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스스로 살인하지 않는다

[주장] 철거민의 저항은 정당하다

등록 2009.01.21 10:11수정 2009.01.21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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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권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이며, 시장경제주의의 근간이 되는 원칙이다. 따라서 정부나 지자체가 개발을 위한 목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경우 적정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헌법 정신에 부합된다 할 것이다. 적정한 보상이란 해당 철거민이 개발 이전에 누리던 경제적 지위에 조금도 손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심 재개발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런데 개발로 인해 재산상에 손실이 있거나 소득이 감소한다면 해당 주민은 개발 정책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으면 내 집 내 가게에서 편하게 거주하고 생업에 종사하며 살 수 있었던 사람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세입자로 전락하거나 개발 이전만한 상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이 개발은 잘못된 것이다. 재개발로 인해 창출된 부가가치를 해당지역 주민이 누릴 수 없다고 한다면 개발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이며 왜 하는 것인가?

 

칼은 스스로 살인하지 않는다

 

이 땅이 민주국가라면 사태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민주주의적이며 자본주의적이어야 했다. 해당 주민에게 적정한 보상을 해주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해명과 설득 과정이 병행됐어야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졸지에 수십 년간 생활해 온 터전을 잃은 분노가 채 삭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들이 택한 길은 결사 저항이었다.

 

제대로 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이 아니다. 내 재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었으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이 건물 옥상에 망루를 세우고 인화물질로 무장한 것은 잘못된 개발 방식에 대한 결연한 저항 의지의 표명이며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허세일 수도 있었다.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를 가져야만 살인죄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살인은 사전 계획 없이 우발적으로 발생하며, 피해자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외길로 몰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이 역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용산 참사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틈만 있으면 강압으로 국민을 순종적으로 길들이려했던 잘못된 공권력이 있는 한 언제고 발생했을 필연적인 비극이었다.

 

이번 살인에 사용된 흉기는 경찰특공대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예리한 칼이었다. 어느 살인 사건에서든 그러하듯이 칼은 스스로의 의지로 살인하지 않는다. 칼은 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아픈 환자를 수술하여 건강하게 할 수도, 음식을 조리하여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때론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도 경찰 관계자 누군가가 이번 참사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게 될 것이다. 하지만 책임을 지게 될 그 누군가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여 이 참사의 주범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민중의 지팡이를 민중을 치는 몽둥이로 만든 자는 누구인가?’ 배후의 그가 바로 이 사건의 주범이다. 그가 가진 무대뽀식 밀어붙이기 마인드가 불러들인 참화인 것이다.

 

원통하게 희생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분노와 슬픔에 빠져있을 유족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1.21 10:1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살인 공권력 #경찰 특공대 #용산참사 #무대뽀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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