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대 청소 아줌마들은 왜 쫓겨났나
"노조 만들었더니 구인광고로 해고통지"

학교 "용역업체와의 문제" 소극적 대응... 학생 6500명 '아줌마 지지' 선언

등록 2008.09.10 10:09수정 2008.09.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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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9일 오전 성신여대 행정관에서 이 학교에서 쫓겨난 청소부 아줌마들이 깔개로 깔고 앉아 농성을 13일째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9일 오전 성신여대 행정관에서 이 학교에서 쫓겨난 청소부 아줌마들이 깔개로 깔고 앉아 농성을 13일째 이어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뼈 빠지게 일한 결과가 구인광고로 해고하는 거라니?'

9일 오전 서울 성신여대에서 만난 청소부 아줌마들이 걸친 몸자보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이들의 억울함을 설명하는 데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아줌마들은 기자에게 "문자로 해고해도 기가 막힐 텐데 구인광고로 해고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50~60대인 아줌마들은 13일째 학교 행정관의 2~3층 복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곳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무표정한 교직원들이 복도에서 아줌마들을 피해 지나칠 때, 아줌마들은 음식을 해먹고, 씻고, 밤엔 바닥에 깔개를 깔고 눕는다.

이날 아줌마들은 학교 보건소에서 파스를 얻어와 서로의 등에 붙였다. 아줌마들은 "이 나이에 바닥에서 자니, 여기 아프고 저기 아프고…"라며 팔다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 터, 일자리 걱정에다 추석 걱정에 시름이 깊다.

아줌마들은 모든 게 잘 해결돼, 집에서 추석을 보내길 바라지만, 학교 쪽의 반응은 시원찮다. 아줌마들은 "일주일 동안 집에 몇 번 못 들어갔다, 집에 밥도 못해주는데, 제사상은 차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한다. 과연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학교 "용역업체와의 관계... 학교 앞 데모로 이미지 실추"

a  청소부 아줌마들이 9일 오후 성신여대 행정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청소부 아줌마들이 9일 오후 성신여대 행정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아줌마들이 학교 행정관 복도에서 쪽잠을 자게 된 건 지난달 28일부터다. "그 전날 너무나도 억울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아줌마들은 말한다. 청소부 아줌마 60명을 비롯해 모두 65명이 일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도 구인광고를 통해서다.


나종례(60)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성신여대분회장은 "27일 우연히 '벼룩시장'을 통해 용역업체가 성신여대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를 봤다, 너무나도 황당했다"고 밝혔다.

이튿날 새벽 아줌마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 위해 행정관으로 몰려갔다. 학교는 행정관의 문을 닫았지만, 몸싸움 끝에 들어가 농성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용역업체 소속인 아줌마들은 그동안 몇 년에 한 번씩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고용이 보장됐다. 최대 20년, 보통 10년씩 일한 아줌마들이 갑작스레 쫓겨난 이유는 뭘까?

나 분회장은 "작년 9월 우리가 노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은순(58)씨는 "너무 부당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라고 소리쳤다.

이에 대해 학교는 "하청업체인 용역회사와 노조와의 관계"라며 발을 뺐다. 성신여대 총무처 관계자는 "아줌마들과 우리는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지만, 학교 앞에서 데모를 해 이미지가 떨어지게 됐다"면서도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역업체의 박아무개 상무이사는 "우리 회사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 했으나, 노조 쪽은 100% 고용승계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새로 뽑게 됐다"고 밝혔다.

한달 월급 50만원... 노조 만들고 72만원 받았지만 해고통지

용역업체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학교는 용역업체와 계약할 때 왜 아줌마들의 고용 승계를 보장토록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상선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부지부장은 "작년과 올해 달라진 건 아줌마들이 노조에 가입한 것뿐이다, 아줌마들이 해고된 건 노조활동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줌마들이 노조에 가입한 것은 너무나도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나 분회장은 "어디서 이런 월급을 받는다고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노조 가입 전, 이들이 한 달을 일해 손에 쥔 돈은 61만원. 여긴 8월 말 계약이 종료될 때 받는 50만~60만원의 퇴직금을 빼면 실제로는 한 달에 56만원을 받고 일한 셈이다. 이들에게 최저임금법은 의미가 없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 근무시간도 유명무실했다. 실제로는 1시간 전부터 나와 일해야 했다. 하루 1시간 정도의 급여는 받지 못한 셈이다. 또한 2주에 한번 주말 당직을 서게 되면 받는 돈은 고작 1만원이었다. 그래도 노조 가입 뒤에는 최저임금 이상의 돈을 받았다. 한 달에 72만원이다.

아줌마들이 가장 힘들었던 건 학교가 청소라는 본연의 업무 외에도 잡다한 일을 시켰던 것이다. 잔디 뽑기는 기본이고, 학교 소유의 인근 주택을 청소하는 일도 있었다. 오랜 기간 비어있는 집엔 쓰레기가 가득했고, 아줌마들은 이를 모두 치워야 했다.

그래도 학교 쪽은 큰 소리를 쳤다. 학교는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중간 관리자를 직접 고용했다.

아줌마들의 열악한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자, 회사는 현재 "청소부 아줌마들은 재고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 달 안에 건강검진을 해야한다는 단서조항을 붙였다. 이를 두고 이상선 부지부장은 "50~60대인 아줌마 나이 때에 지병 없는 사람 없다, 건강검진이 무슨 목적이겠느냐"고 지적했다.

추석 생각에 한숨 쉬고, 학생들 보고 힘내고

a  청소부 아줌마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펼침막. 이 학교 9000여명 중 6500여명이 불과 3일만에 청소부 아줌마들을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청소부 아줌마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펼침막. 이 학교 9000여명 중 6500여명이 불과 3일만에 청소부 아줌마들을 지지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현재 아줌마들은 추석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김점분(67)씨는 "학교가 제사도 못 지내게 하고 있는 것"이라며 "1년에 3번 부모님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이번 추석 때는 그걸 못할까봐 맘이 무겁다,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이정자(56)씨도 "사위들도 많이 오고, 손님들도 많이 올 텐데, 준비를 하나도 못하고 있다"며 "추석 전에 끝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김정순(63)씨는 장가가는 아들 걱정이 크다. 그는 "21일 아들 결혼식인데, 아무것도 준비 못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몇몇 학생들이 말동무를 해드리며 아줌마들 곁을 지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이 아줌마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자, 아줌마들을 환하게 웃었다. 이 학교 학생 9000여명 중 6500여명은 단 3일 만에 아줌마들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또한 아줌마들에게 먼저 노조 가입 권유를 한 이들도 바로 학생들이다.

김지은 성신여대 부총학생회장은 "어머님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1년에 한 번씩 해고위험에 시달리고, 학교 쪽으로부터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서 매우 분노했다"며 "학교 구성원인 어머님들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머님과 얘기하면서 울기도 하고, 씩씩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힘이 나기도 했다"며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문제다, 수정이들(성신여대생이 스스로를 부르는 애칭)은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자(58)씨는 "학생회에서 밤낮으로 함께 해, 엄마들 곁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데리고 온다"며 "학생들이 이렇게 도와주는데, 잘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날 오후 아줌마들은 행정관 앞에서 학생, 노동운동가와 함께 문화제를 열고 노래를 불렀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고용보장 되는 날 돌아온단다."
#청소부 아줌마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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