열풍이 몰아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내신을 위해서 사교육에 매달리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교육 없이도 입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을 하다니, 답답할 뿐입니다.

초등학생들까지 입시지옥으로 내몰아야 합니까

a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 유성호

결국 국제중은 귀족학교화 될 수밖에 없으며, 초등학생들까지도 입시경쟁의 지옥으로 몰아넣는 반교육적인 행태입니다. 그걸 서울시교육청에서 발 벗고 앞장서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공정택 교육감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곧 정책이 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서울시의 교육이 암울합니다. 그게 권력이고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서민들의 자녀들은 꿈도 꾸지 못할 학교 만들어놓고, 7.5%의 소외계층 할당을 운운하며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학교인양 선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공정택 교육감님,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교육을 살리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국제중 같은 것 만들어서 아이들과 부모들 힘들게 하지 말고,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세우는 방법이 무엇일까'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이 무엇일까' 골몰하십시오. 돈 있는 사람들만 행복한 교육환경을 만들지 마시고, 돈 없는 사람들까지도 공평하게 경주할 수 있는 교육풍토를 만들어 달라는 말입니다.

부끄럽지 않게 땀 흘리며 돈을 벌고, 검소하게 살지만 사교육비로 인해 허리가 휠 정도로 휘청거리는, 국제중학교에 아이들을 입학시키지도 못할 무능한 서울시 송파구의 40대 후반의 가장이 올립니다.
#국제중 #사교육 #공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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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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