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을 찾는 그녀들을 만나다

[서평] 정이현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등록 2008.09.12 11:54수정 2008.09.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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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달콤한 나의 도시> 표지

<달콤한 나의 도시> 표지 ⓒ 문학과지성사

<달콤한 나의 도시> 표지 ⓒ 문학과지성사

내 나이 25세. 20년 전쯤만 해도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어 있을 나이. 하지만 지금은 취업할 그 날을 기다리며 책과 영어, 입사지원서와 씨름하고 있다. 1년 전 졸업할 때만 해도 곧 취업할 거라고, 어떻게든 모든 게 잘 풀려나갈 거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내 마음엔 불안감만 더해 간다.

 

주위에서는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한다고, 대학원을 간다고 난리다. 졸업생들 모임에 가면 다들 자신의 길을 찾은 것 같아 보이는데 나는 아직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건 아닐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공무원 시험이나 칠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고민을 가진 그녀들을 만났다. 바로 이 책, <달콤한 나의 도시> 속에서.

 

새로움, 쉽지 않음, 그러나 헤쳐나감

 

이 책의 여주인공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뮤지컬 스타가 되고 싶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카데미에 등록한 유희, 갑자기 결혼을 선언한 재인, 옛 애인의 결혼식날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연하남 태오와 연애를 시작한 은수. 그들도 나처럼, 기대감과 불안감을 같이 안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했다.

 

하지만 길은 쉽지 않다. 잘 나가는 의사와 결혼한 재인은 시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남편과의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고, 유희는 오디션을 계속 보지만 코러스도 따내지 못한다.

 

은수와 태오 역시 삶에 대한 서로의 가치관이 달라 헤어지고 만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새로 만나서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 김영수가 알고 보니 이름과 신분을 다 속인 다른 남자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난다. 또 자신과 친분이 있던 직장 상사가 직장을 그만두는데 자신을 데리고 나갈 거란 소문이 사내에 파다하게 퍼진다.

 

새로운 길에서 쉽지 않은 상황을 만난 이 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재인은 이혼을 하고 다시 직장에 다니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유희는 자신이 오디션에 떨어지는 것이 서른 둘이라는 젊지 않은 나이 때문이라 생각하며 성형수술을 받겠다고 한다. 은수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회사를 차린다. 각자가 나름대로 상황을 헤쳐나갈 길을 찾은 것.

 

물론 이혼, 성형수술 그리고 이 책 속에서 나오는 그녀들만의 길찾기 방법에 대해 도덕적으로 분명 따질 수는 있을 것이다. 자신과 사귀는 유부남에게 아이를 포기하라는 유희의 모습이나, 은수가 처음 만난 남자와 실수로 같이 잔 것도, 갑자기 동거를 하게 된 것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질책하고 싶지 않다. 그저 힘들어하는 그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힘들었지요. 나도 알아요. 많이 힘들 거라는 걸…. 그렇게 안아주고 싶었다.

 

공감하다, 그리고 힘을 얻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은 다들 현실적이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누구나 새로운 길을 걷고 싶어하고, 자의든 타의든 용기를 내서 그 길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그 길에서 방황하고 힘들어하며 좌절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고 헤쳐나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며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들이 즐거워할 때는 함께 즐거워하고, 힘들어할 때는 같이 울었다. 마치 나의 삶 같아서. 이상적으로 모든 일을 풀어가는 원더우먼같은 존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그리고 내 옆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또한 그렇기에 다시 힘을 얻는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내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분명 빛이 보일 거라고. 여전히 나는 길을 찾고 있는 작은 존재이지만, 언젠가 뒤를 돌아보면 지금의 하루하루가 내가 걷는 길을 만들어놓은 거라고 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2008.09.12 11:54ⓒ 2008 OhmyNews

달콤한 나의 도시 (예스 특별판)

정이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2006


#달콤한나의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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