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의 천국, 종묘공원에 가다

유동 인구 하루 2-3천명, 그곳에 가면 세상이 보입니다

등록 2008.10.30 17:48수정 2008.11.0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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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천국  무엇이 실려 있을까, 한 보수 언론 기사를 자세히 보고 있는 노인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보도되었는지 비교하여 놓았다
노인천국 무엇이 실려 있을까, 한 보수 언론 기사를 자세히 보고 있는 노인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보도되었는지 비교하여 놓았다 김학섭

지난 30일 종묘공원에도 어김없이 따사로운 가을볕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움츠리고 있던 노인들의 표정도 밝았습니다. 잘 정화된 공원 내에는 예전의 요란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술주정꾼도, 커피 아줌마도, 고성방가도 없어진 차분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모인 정치토론장에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듯 합니다. 종묘공원에 가면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알 수 있습니다.  


노인들의 입에서는 하나같이 경제가 어려워져 살기가 힘들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모 장관의 이름도 여러 번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노인들도 있었습니다. 올바른 정치는 실종되어 가고 말이 많은 정치만 성행하고 있다고 말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국민은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데 정치인들은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노인천국  이곳 종묘공원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노인들의 표정이 가을 햇살에 환하다.
노인천국 이곳 종묘공원에도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노인들의 표정이 가을 햇살에 환하다. 김학섭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이북에 너무 퍼준다며 야단을 떨던 사람들이 잘하라고 뽑아주었더니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 참으로 걱정이라고 말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네 이야기가 그르고 내 이야기가 옳다고 패를 갈라 언쟁을 높이더니 기어코 서로 멱살잡이를 하고 밀치고 넘어지는 불상사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른들이 입에 담지 못할 xx놈이라고 퍼붓기도 합니다. 천차만별의 노인들이 모인 곳이니 상상 못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의정부에서 왔다는 한 80세 노인은 북한도 우리 동포인데 도와주는 일을 아주 단절해서 민족이 분열되면 우리에게 좋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잘사는 사람이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북쪽 땅에서 나는 풍부한 지하자원을 외국사람들이 캐어 가면 결국 손해는 우리가 본다며 하루 속히 남북관계가 정상화 되어 지하자원을 우리가 직접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노인천국  잘 풀리지 않는 지 장기를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이 심각하기만 한데...
노인천국 잘 풀리지 않는 지 장기를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이 심각하기만 한데... 김학섭

언론의 불신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 보수 언론이 그동안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가를 조목조목 복사해 진열해 놓고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시대부터 박정희, 전두환,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비교하여 놓았습니다.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언론조차 믿을 수 없다며, 잘못된 것을 감춘다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며, 앞으로는 정직하고 올바른 보도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전 농부는 고향 농민들이 쌀 직불금부당수령을 규탄하기 위해 시골에서 여의도에 올라온다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있을 수 없어 가 보았는데 농민은 한 오백명 정도 모였는데 이를 막으려는 전경 버스는 오히려 몇 백대가 모여 있었다며 자동차의 기름만 아껴도 애국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노인천국  한 연사의 연설을 심각하게 경청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노인천국 한 연사의 연설을 심각하게 경청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 김학섭

매일같이 종묘공원은 정치 토론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종묘공원에는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노인도 있지만 가끔 술에 취해 고성 방가하는 노인들도 몇몇 눈에 보였습니다. 형편이 좋아서 오는 노인도 있지만 혼자 살기 외로워서, 자식에게 버림받아서, 며느리가 보기 싫어서 나온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공원 관리 사무소 한 직원은 하루 이곳을 찾는 노인 수만도 2천에서 3천명이 된다며 가까이는 서울에, 멀리는 의정부, 천안에 살고 있는 노인들도 찾는다고 합니다. 이제 종묘공원은 확실히 노인들의 천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일부러 욕을 해도 잡아가지 않았다며 현 정부에 대해서도 마구잡이로 욕을 하는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하면 누가 말을 하겠느냐며 안양에서 왔다는 한 노인은 올바른 정치를 하여 세상이 안정되고 노인들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종묘공원은 매일같이 정치마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노인의 소리도 있지만 국민의 소리도 있습니다.
#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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