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금융위원장. 사진은 지난 6월 2일 오전 금융위원회에서 산업은행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및 2012년까지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 금융고속도로에는 신호등도 보안관도 없었다전통 제조업 투자를 선호했던 월가의 유명한 투자자 워렌 버핏은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Nobody knows who is doing what)'에 지나치게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투자'한 월가의 위험 통제기능 상실에 지금의 금융위기가 있다고.
1980년 이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던 금융시스템 엔진에는 워런 버핏의 말처럼 '대량 살상무기' 수준의 위험성이 있는 파생상품에 '시한폭탄의 결함'이 자라고 있었다. 또한 투자자와 기업의 자금 중개 수수료를 넘어서 자기자본의 몇 십 배의 차입(leverage)까지 동원해서라도 고수익을 좇으려는 '급가속 결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정책 결정자들은 금융시스템에 내재한 근본 결함을 고치려 하거나 문제 발생을 방지하려는 최소한의 어떤 사전적인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반대로 "파생상품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이 그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려는 사람들에게 넘길 수 있는 놀라운 수단"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2003년)이라며 시장이 위험성을 자율적으로 정화시킬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또한 미국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기꺼이 부담'하면서까지 고수익을 추구하도록 금융에 가해졌던 각종 규제를 오히려 풀어버렸고, 금융회사들은 남은 규제마저도 피해나갔다.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을 근간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던 은행법(Glass-Steagall Act)은 1999년 은행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으로 대체되면서, 금융지주회사라는 이름 아래 사실상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이 사라졌다. 이들 금융지주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연방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전문 자회사를 세우고 모기지 전문회사를 세워, 이제는 악명 높아진 서브프라임 대출을 남발했다.
특히 투자은행들은 상업은행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과다 차입 등에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고, 미국 증권선물거래소(SEC)로부터도 그 어떤 강제적이고 명시적인 강제 규정도 없이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느슨하기 그지없는 규제 틀에서 마음껏 대규모 차입과 자기자본 투자를 강행했다.
더욱이 90년대에 접어들면서 파생상품을 주업으로 하는 헤지펀드와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를 허용하여 이들이 금융고속도로를 폭주하도록 했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규제마저 없었고 최소한의 정보공개의무조차 없었다. 얼마나 위험한 상품에 투자를 하든, 얼마나 과도한 차입을 동원하든 상관 없었다.
말하자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라고 하는 초고속 경주용차가 과속주행을 하고 신호위반을 일삼고 중앙선을 침범하는 극히 '위험한 주행'을 해도 그들만 다치고 만다면 보안관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가드레일만 들이박고 끝난 것이 아니라 대규모 인명 살상을 했으며 전체 교통을 마비시키고야 말았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장이 자율적으로 통제하리라 믿었던 파생상품, 그리고 점점 더 풀려나가는 규제 속에서 자유로이 위험도 높은 파생상품과 모기지 대출을 일삼았던 금융기관들로 끝이 아니었다. 미국 금융 감독의 최종 보안관이라고 할 재무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월가 출신들이었고 시장주의 추종자들이다. 자신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전력을 가진 데다가, 위반을 저지른 운전자와 친분이 두터운 이들 보안관에게 감독을 더 잘하라고 한들 감독이 제대로 되겠는가.
신자유주의 금융 엔진의 과열과 폭발그뿐이 아니다. 미국 금융상품의 불량 여부를 판단해 왔던 기관이 바로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Fitch)인 3대 신용기관이다. 그런데 이들은 공적기관이 아니라 철저히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었다. 이들의 수익원은 바로 불량여부를 판단해야 할 그 금융상품 제조와 유통을 하는 투자은행들이다. 애당초 객관적 평가는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의 책임자들도 문제를 비켜가지 못한다. 이제 94년 역사의 메릴린치를 파산시킨 오명을 남긴 전 CEO 스탠리 오네일의 경우, 부채담보부증권(CDO) 자산의 위험성을 경고한 임원들을 해고하기까지 하면서 오로지 고수익을 추구하지 않았나?
도대체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미국 서민 가구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어떻게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세계 경제를 흔들면서 첨단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규제 풀린 월가의 전통적 금융회사들과 규제 없는 신종 금융조직들이 주택 담보대출 채권을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같은 파생상품과 접목시켜, 고위험을 안은 채 고수익을 무제한 추구하면서 위험을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적되는 위험성은 '시장이 스스로 치유'할 것이라는 월가의 확고한 신념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월가의 신념은 현실에서 여지없이 무너졌고 자유시장 금융시스템이라는 자동차 엔진은 과열로 폭발되었다. 이번 금융 위기가 시장주의의 파산임을 고백한 파이낸셜타임즈 마틴 울프는 결국 지난 3월 이렇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3월 14일 금요일을 기억하라. 자유시장 자본주의(global free-market capitalism)의 꿈이 사망한 날이다. 30년 동안 우리는 시장 주도의 금융시스템(market-driven financial system)을 추구해왔다.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국 통화정책 책임 기관이자 시장자율의 선전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이 시대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제 월가의 금융시스템 자체에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을 미연에 방지하는 규제체계에도 결함이 있었으며 감독조차도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월가의 금융가들과 펀드매니저들은 수익에 대한 극단적인 과욕을 멈추지 않았음이 증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