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아프니까 '작계5029'가 필요하다?

[심층진단] 현명한 대응책은 작전계획 격상이 아니라 폐기

등록 2008.09.11 16:09수정 2008.09.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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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국내외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 '개념계획'으로 묶여있는 한미연합사의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관계자도 재추진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김정일 와병설이 나오기 전에도, 이명박 정부의 일부 외교안보 참모들은 그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보수파들도 오래 전부터 5029를 비롯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5029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로 확대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군사계획이다. 5029가 실행에 옮겨지면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전계획으로의 격상 여부나 그 실행에 앞서 5029에 대한 논의 자체만으로도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북한의 불신과 경계심을 자극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추가적 악재가 되고, 한미 양국이 그토록 걱정하는 북한 군부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악수(惡手)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현명한 대응책은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대량살상무기 안전 확보가 5029의 골자

 

a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으로 긴급하게 국방위원회가 소집된 가운데 이상희 국방장관이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으로 긴급하게 국방위원회가 소집된 가운데 이상희 국방장관이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김정일 건강이상설 등으로 긴급하게 국방위원회가 소집된 가운데 이상희 국방장관이 11일 오전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199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5029는 북한 붕괴에 대비하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고 일부 적성국가의 정권교체를 염두에 두고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5029에도 근본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예방전쟁'의 개념을 적용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붕괴'에서 '급변 사태(contingency)'로 바꾼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북한 내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중앙권력의 통제력이 약화돼, 위험 세력의 손으로 넘어가거나 알-카에다와 같은 반미 테러집단에 판매할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김정일 유고나 군부 쿠데타와 같은 급변사태 발생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대량살상무기를 안전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군사계획이 바로 5029의 골자다.

 

그런데 이는 근본적인 문제와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선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급변사태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군사적 개입을 하면 이는 명백한 침공에 해당한다. 또한 북한군과의 교전과 반격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위험도 크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은 교전능력을 갖춘 인원만 700만명에 달한다. 영토의 70% 이상이 산악지형이고 지하시설을 통해 전 국토를 요새화한 군사국가이다. 한미연합군이 아무리 압도적인 무력을 동원하더라도 무력으로 북한을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북아판 그루지야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서 한미연합군이 개입하면, 이는 한미동맹이 북한을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명백한 신호를 국제사회에 보내는 셈이 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을 한-미-일 남방 3각체제에 대한 완충지대로 간주해온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야기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가 중국과 러시아의 개입을 요구하고 나설 수도 있다.

 

내가 만난 미국 국방부 관리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5029가 한미 양국과 국내에서 한참 논란이 되었던 2005년 5월 초 펜타곤에서 만난 고위 관리는 "북한의 불안정 시나리오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타당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이것이 잠재적인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잠재적인 상황이란 한반도에서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관리는 이러한 우려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현명한 안보 대책은 5029를 폐기하는 것

 

 6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6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청와대

6일 오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 청와대

5029에 대해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계념계획이든 작전계획이든, 둘 모두 실행계획이라는 점이다. 앞서 인용한 펜타곤 관리 역시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둘의 차이는 실행 여부가 아니라 구체성의 차이, 즉 계념계획을 작전계획으로 격상하면 부대 편성과 훈련 등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현명한 안보 대책이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하는 것이 아니라 폐기하거나 근본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명한 대책은 무엇일까? 최선은 북한 정권이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붕괴될 수 있는 급변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대규모의 난민 발생과 국지전, 혹은 전면전, 아니 국제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사태 발생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안보 모두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그 대책은 결코 군사적 개입이 되어서는 안된다. 남북관계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인도적 지원을 확대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또한 당국간의 채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주민은 남한에 등을 돌리고 있고, 당국간 관계도 완전히 닫혀 있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어리석은 '북한 급변 사태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한미동맹 강화, 대한민국 생존권 내주는 격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북한과 동맹, 혹은 우호관계에 있는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올인' 정책은 이러한 방향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결국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한미동맹에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현명한 대응책은 나올 수 없다. 미국은 근본적으로 대량살상무기의 확보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전쟁을 막는 것이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외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생존마저 미국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는 가장 무책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급변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한미동맹은 일단 방어에 충실하면 된다. 북한의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걱정된다면, 북한 주변에서 검색과 경계태세를 강화하면 된다. 나머지는 외교의 몫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2008.09.11 16:09ⓒ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김정일 #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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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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